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5:1-22]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을 기억하옵소서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곤난에서 끌어 내소서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내 원수를 보소서 저희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함이니이다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치 말게 하소서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구속하소서
시편 25편은 다윗이 죄 지은 것을 하나님께 자백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내용입니다. 어떤 죄를 지었을 때 죄를 짓는 것도 문제지만 그 죄를 지은 결과 믿음에서 떠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시편 25:1-3]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그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경우가 있는 반면, 가인처럼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모릅니다"라고 거짓말함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아주 멀어져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편 25: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우리가 어떤 시험을 만나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거기에 주님의 길과 진리가 있고 주님의 도가 있습니다. 로마서 12장에 보면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처지나 환경에 처했건 간에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도와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성경을 잘 모르고 또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 길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린도전서 1:30)라는 말씀대로 예수님은 우리의 지혜가 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는 마음이 진실하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지혜가 생겨서 시험이 왔을 때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2-5]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가 시험을 만났을 때에 그 시험의 뜻이 무엇인지 또 그 시험을 견디고 이겨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지혜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에는 여러가지 시험이 많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사회적인 환경, 구원받은 사람간의 문제 등 여러가지 시험이 있는데 그러한 모든 시험에는 길이 있습니다.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시편 25:4)라는 말씀대로 시험을 피할 길이 있는데 자신이 그 길을 알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시험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피할 길도 주신다고 하셨는데 우리에게 믿음이 없거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 때에는 그 길을 잘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에 넘어지는 사람이 많은 것은 그것을 주님께 고하지 않고 제멋대로 하여 주의 길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떤 시험이나 어려움 혹 죄를 지었을 경우에라도 틀림없이 주님의 도가 있습니다. 그 주님의 도는 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길과 도를 배워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신앙생활
[시편 25: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다윗은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거나 혹 죄를 지었을 경우에도 자기의 수단이나 세상 방법을 따르지 않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는 길을 주님께 바랐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시험당할 때에 주님의 길과 진리를 바라면 피할 길을 주십니다.
[잠언 3:6-7]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는 말은 모든 일에 주님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죄를 지었을 때에도 그 죄를 주님께 맡김으로써 죄 사함 받는 길이 있듯이 모든 일을 주님께 맡긴다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자기 꾀와 힘으로 사는 사람은 주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시편 25:6-7]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을 기억하옵소서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사느냐에 대한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9:12-13]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누가복음 19:20-21]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한 므나를 가지고 온 사람은 주님을 엄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주님 앞에 설 때에 그 받은 한 므나가 없어지 고 나면 주님이 자기를 심판하시고 꾸지람하실까 두려워 한 므나 를 가지고 장사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긍휼이 많으시고 인자하심이 풍성한 분으로 믿고 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심에 근거해서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바라고 믿고 있습니까? 마음속에 항상 주님께 두려운 마음이나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한 마음의 태도는 주님을 무서운 주님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양심에 괴로움이 있고 주님께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은 한 므나를 가지고 온 사람처럼 주님을 엄하게 섬긴다는 말입니다.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선
[시편 25:7]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우리는 본래 아담이 가진 선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선과 악에 대한 개념 즉 잘못했다, 죄를 지었다는 개념이 있으니까 언제나 불안하고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은 하나님 안에서 흘러 나오는 사랑의 선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용서해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입니다. 그 하나님의 선 안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인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다윗이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라고 했는데 소시의 죄와 허물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편 51:5)라는 말씀에 나타났듯이 출생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죄를 말합니다. 우리는 본래부터 죄 가운데서 나서 죄를 짓고 살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죄인인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따라서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에게는 굉장히 담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서 이 죄악 세상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히 선하시고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죄에 물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죄악 소굴에 들어오셔서 죄인인 인간을 건져 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브리서 10:17-18)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과 선하심을 믿기 때문에 자신있게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백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사랑이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미쁘시고 의로우사 인자함과 긍휼함이 많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사하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우리를 기억해주시는 것입니다(요한일서 1:9). 다윗은 이 원리를 알았습니다.
죄인을 교훈하는 하나님의 진리
[시편 25:8]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이 세상은 사탄이 죄인을 가르치는 세상입니다. 사탄이 죄인을 가르치는 것은 결국은 속이는 것입니다. 속여 멸망으로 이끌기 위해서 가르치는 세상입니다. 또 죄인들이 죄인을 가르칩니다. 예수 님께서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태복음 15:14)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죄인인 사람이 사람을 가르쳐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히 선하시고 정직하신 분이므로 그 도와 진리로 죄인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3:8,10]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다윗은 자기가 죄인이지만 하나님은 완전히 정직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는 자신 같은 죄인도 넉넉히 가르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죄인을 가르치는 것은 주님뿐입니다. 주님은 선하시고 의로우시고 정직하시기 때문에 주님의 진리는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죄에 넘어졌을지라도 주님 앞에 배워야 됩니다. 주님 앞에 배우면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배우지 않고 자기의 꾀로 해결하고자 하면 더 깊은 죄에 빠지게 됩니다.
주의 도를 행하는 온유한 자
[시편 25:9]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마태복음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태복음 7:6)고 했습니다. 개나 돼지는 온유가 없습니다. 온유가 없다는 말은 영적인 감각이 없다는 말입니다. 영적인 감각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진리 앞에 무감각한 상태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으로서 개, 돼지 같은 사람은 온유한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 앞에 무감각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간절히 갈구하고 원하는 마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마음 상태의 사람들은 성경 말씀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5:19-20]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참 하나님은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죄악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지극히 낮추어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태복음 11:29)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주님의 도리를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의 입장에서 주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이 온유한 태도입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온유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생활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이해해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항상 배울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실천해 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절대로 배우지 못합니다.
[야고보서 1:22-25]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도는 진리의 말씀을 말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거울에 비유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금방 잊어 버린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행할 마음이 전혀 없이 말씀을 들으면 곧 잊어버리게 되므로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한 마디라도 말씀을 붙들고 그것이 실제로 되든지 안되든지 간에 실행을 해보려는 사람에게는 그 말씀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의 태도가 주님 앞에서 온유한 태도입니다. 그런 태도를 갖는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냥 배우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받았을 때에 멍에를 메야 됩니다. 말씀에 순종해야 되겠다는 마음, 실제 말씀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배우는 것이 없습니다.
인자와 진리로 인도하는 주님의 길
[시편 25:10]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한복음 14:6)고 말씀 하셨듯이 모든 사람에게는 주님이 인도하는 길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에게 무슨 길이든지 언약, 즉 약속이 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약속과 증거를 믿고 지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고 '아니다' 하는 법이 없습니다. 주님의 약속은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것 입니다. 우리가 그 약속의 증거를 믿고 따르면 언제든지 주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어주시는 은혜와 인자와 진리의 길로 인도되는 것 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고 했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인도하는 길은 은혜와 진리의 길입니다. 구원을 비롯한 모든 것이 예수님 아래서 약속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나 사랑, 구원 등 무엇이든지 예수님을 떠나서는 약속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는데 사람들이 그 약속의 말씀을 믿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결과 은혜와 진리의 길이 아닌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주님의 약속 아래 머물러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은혜와 진리의 길로 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7:5-6]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의지하면 그 마지막은 빛나고 영광이 있는 길로 인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언약과 증거를 지키지 아니하면 은혜와 진리의 길로 인도될 수 없습니다.
[시편 25:11]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죄를 지었을 때 주님의 이름 때문에 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죄를 지었다고 의기소침하면 사탄의 놀림거리가 됩니다. 주님의 이름이 훼방을 받습니다. 주님 앞에 솔직히 죄를 자백하고 말씀에 의해서 모든 문제를 회복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주님의 이름을 쓰고 사는 사람답게 살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경외하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삶
[시편 25: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이 세상에는 길이 많습니다. 아담의 길도 있고 가인의 길도 있고 노아의 시대 사람의 길도 있고 롯의 시대 사람의 길 등 많은 길이 있습니다. 사탄은 많은 길을 만들어 사람들이 바른 길을 찾지 못하도록 감추어놓고 있습니다.
만일 죄를 짓고 그 죄에서 확실히 놓임을 받지 못하면 구원을 받았어도 올바른 길을 찾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 때문에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다시 용기 있는 신앙생활을 하면 자기가 갈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길은 바로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보다도 더 하나님 앞에 복 받는 길입니다.
[시편 25:13-14]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창세기 18:17-1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친밀했습니다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는 하실 일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소돔 고모라 성이 멸망 받을 것을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과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은 주님의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성령을 따라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2:10-12)고 한 대로 은혜로 주신 것이 많은데 그것을 모르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친밀하다는 말은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성실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생활
[시편 25: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잠언 13:14]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 사람으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느니라
이 세상에는 사탄이 쳐놓은 그물, 올무가 많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사탄이 쳐놓은 그물 때문에 바른 길로 들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원받은 다음에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머리 속에 있는 어떤 습관이나 사상의 껍질을 벗어야 됩니다. 그것이 일차적으로 그물이 되어 올바른 신앙생활을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25:16-18]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곤난에서 끌어 내소서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다윗은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죄를 지었거나 시험이 있을 때 모든 문제를 주님과 의논합니다. 죄를 짖고 어려움을 당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인자하시고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므로 어떤 경우에라도 죄를 지었으면 솔직하게 주님 앞에 자백해야 합니다.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죄를 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친근하게 주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시편 25:19-20]
내 원수를 보소서 저희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함이니이다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치 말게 하소서
내 원수들은 마귀떼들입니다. 죄인이 피할 곳은 주님뿐입니다.
[시편 25:21-22]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구속하소서
성실하다는 말은 주님이 변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시는 데 변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지키시는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얼마나 은혜롭고 축복스럽습니까? 이 세상에 나름대로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들으면 살 수 있는 이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미한 음성 한 마디를 들었는데 우리 마음속에 생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사는 인생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시편 25편은 다윗이 죄 지은 것을 하나님께 자백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내용입니다. 어떤 죄를 지었을 때 죄를 짓는 것도 문제지만 그 죄를 지은 결과 믿음에서 떠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그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경우가 있는 반면, 가인처럼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모릅니다"라고 거짓말함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아주 멀어져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시험을 만나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거기에 주님의 길과 진리가 있고 주님의 도가 있습니다. 로마서 12장에 보면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처지나 환경에 처했건 간에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도와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성경을 잘 모르고 또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 길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린도전서 1:30)라는 말씀대로 예수님은 우리의 지혜가 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는 마음이 진실하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지혜가 생겨서 시험이 왔을 때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만났을 때에 그 시험의 뜻이 무엇인지 또 그 시험을 견디고 이겨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지혜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에는 여러가지 시험이 많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사회적인 환경, 구원받은 사람간의 문제 등 여러가지 시험이 있는데 그러한 모든 시험에는 길이 있습니다.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시편 25:4)라는 말씀대로 시험을 피할 길이 있는데 자신이 그 길을 알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시험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피할 길도 주신다고 하셨는데 우리에게 믿음이 없거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 때에는 그 길을 잘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에 넘어지는 사람이 많은 것은 그것을 주님께 고하지 않고 제멋대로 하여 주의 길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떤 시험이나 어려움 혹 죄를 지었을 경우에라도 틀림없이 주님의 도가 있습니다. 그 주님의 도는 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길과 도를 배워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신앙생활
다윗은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거나 혹 죄를 지었을 경우에도 자기의 수단이나 세상 방법을 따르지 않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는 길을 주님께 바랐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시험당할 때에 주님의 길과 진리를 바라면 피할 길을 주십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는 말은 모든 일에 주님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죄를 지었을 때에도 그 죄를 주님께 맡김으로써 죄 사함 받는 길이 있듯이 모든 일을 주님께 맡긴다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자기 꾀와 힘으로 사는 사람은 주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사느냐에 대한 말씀입니다.
한 므나를 가지고 온 사람은 주님을 엄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주님 앞에 설 때에 그 받은 한 므나가 없어지 고 나면 주님이 자기를 심판하시고 꾸지람하실까 두려워 한 므나 를 가지고 장사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긍휼이 많으시고 인자하심이 풍성한 분으로 믿고 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심에 근거해서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바라고 믿고 있습니까? 마음속에 항상 주님께 두려운 마음이나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한 마음의 태도는 주님을 무서운 주님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양심에 괴로움이 있고 주님께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은 한 므나를 가지고 온 사람처럼 주님을 엄하게 섬긴다는 말입니다.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선
우리는 본래 아담이 가진 선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선과 악에 대한 개념 즉 잘못했다, 죄를 지었다는 개념이 있으니까 언제나 불안하고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은 하나님 안에서 흘러 나오는 사랑의 선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용서해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입니다. 그 하나님의 선 안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인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다윗이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라고 했는데 소시의 죄와 허물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편 51:5)라는 말씀에 나타났듯이 출생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죄를 말합니다. 우리는 본래부터 죄 가운데서 나서 죄를 짓고 살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죄인인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따라서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에게는 굉장히 담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서 이 죄악 세상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히 선하시고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죄에 물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죄악 소굴에 들어오셔서 죄인인 인간을 건져 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브리서 10:17-18)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과 선하심을 믿기 때문에 자신있게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백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사랑이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미쁘시고 의로우사 인자함과 긍휼함이 많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사하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우리를 기억해주시는 것입니다(요한일서 1:9). 다윗은 이 원리를 알았습니다.
죄인을 교훈하는 하나님의 진리
이 세상은 사탄이 죄인을 가르치는 세상입니다. 사탄이 죄인을 가르치는 것은 결국은 속이는 것입니다. 속여 멸망으로 이끌기 위해서 가르치는 세상입니다. 또 죄인들이 죄인을 가르칩니다. 예수 님께서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태복음 15:14)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죄인인 사람이 사람을 가르쳐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히 선하시고 정직하신 분이므로 그 도와 진리로 죄인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죄인이지만 하나님은 완전히 정직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는 자신 같은 죄인도 넉넉히 가르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죄인을 가르치는 것은 주님뿐입니다. 주님은 선하시고 의로우시고 정직하시기 때문에 주님의 진리는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죄에 넘어졌을지라도 주님 앞에 배워야 됩니다. 주님 앞에 배우면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배우지 않고 자기의 꾀로 해결하고자 하면 더 깊은 죄에 빠지게 됩니다.
주의 도를 행하는 온유한 자
마태복음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태복음 7:6)고 했습니다. 개나 돼지는 온유가 없습니다. 온유가 없다는 말은 영적인 감각이 없다는 말입니다. 영적인 감각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진리 앞에 무감각한 상태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으로서 개, 돼지 같은 사람은 온유한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 앞에 무감각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간절히 갈구하고 원하는 마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마음 상태의 사람들은 성경 말씀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참 하나님은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죄악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지극히 낮추어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태복음 11:29)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주님의 도리를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의 입장에서 주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이 온유한 태도입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온유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생활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이해해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항상 배울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실천해 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절대로 배우지 못합니다.
도는 진리의 말씀을 말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거울에 비유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금방 잊어 버린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행할 마음이 전혀 없이 말씀을 들으면 곧 잊어버리게 되므로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한 마디라도 말씀을 붙들고 그것이 실제로 되든지 안되든지 간에 실행을 해보려는 사람에게는 그 말씀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의 태도가 주님 앞에서 온유한 태도입니다. 그런 태도를 갖는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냥 배우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받았을 때에 멍에를 메야 됩니다. 말씀에 순종해야 되겠다는 마음, 실제 말씀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배우는 것이 없습니다.
인자와 진리로 인도하는 주님의 길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한복음 14:6)고 말씀 하셨듯이 모든 사람에게는 주님이 인도하는 길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에게 무슨 길이든지 언약, 즉 약속이 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약속과 증거를 믿고 지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고 '아니다' 하는 법이 없습니다. 주님의 약속은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것 입니다. 우리가 그 약속의 증거를 믿고 따르면 언제든지 주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어주시는 은혜와 인자와 진리의 길로 인도되는 것 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고 했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인도하는 길은 은혜와 진리의 길입니다. 구원을 비롯한 모든 것이 예수님 아래서 약속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나 사랑, 구원 등 무엇이든지 예수님을 떠나서는 약속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는데 사람들이 그 약속의 말씀을 믿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결과 은혜와 진리의 길이 아닌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주님의 약속 아래 머물러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은혜와 진리의 길로 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의지하면 그 마지막은 빛나고 영광이 있는 길로 인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언약과 증거를 지키지 아니하면 은혜와 진리의 길로 인도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죄를 지었을 때 주님의 이름 때문에 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죄를 지었다고 의기소침하면 사탄의 놀림거리가 됩니다. 주님의 이름이 훼방을 받습니다. 주님 앞에 솔직히 죄를 자백하고 말씀에 의해서 모든 문제를 회복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주님의 이름을 쓰고 사는 사람답게 살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경외하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삶
이 세상에는 길이 많습니다. 아담의 길도 있고 가인의 길도 있고 노아의 시대 사람의 길도 있고 롯의 시대 사람의 길 등 많은 길이 있습니다. 사탄은 많은 길을 만들어 사람들이 바른 길을 찾지 못하도록 감추어놓고 있습니다.
만일 죄를 짓고 그 죄에서 확실히 놓임을 받지 못하면 구원을 받았어도 올바른 길을 찾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 때문에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다시 용기 있는 신앙생활을 하면 자기가 갈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길은 바로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보다도 더 하나님 앞에 복 받는 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친밀했습니다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는 하실 일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소돔 고모라 성이 멸망 받을 것을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과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은 주님의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성령을 따라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2:10-12)고 한 대로 은혜로 주신 것이 많은데 그것을 모르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친밀하다는 말은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성실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생활
이 세상에는 사탄이 쳐놓은 그물, 올무가 많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사탄이 쳐놓은 그물 때문에 바른 길로 들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원받은 다음에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머리 속에 있는 어떤 습관이나 사상의 껍질을 벗어야 됩니다. 그것이 일차적으로 그물이 되어 올바른 신앙생활을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죄를 지었거나 시험이 있을 때 모든 문제를 주님과 의논합니다. 죄를 짖고 어려움을 당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인자하시고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므로 어떤 경우에라도 죄를 지었으면 솔직하게 주님 앞에 자백해야 합니다.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죄를 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친근하게 주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내 원수들은 마귀떼들입니다. 죄인이 피할 곳은 주님뿐입니다.
성실하다는 말은 주님이 변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시는 데 변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지키시는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얼마나 은혜롭고 축복스럽습니까? 이 세상에 나름대로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들으면 살 수 있는 이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미한 음성 한 마디를 들었는데 우리 마음속에 생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사는 인생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