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광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송하리로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산이 그러하도다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피난처로 알리셨도다 열왕이 모여 함께 지났음이여 저희가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갔도다 거기서 떨림이 저희를 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 같도다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영히 견고케 하시리로다(셀라)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 주의 판단을 인하여 시온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 너희는 시온을 편답하고 그것을 순행하며 그 망대들을 계수하라 그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 궁전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 48:1-14)
이 시편 48편은 47편에서 연속된 내용으로 같은 상황에서 읊은 시입니다. 47편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내용이 연속적으로 나타납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여호사밧 왕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 기적적인 능력으로 암몬과 모압을 멸망시킨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군대들이 아직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찬양했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나타나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여호사밧 왕의 사건은 하나의 그림자적인 역사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아마겟돈 전쟁에 모였던 모든 세력과 적그리스도가 멸망 받는 상태가 역대하 20장에서는 암몬과 모압이 예루살렘을 치려고 왔다가 완전히 멸망 받는 것으로 예표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처소가 될 예루살렘
“그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 이왕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그 산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지라 너희가 그의 산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 그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흘 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온 땅이 아라바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편 림몬까지 미칠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 사람이 그 가운데 거하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안연히 서리로다"(슥 14:3-11)
이 스가랴서 14장에는 아마겟돈 전쟁이 끝나고 예수님이 재림하심으로써 예루살렘이 완전히 영광스러운 곳이 될 것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처소가 되어 주님이 온 세계를 통치하는 곳이 될 것입니다.
이 시편 48편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주님이 거하실 그 예루살렘이 완전히 회복되어 시온의 영광이 이루어진 것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송하리로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산이 그러하도다”(시 48:1 -2)
여기서 시온산은 감람산은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이 지어질 산입니다. 예루살렘은 전체가 800미터쯤 되는 높은 고지인데 그 위에 감람산이 있고 건너편에 시온산이 있습니다.
스가랴 14장 말씀에 의하면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예루살렘 지형이 변형되어 큰 골짜기가 생겨나고 주변에 있는 많은 산봉우리들이 낮아지고 예루살렘이 높이 들립니다. 그러한 상황이 되면 거기에 주님이 재림하셔서 온 세계의 주목거리가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도 이것을 알기 때문에 세계 정부가 수립이 되면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 2:4)는 말씀처럼 예루살렘에 들어가 자기를 하나님이라 자처하게 됩니다.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민족과 세계를 통치하고 예루살렘에는 큰 우상을 설치해서 모든 사람이 그 우상을 경배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고 주님이 재림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전쟁은 끝나고 예루살렘은 다시 회복됩니다.
역대하 20장에서 여호사밧 군대가 힘을 쓰지 않고 찬송만 불렀는데도 하나님께서 암몬과 모압 큰 군대를 자기네 끼리 전쟁하도록 하여 삽시간에 진멸시키는 그런 일이 아마겟돈 전쟁 때도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동방의 군대가 적그리스도가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쳐들어가면 적그리스도는 온 세계 군대를 다 끌어 모아서 아마겟돈에서 전쟁을 벌입니다.
전쟁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루살렘 점령이므로 예루살렘 부근에서 큰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요엘서에서도 이러한 전쟁 이 벌어질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사밧 골짜기一하나님의 심판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때에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국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 훌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취하고 동남으로 기생을 바꾸며 동녀로 술을 바꾸어 마셨음이니라” (욜 3:1-3)
여기에서도 “여호사밧 골짜기”라고 했는데 그 골짜기는 기드론 시내를 말합니다. 기드론은 시온산과 감람산 사이에 흐르는 조그마한 개천입니다. 여호사밧 왕 당시에 역대하 20장에 있는 말씀대로 그 골짜기를 여호사밧 왕의 이름을 따서 여호사밧 골짜기라 한 것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사밧 왕으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셨고 그 사건이 이 세상 마지막 때에 아마겟돈 전쟁에서 예수님 재림하심으로 말미암아 세계 모든 군대를 심판하시는 그림자이기 때문에 그 골짜기가 여호사밧 골짜기가 된 것입니다.
이 여호사밧 골짜기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되면 그 전쟁이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하신다는 뜻도 있습니다.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의 보복하는 것을 내가 속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곧 너희가 내 은과 금을 취하고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궁으로 가져갔으며 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본 지경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을 너희가 팔아 이르게 한 곳에서 일으켜 나오게 하고 너희의 행한 것을 너희 머리에 돌려서 너희 자녀를 유다 자손의 손에 팔리니 그들은 다시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욜 3:4-8)
여기에서 두로와 시돈은 지금 현재 레바논입니다. AD 70년,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에 의해서 멸망당할 때에 이 두로와 시돈 사람 들도 가세를 했고 그 후에도 이스라엘을 많이 괴롭혔습니다. 그 다음에 블레셋은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입니다. 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나안 땅, 이스라엘 땅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었는데 해방과 함께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 나라에서 몰려 들어와 6일 전쟁 당시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주력 부대가 요르단과 레바논으로 쫓겨났습 니다. 그러나 지금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나사렛에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총기를 가질 수 없고 투표권도 없어 이스라엘에 복종해서 그럭저럭 사는 정도입니다.
하나님이 그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겨나게 만든 것을 “팔아서”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9절부터는 아마겟돈에 대한 말입니다.
“너희는 열국에 이렇게 광포할지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무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지어다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사면의 열국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열국은 동하여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 앉아서 사면의 열국을 다 심판하리로다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나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되리로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욜 3:9-16)
스가랴 14장이나 요엘 3장은 여호사밧 골짜기의 심판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것이 시편 48편의 노래 배경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 되실 것을 내다보고 그 시온의 영광을 노래한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서 11장에 보면 남아 있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롬 11:25-27)
우리는 이방 사람이지만 참으로 큰 축복 아래 살고 있습니다. 이방 사람들의 구원받는 숫자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결정이 돼 있습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도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구원받는 사람들이 아주 적은 숫자이기는 하지만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주님을 믿지 않고 거의가 주님을 배척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면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온 이스라엘”은 나머지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가랴 14장에도 남은 자가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라고 했는데 14만 4천명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이스라엘 민족 속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은 다시 재건이 되고 그때에는 이스라엘이이 세계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이상적인 나라가 됩니다. 현재 예루살렘 지역에 가 보면 크게 좋은 곳이라고 느껴지지 않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를 꾸미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 세상은 바로 바벨론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바벨탑을 쌓는 내용은 이 온 세상이 바벨론이 된다는 뜻입니다. 실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바벨론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에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계 18:2)라고 한 것처럼 이 세상이 완전히 무너지고 멸망 받는 그때가 옵니다.
우리의 육신은 이 바벨론이라는 세상에 살지만 우리의 마음은 예루살렘에 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우리가 마음속에 깊이 생각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천 년 동안 통치하시게 될 것을 내다보면서 아브라함을 바벨론에서 불러 내어 예루살렘이 있는 그곳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영원한 천국 예루살렘의 그림자입니다.
예루살렘 시온산은 주님이 거기에 계시면서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곳이 됩니다. 우리가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이라는 찬송을 부르지만 사실 그 시온의 영광은 주님이 오셔서 완전히 예루살렘이 회복이 될 그때에 실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시편 48편은 그런 의미에서 시온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영히 견고케 하시리로다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피난처로 알리셨도다 열왕이 모여 함께 지났음이여 저희가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갔도다 거기서 떨림이 저희를 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 같도다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영히 견고케 하시리로다(셀라)’’(시 48:3-8)
이 부분은 마지막 주님 오실 때에 아마겟돈 전쟁에서 모든 세력이 멸망 받는 광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하나님 자체가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참 믿음이 있으면,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어떤 사태가 일어나고 어떤 긴박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을 확실히 믿는 그 믿음 안에서 주님께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지금 하루가 다르게 살기 어려운 각박한 세상이 되어 갑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력해도 살기 좋은 세상은 이제 오지 않습니다. 자꾸만 살기 어려운 시절이 오고 더욱이 우리 구원받은 사람은 앞으로 어려운 환난에 처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실주의자가 되면 마음이 고통스럽고 무언가 두려운 가운데서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는 성령을 받고 주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 증거를 기초로 해서 이 세상이 어떻게 되든 간에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이 세상의 모든 역사는 이 시온의 영광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꾸며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정부가 여러 정당을 합쳐 연합 내각을 형성했는데 다시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는 타협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지금은 회복기에 들어섰기 때문에 다른 민족과 타협을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이 세계 정치사나 인간적인 윤리적인 면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타협할 수 없는 민족인 것입니다. 그 주변에 있는 아랍 사람과 일시적으로 타협하여 어떤 평화가 올지는 몰라도 그것은 거짓 평화인 것입니다. 시온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일들이 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조금도 차질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보고 살아야 되는데 자칫 잘못하면 현실주의자가 되어서 바벨론 속에 마음을 두고 거기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기 쉽습니다. 이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영히 견고케 하시리로다”라는 말씀을 직접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때가 곧 옵니다. 그때가 되면 저절로 찬송이 터져 나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이 성경의 뜻을 잘 모르면 이스라엘 역사가 무엇인지 세계 정세가 어떻게 되는지 관심 없이 지나쳐 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 시편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약속은 틀림없고 우리에게 주시는 그 은총은 너무도 큰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시 48:9)
여기서 “주의 전”이 무엇을 말합니까?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는 시온에 있는 예루살렘 성 안에 성전이 건재하면 그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와 모든 것이 건재하는 것입니다. 이 예루살렘 성전은 두 번 부셔졌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잡혀 갈 때, AD 70년에 로마 군대가 와서 그 성전을 완전히 파괴해버렸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에 주님이 오셔서 성전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징계나 노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 곳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그것이 건물이었지만 오늘날 신약 시대에 주의 전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깃드는 곳이고 거기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 일서 4장 12절에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는 그것이 교회입니다. 주님이 머릿돌이시고 우리 구원받은 사람이 산 돌로 함께 지어져서 피차간에 사랑을 나누는 곳이 교회이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주님이 오셨을 때 주님을 배척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지만 그들은 원치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감람산 벳바게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예루살렘을 보시며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를 모으려 한 것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싫어하여 그들 스스로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예루살렘이 회복될 그 때에는 모든 것이 회복이 될 것입니다. “주의 전 가운데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는 말씀은 그때 비로소 이스라엘 민족이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정의로운 주님의 판단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시 48:10)
여기서 “정의가 충만하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이나 생활 하신 것,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의로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의 그 자체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정의로운 판단을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온갖 부정과 잘못을 저지르는 유대인들의 중심을 보시고 예리하게 판단하시고 처리하신 주님이십니다.
마가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이 연보궤 앞에 계시다가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연보궤 안에 넣는 걸 보시고 이 과부가 부자들보다 더 많은 연보를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미천하고 보잘 것 없어 보여도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사는 것은 하나도 지나치지 아니하시고 세밀하게 판단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자칫 잘못하면 그냥 대충 살아가기 쉽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아주 작은 부분에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로 섬기면 주님이 그걸 모르신다거나 잊어버리시지 않습니다.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정의의 기준에 의해서 상 줄 자는 상 주고 책망하실 자는 책망하는 세밀하고 완전한 주님이십니다. 그대신 우리가 잘못한 것, 죄를 지은 것, 부정한 것을 뉘우치고 마음을 돌이키면 얼마든지 용서하시는 주님이시기도 합니다.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완전히 정의에 입각해서 살으셨고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사신 분이기에 주님의 판단 역시 정의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 6:10-12)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일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분 같으면 불의한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상태에서도 진심으로 성도를 섬기고 주님을 섬기는 일을 했으면 주님은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 주의 종에게 냉수 한 그릇을 준 것도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자기 취향이나 생각에 따라 행동합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잊어버리지 않는 정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공부도 잘 못하고 사업도 잘 못할 뿐 아니라 신앙생활도 잘 못합니다. 신앙생활은 부지런해야 됩니다. 그래야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엡 1:21)
주님은 그 정의에 판단력과 능력을 가지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 이름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입니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로 온통 뒤죽박죽한 세상이 주님의 완전한 정의와 판단 아래 다 정리 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아무리 힘세고 그 밑에 움직이는 인간들의 힘이 강해도 주님의 정의가 나타나 모든 것이 완벽하게 결정지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억울한 사람도 없고 조금이라도 불공평한 일이 없는 정의로운 세상이 됩니다.
그 주님의 정의와 영광과 권력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온 세계가 다 정리되고 자연 법칙이든 마음의 법칙이든 무엇이든 전부가 완전한 상태로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정의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이름이 높이 나타나고 온 세계에 찬송이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시온의 영광의 노래입니다.
“주의 판단을 인하여 시온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시 48:11)
만일 주님의 판단이 잘못되었으면 어떻게 됩니까? 주님의 판단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완전한 세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판단이 잘못되어 사탄에게 완전히 정복당하는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의 판단을 인하여 시온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장차 이루어질 완전한 교회
“너희는 시온을 편답하고 그것을 순행하며 그 망대를 계수하라”(시 48:12)
시온을 낱낱이 구석구석 다 살펴보라는 말입니다. 망대라는 것은 전쟁할 때에는 적의 동태를 보는 것이고 목장에서는 양무리들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 궁전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시 48:13)
이 말씀을 교회에다 한 번 적용을 시켜봅시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2-27)
이 에베소서 5장은 부부간의 관계를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로 설명하면서 주님께서 교회를 완전하고 거룩하고 흠이 없이 세우시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해 가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온을 편답하고 순행하고 망대를 계수하고 성벽을 자세히 보고 궁전을 살펴서 자세히 보라”는 시편 말씀은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눈에 거슬리거나 잘못된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교회의 상태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조리가 많고 사람의 육신에 따른 행위들로 인하여 실망스러운 일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주님 앞에 섰을 때의 교회는 완전한 교회입니 다. 흠도 티도 없고 완전한 교회로 나타납니다.
계시록 21장 2절에 보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을 보니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9절 이하에는 신부를 보인다고 하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 줍니다. 그 광경을 보여주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여러가지 금과 보석으로 꾸미고 수정같이 맑은 것으로 꾸며진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 놓았습니다. 그것이 곧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온을 구석구석 다 살펴보아도 흠이 없는 이것이 바로 교회의 그림자입니다. 교회가 나중에 흠이나 티나 주름잡힌 것이 없는 것으로 주님 앞에 나타나는데 그것을 여기서 연결지우는 것입니다.
이 인류의 모든 역사는 결국 그 시온의 영광을 위해서 가고 있는 셈입니다. 시온의 영광을 노래하는 그 일을 위해서 이 모든 역사가 지금 꾸며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시온의 영광을 노래하며 거기에 참여할 사람들입니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고 죄를 자백하고 주님을 가까이 하는 모든 신앙생활이 이 시온의 영광에 이어지는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 48:14)
“죽을 때까지 인도하신다”는 말은 영원히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중간에 우리를 포기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끝까지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앞에 어떤 상황이 있고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주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인도해가실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2천년 동안 버려둔 것 같지만 때가 되어 말씀대로 이스라엘 민족들이 도처에서 모여들어 나라가 형성되고 현실적으로 시온이 회복되어가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 시편 48편은 47편에서 연속된 내용으로 같은 상황에서 읊은 시입니다. 47편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내용이 연속적으로 나타납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여호사밧 왕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 기적적인 능력으로 암몬과 모압을 멸망시킨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군대들이 아직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찬양했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나타나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여호사밧 왕의 사건은 하나의 그림자적인 역사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아마겟돈 전쟁에 모였던 모든 세력과 적그리스도가 멸망 받는 상태가 역대하 20장에서는 암몬과 모압이 예루살렘을 치려고 왔다가 완전히 멸망 받는 것으로 예표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처소가 될 예루살렘
“그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 이왕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그 산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지라 너희가 그의 산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 그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흘 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온 땅이 아라바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편 림몬까지 미칠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 사람이 그 가운데 거하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안연히 서리로다"(슥 14:3-11)
이 스가랴서 14장에는 아마겟돈 전쟁이 끝나고 예수님이 재림하심으로써 예루살렘이 완전히 영광스러운 곳이 될 것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처소가 되어 주님이 온 세계를 통치하는 곳이 될 것입니다.
이 시편 48편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주님이 거하실 그 예루살렘이 완전히 회복되어 시온의 영광이 이루어진 것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여기서 시온산은 감람산은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이 지어질 산입니다. 예루살렘은 전체가 800미터쯤 되는 높은 고지인데 그 위에 감람산이 있고 건너편에 시온산이 있습니다.
스가랴 14장 말씀에 의하면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예루살렘 지형이 변형되어 큰 골짜기가 생겨나고 주변에 있는 많은 산봉우리들이 낮아지고 예루살렘이 높이 들립니다. 그러한 상황이 되면 거기에 주님이 재림하셔서 온 세계의 주목거리가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도 이것을 알기 때문에 세계 정부가 수립이 되면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 2:4)는 말씀처럼 예루살렘에 들어가 자기를 하나님이라 자처하게 됩니다.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민족과 세계를 통치하고 예루살렘에는 큰 우상을 설치해서 모든 사람이 그 우상을 경배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고 주님이 재림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전쟁은 끝나고 예루살렘은 다시 회복됩니다.
역대하 20장에서 여호사밧 군대가 힘을 쓰지 않고 찬송만 불렀는데도 하나님께서 암몬과 모압 큰 군대를 자기네 끼리 전쟁하도록 하여 삽시간에 진멸시키는 그런 일이 아마겟돈 전쟁 때도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동방의 군대가 적그리스도가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쳐들어가면 적그리스도는 온 세계 군대를 다 끌어 모아서 아마겟돈에서 전쟁을 벌입니다.
전쟁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루살렘 점령이므로 예루살렘 부근에서 큰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요엘서에서도 이러한 전쟁 이 벌어질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사밧 골짜기一하나님의 심판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때에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국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 훌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취하고 동남으로 기생을 바꾸며 동녀로 술을 바꾸어 마셨음이니라” (욜 3:1-3)
여기에서도 “여호사밧 골짜기”라고 했는데 그 골짜기는 기드론 시내를 말합니다. 기드론은 시온산과 감람산 사이에 흐르는 조그마한 개천입니다. 여호사밧 왕 당시에 역대하 20장에 있는 말씀대로 그 골짜기를 여호사밧 왕의 이름을 따서 여호사밧 골짜기라 한 것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사밧 왕으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셨고 그 사건이 이 세상 마지막 때에 아마겟돈 전쟁에서 예수님 재림하심으로 말미암아 세계 모든 군대를 심판하시는 그림자이기 때문에 그 골짜기가 여호사밧 골짜기가 된 것입니다.
이 여호사밧 골짜기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되면 그 전쟁이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하신다는 뜻도 있습니다.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의 보복하는 것을 내가 속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곧 너희가 내 은과 금을 취하고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궁으로 가져갔으며 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본 지경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을 너희가 팔아 이르게 한 곳에서 일으켜 나오게 하고 너희의 행한 것을 너희 머리에 돌려서 너희 자녀를 유다 자손의 손에 팔리니 그들은 다시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욜 3:4-8)
여기에서 두로와 시돈은 지금 현재 레바논입니다. AD 70년,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에 의해서 멸망당할 때에 이 두로와 시돈 사람 들도 가세를 했고 그 후에도 이스라엘을 많이 괴롭혔습니다. 그 다음에 블레셋은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입니다. 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나안 땅, 이스라엘 땅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었는데 해방과 함께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 나라에서 몰려 들어와 6일 전쟁 당시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주력 부대가 요르단과 레바논으로 쫓겨났습 니다. 그러나 지금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나사렛에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총기를 가질 수 없고 투표권도 없어 이스라엘에 복종해서 그럭저럭 사는 정도입니다.
하나님이 그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겨나게 만든 것을 “팔아서”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9절부터는 아마겟돈에 대한 말입니다.
“너희는 열국에 이렇게 광포할지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무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지어다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사면의 열국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열국은 동하여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 앉아서 사면의 열국을 다 심판하리로다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나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되리로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욜 3:9-16)
스가랴 14장이나 요엘 3장은 여호사밧 골짜기의 심판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것이 시편 48편의 노래 배경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 되실 것을 내다보고 그 시온의 영광을 노래한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서 11장에 보면 남아 있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롬 11:25-27)
우리는 이방 사람이지만 참으로 큰 축복 아래 살고 있습니다. 이방 사람들의 구원받는 숫자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결정이 돼 있습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도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구원받는 사람들이 아주 적은 숫자이기는 하지만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주님을 믿지 않고 거의가 주님을 배척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면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온 이스라엘”은 나머지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가랴 14장에도 남은 자가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라고 했는데 14만 4천명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이스라엘 민족 속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은 다시 재건이 되고 그때에는 이스라엘이이 세계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이상적인 나라가 됩니다. 현재 예루살렘 지역에 가 보면 크게 좋은 곳이라고 느껴지지 않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를 꾸미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 세상은 바로 바벨론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바벨탑을 쌓는 내용은 이 온 세상이 바벨론이 된다는 뜻입니다. 실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바벨론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에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계 18:2)라고 한 것처럼 이 세상이 완전히 무너지고 멸망 받는 그때가 옵니다.
우리의 육신은 이 바벨론이라는 세상에 살지만 우리의 마음은 예루살렘에 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우리가 마음속에 깊이 생각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천 년 동안 통치하시게 될 것을 내다보면서 아브라함을 바벨론에서 불러 내어 예루살렘이 있는 그곳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영원한 천국 예루살렘의 그림자입니다.
예루살렘 시온산은 주님이 거기에 계시면서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곳이 됩니다. 우리가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이라는 찬송을 부르지만 사실 그 시온의 영광은 주님이 오셔서 완전히 예루살렘이 회복이 될 그때에 실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시편 48편은 그런 의미에서 시온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영히 견고케 하시리로다
이 부분은 마지막 주님 오실 때에 아마겟돈 전쟁에서 모든 세력이 멸망 받는 광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하나님 자체가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참 믿음이 있으면,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어떤 사태가 일어나고 어떤 긴박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을 확실히 믿는 그 믿음 안에서 주님께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지금 하루가 다르게 살기 어려운 각박한 세상이 되어 갑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력해도 살기 좋은 세상은 이제 오지 않습니다. 자꾸만 살기 어려운 시절이 오고 더욱이 우리 구원받은 사람은 앞으로 어려운 환난에 처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실주의자가 되면 마음이 고통스럽고 무언가 두려운 가운데서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는 성령을 받고 주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 증거를 기초로 해서 이 세상이 어떻게 되든 간에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이 세상의 모든 역사는 이 시온의 영광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꾸며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정부가 여러 정당을 합쳐 연합 내각을 형성했는데 다시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는 타협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지금은 회복기에 들어섰기 때문에 다른 민족과 타협을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이 세계 정치사나 인간적인 윤리적인 면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타협할 수 없는 민족인 것입니다. 그 주변에 있는 아랍 사람과 일시적으로 타협하여 어떤 평화가 올지는 몰라도 그것은 거짓 평화인 것입니다. 시온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일들이 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조금도 차질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보고 살아야 되는데 자칫 잘못하면 현실주의자가 되어서 바벨론 속에 마음을 두고 거기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기 쉽습니다. 이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영히 견고케 하시리로다”라는 말씀을 직접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때가 곧 옵니다. 그때가 되면 저절로 찬송이 터져 나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이 성경의 뜻을 잘 모르면 이스라엘 역사가 무엇인지 세계 정세가 어떻게 되는지 관심 없이 지나쳐 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 시편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약속은 틀림없고 우리에게 주시는 그 은총은 너무도 큰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 전”이 무엇을 말합니까?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는 시온에 있는 예루살렘 성 안에 성전이 건재하면 그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와 모든 것이 건재하는 것입니다. 이 예루살렘 성전은 두 번 부셔졌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잡혀 갈 때, AD 70년에 로마 군대가 와서 그 성전을 완전히 파괴해버렸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에 주님이 오셔서 성전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징계나 노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 곳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그것이 건물이었지만 오늘날 신약 시대에 주의 전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깃드는 곳이고 거기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 일서 4장 12절에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는 그것이 교회입니다. 주님이 머릿돌이시고 우리 구원받은 사람이 산 돌로 함께 지어져서 피차간에 사랑을 나누는 곳이 교회이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주님이 오셨을 때 주님을 배척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지만 그들은 원치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감람산 벳바게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예루살렘을 보시며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를 모으려 한 것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싫어하여 그들 스스로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예루살렘이 회복될 그 때에는 모든 것이 회복이 될 것입니다. “주의 전 가운데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는 말씀은 그때 비로소 이스라엘 민족이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정의로운 주님의 판단
여기서 “정의가 충만하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이나 생활 하신 것,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의로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의 그 자체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정의로운 판단을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온갖 부정과 잘못을 저지르는 유대인들의 중심을 보시고 예리하게 판단하시고 처리하신 주님이십니다.
마가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이 연보궤 앞에 계시다가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연보궤 안에 넣는 걸 보시고 이 과부가 부자들보다 더 많은 연보를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미천하고 보잘 것 없어 보여도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사는 것은 하나도 지나치지 아니하시고 세밀하게 판단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자칫 잘못하면 그냥 대충 살아가기 쉽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아주 작은 부분에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로 섬기면 주님이 그걸 모르신다거나 잊어버리시지 않습니다.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정의의 기준에 의해서 상 줄 자는 상 주고 책망하실 자는 책망하는 세밀하고 완전한 주님이십니다. 그대신 우리가 잘못한 것, 죄를 지은 것, 부정한 것을 뉘우치고 마음을 돌이키면 얼마든지 용서하시는 주님이시기도 합니다.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완전히 정의에 입각해서 살으셨고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사신 분이기에 주님의 판단 역시 정의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 6:10-12)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일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분 같으면 불의한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상태에서도 진심으로 성도를 섬기고 주님을 섬기는 일을 했으면 주님은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 주의 종에게 냉수 한 그릇을 준 것도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자기 취향이나 생각에 따라 행동합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잊어버리지 않는 정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공부도 잘 못하고 사업도 잘 못할 뿐 아니라 신앙생활도 잘 못합니다. 신앙생활은 부지런해야 됩니다. 그래야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엡 1:21)
주님은 그 정의에 판단력과 능력을 가지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 이름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입니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로 온통 뒤죽박죽한 세상이 주님의 완전한 정의와 판단 아래 다 정리 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아무리 힘세고 그 밑에 움직이는 인간들의 힘이 강해도 주님의 정의가 나타나 모든 것이 완벽하게 결정지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억울한 사람도 없고 조금이라도 불공평한 일이 없는 정의로운 세상이 됩니다.
그 주님의 정의와 영광과 권력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온 세계가 다 정리되고 자연 법칙이든 마음의 법칙이든 무엇이든 전부가 완전한 상태로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정의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이름이 높이 나타나고 온 세계에 찬송이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시온의 영광의 노래입니다.
만일 주님의 판단이 잘못되었으면 어떻게 됩니까? 주님의 판단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완전한 세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판단이 잘못되어 사탄에게 완전히 정복당하는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의 판단을 인하여 시온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장차 이루어질 완전한 교회
시온을 낱낱이 구석구석 다 살펴보라는 말입니다. 망대라는 것은 전쟁할 때에는 적의 동태를 보는 것이고 목장에서는 양무리들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교회에다 한 번 적용을 시켜봅시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2-27)
이 에베소서 5장은 부부간의 관계를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로 설명하면서 주님께서 교회를 완전하고 거룩하고 흠이 없이 세우시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해 가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온을 편답하고 순행하고 망대를 계수하고 성벽을 자세히 보고 궁전을 살펴서 자세히 보라”는 시편 말씀은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눈에 거슬리거나 잘못된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교회의 상태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조리가 많고 사람의 육신에 따른 행위들로 인하여 실망스러운 일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주님 앞에 섰을 때의 교회는 완전한 교회입니 다. 흠도 티도 없고 완전한 교회로 나타납니다.
계시록 21장 2절에 보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을 보니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9절 이하에는 신부를 보인다고 하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 줍니다. 그 광경을 보여주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여러가지 금과 보석으로 꾸미고 수정같이 맑은 것으로 꾸며진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 놓았습니다. 그것이 곧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온을 구석구석 다 살펴보아도 흠이 없는 이것이 바로 교회의 그림자입니다. 교회가 나중에 흠이나 티나 주름잡힌 것이 없는 것으로 주님 앞에 나타나는데 그것을 여기서 연결지우는 것입니다.
이 인류의 모든 역사는 결국 그 시온의 영광을 위해서 가고 있는 셈입니다. 시온의 영광을 노래하는 그 일을 위해서 이 모든 역사가 지금 꾸며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시온의 영광을 노래하며 거기에 참여할 사람들입니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고 죄를 자백하고 주님을 가까이 하는 모든 신앙생활이 이 시온의 영광에 이어지는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인도하신다”는 말은 영원히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중간에 우리를 포기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끝까지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앞에 어떤 상황이 있고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주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인도해가실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2천년 동안 버려둔 것 같지만 때가 되어 말씀대로 이스라엘 민족들이 도처에서 모여들어 나라가 형성되고 현실적으로 시온이 회복되어가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