[시편 35편]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시편 35:1-28]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

창을 빼사 나를 쫓는 자의 길을 막으시고 또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내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하소서

저희로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 여호와의 사자로 몰아내소서

저희 길을 어둡고 미끄럽게 하시고 여호와의 사자로 저희를 따르게 하소서

저희가 무고히 나를 잡으려고 그 그물을 웅덩이에 숨기며 무고히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함정을 팠사오니

멸망으로 졸지에 저에게 임하게 하시며 그 숨긴 그물에 스스로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요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

불의한 증인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로 내게 힐문하며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나는 저희가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 같이 저희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굽히고 슬퍼하기를 모친을 곡함 같이 하였도다

오직 내가 환난을 당하매 저희가 기뻐하여 서로 모임이여 비류가 나의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 나를 치며 찢기를 마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 같이 나를 향하여 그 이를 갈도다

주여 어느 때까지 관망하시리이까 내 영혼을 저 멸망자에게서 구원하시며 내 유일한 것을 사자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많은 백성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무리하게 나의 원수된 자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로 눈짓하지 못하게 하소서

대저 저희는 화평을 말하지 아니하고 평안히 땅에 거하는 자를 거짓말로 모해하며

또 저희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 우리가 목도하였다 하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이를 보셨사오니 잠잠하지 마옵소서 주여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저희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저희로 그 마음에 이르기를 아하 소원 성취하였다 하지 못하게 하시며 우리가 저를 삼켰다 하지 못하게 하소서

나의 해를 기뻐하는 자들로 부끄러워 낭패하게 하시며 나를 향하여 자긍하는 자로 수치와 욕을 당케 하소서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로 기꺼이 부르고 즐겁게 하시며 그 종의 형통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는 말을 저희로 항상 하게하소서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편 35편은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에 읊은 시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고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것을 예언적으로 나타내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35:1-3]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 

창을 빼사 나를 쫓는 자의 길을 막으시고 또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이 다윗의 기도는 그의 믿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은 힘이 없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서 싸워서 그 원수들을 물리쳐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시편 35:4-8]

내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하소서

저희로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 여호와의 사자로 몰아내소서 

저희 길을 어둡고 미끄럽게 하시고 여호와의 사자로 저희를 따르게 하소서

저희가 무고히 나를 잡으려고 그 그물을 웅덩이에 숨기며 무고히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함정을 팠사오니

멸망으로 졸지에 저에게 임하게 하시며 그 숨긴 그물에 스스로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



 다윗이 말하는 원수는 사울 왕이 아니라 사울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힘, 악령을 뜻합니다. 그래서 그 악령을 멸망케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유대인들을 비롯한 많은 원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들을 직접적으로 미워하시거나 멸망하기를 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움직이는 악한 세력을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해 말씀도 하시고, 기도도 하셨습니다.



[시편 35:9-10]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요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는 어려운 난관에 처해 있었지만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그 구원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어떠한 어려운 경우를 당했을 때에라도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그 은혜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요”라고 했는데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그 갈빗대로 이브를 창조하셨습니다. 이때 아담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세기 2:23)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교회가 주님의 뼈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주님과 함께 환난에 동참하고 괴로움을 같이 받으면서 주님처럼 환난 중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으면 믿음 안에서 승리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주님의 몸, 곧 교회는 바로 뼈입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이 환난과 핍박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는데 교회도 마찬가지로 환난을 당하고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처럼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어떠한 환난이나 핍박이나 위험도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어려움을 당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더 체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장차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치할 수 있는 왕의 자질을 갖추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계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그 많은 고난을 끝까지 견디심으로써 왕이 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은 교회의 머리로서, 고통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어떠한 어려움과 환난이 있어도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것을 기뻐한다고 말했습니다.



[시편 35:11-12]

불의한 증인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로 내게 힐문하며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다윗은 사울 왕을 진심으로 아꼈습니다. 여러 번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죽이지 않은 것은 사울 왕을 아끼고 그의 아들 요나단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러한 호의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한 사실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유대인들에게 나쁜 일을 하거나 해로운 일을 한 적이 없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미워했고 또 거짓 증인을 세워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현재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악하게 한 일이 없고 나쁘게 하지 않았지만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은 다윗 당시나 예수님 당시 같은 상황인 것입니다.



[시편 35:13]

나는 저희가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때때로 악한 영이 사울을 사로잡을 때에는 사울의 정신이 미쳐버리게 됩니다. 그때 다윗이 거문고를 타면서 사울의 마음이 정상으로 돌아오도록 노력을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악한 것이 낫도록 기도도 많이 하고 눈물도 흘리며 온 정성을 다 기울여 사울 왕을 위해서 선한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다윗의 선을 악으로 갚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예수님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 53:1-5]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주님께서는 친히 우리의 슬픔과 질고를 담당하였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또 주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우리의 죄만 지신 것이 아니고 우리 질병도 지셨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님이 단순히 능력으로 병을 고치신 것이 아니라 병을 예수님이 짊어지심으로써 그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을 당하든지, 예수님도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육체의 고통에 동참을 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나서 마음에 고통을 당하면 예수님도 그 괴로움을 친히 체휼하십니다.


 주님이 항상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면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이 없으면 유혹에 넘어가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히브리서 7:24-25]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영원히 계셔서 우리의 대변자가 되시고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를 죄에서 온전히 구원하신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서 받는 많은 고난과 고통에서도 구원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때마다 생활 속에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생활의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자기가 처한 어려움에 넘어지지 않고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생활의 구원입니다.



 요한일서 2장 1절 말씀에 보면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우리가 지은 죄도 주님이 체휼하시고 그것을 담당해 주시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그것을 대변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주님을 두려워하여 떠나지 않고 더욱 주께 가까이 가면 주님은 우리의 잘못도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음으로써 실망하지 않고 어려움을 이겨갈 수 있는 것이 곧 구원입니다.



[마태복음 10:30-33]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할지라도 주님을 시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편 35:14-15]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 같이 저희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굽히고 슬퍼하기를 모친을 곡함 같이 하였도다

오직 내가 환난을 당하매 저희가 기뻐하여 서로 모임이여 비류가 나의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 나를 치며 찢기를 마지 아니하도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어떤 사람에게도 잘못한 일이 없고 다 공평하게 잘해주었지만 나중에 압살롬이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 편을 들고 다윗을 대항하였습니다. 그래서 “오직 내가 환난을 당하매 저희가 기뻐하여 서로 모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유대인들에게 잡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빌라도의 군병들과 대제사장 등 여러 사람들에게 희롱과 멸시를 당했습니다.


[마태복음 27:27-36]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쓸개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 하시더라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시편 35:16-21]

저희는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 같이 나를 향하여 그 이를 갈도다

주여 어느 때까지 관망하시리이까 내 영혼을 저 멸망자에게서 구원하시며 내 유일한 것을 사자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많은 백성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무리하게 나의 원수된 자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로 눈짓하지 못하게 하소서 

대저 저희는 화평을 말하지 아니하고 평안히 땅에 거하는 자를 거짓말로 모해하며 

또 저희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 우리가 목도하였다 하나이다



 “목도하였도다”는 말은 “이제는 보았다”는 뜻입니다. 다윗의 원수들이 그가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는 것을 지켜보고 크게 기뻐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그 원수들이 예수님을 희롱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지켜보고 기뻐하며 쾌재를 불렀습니다.



[시편 35:22-25]

여호와여 주께서 이를 보셨사오니 잠잠하지 마옵소서 주여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저희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저희로 그 마음에 이르기를 아하 소원 성취하였다 하지 못하게 하시며 우리가 저를 삼켰다 하지 못하게 하소서



 다윗이 하나님께 드리는 이 기도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희로 기뻐하지 못하게 하며 소원성취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만 보면 예수님은 완전히 실패한 것 같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잡은 사탄 즉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 기뻐하며 소원 성취하였다고 쾌재를 불렀지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사탄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재판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모세가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한복음 3:14)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사탄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십자가의 진리를 깨달으면 사탄에게서 해방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탄을 정죄하고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판결입니다. 그것은 죄에 대한 영원한 판결입니다.



[요한복음 6:8-11]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라고 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는 말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너는 의롭다”라고 하시는 선언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사탄을 멸하는 선이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너는 의롭다” 하시는 선입니다. 그것이 심판의 양면성입니다.



[로마서 4:24-25]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장 30절에 보면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21-26]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이 죄인이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기 때문에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린도후서 5:21)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36-37]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심으로써 영원한 의가 드러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판결입니다. 그로부터 시작해서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판결에 의해서 이루어진 이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기의 의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의롭다 함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알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찾아오는 여러 가지 시련과 어려움이 곧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신이 무너지는 과정을 말합니다. 어떤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자신이 무너지는 과정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너지면 하나님의 위로와 부활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로 시련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 괴로움을 당할지라도 부활의 생명이 솟아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을 당하면 그 일을 피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라도 우리의 마음에 부활의 힘이 솟으면 그 어려움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시편 35:26]

나의 해를 기뻐하는 자들로 부끄러워 낭패하게 하시며 나를 향하여 자긍하는 자로 수치와 욕을 당케 하소서


 결국은 이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지만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이로써 사탄은 영원히 정죄되고 예수님은 영원히 의로 판결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인으로 판결이 된 것입니다.



[시편 35:27-28]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로 기꺼이 부르고 즐겁게 하시며 그 종의 형통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는 말을 저희로 항상 하게하소서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예수님이 살아나셨기 때문에 의롭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 모든 죄를 지고 돌아가신 후 부활케 하신 하나님은 광대하신 분입니다.



[로마서 3:10-14]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의롭다 함을 얻기 전에는 남을 저주하고, 욕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입에는 독사의 독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선이 내려지자 그런 악독에서 풀려났습니다. 그 혀로 말미암아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이런 예언적인 시를 성령으로 말미암아 읊었습니다.



[빌립보서 3:8-11]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바울이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라고 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부활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닥쳐오는 여러 가지 고난과 고통 속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는 주님을 믿고 주님의 부활의 생명의 힘으로 살아간다면 모든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축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