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8편]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시편 18:1-29]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인함이로다

그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저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 발 아래는 어둑캄캄하도다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로 높이 뜨셨도다

저가 흑암으로 그 숨는 곳을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

그 앞에 광채로 인하여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뇌성을 발하시고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시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그 살을 날려 저희를 흩으심이여 많은 번개로 파하셨도다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을 인하여 물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터가 나타났도다

저가 위에서 보내사 나를 취하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 내셨도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저희는 나보다 힘센 연고로다

저희가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내가 또한 그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지켰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 목전에 내 손의 깨끗한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이 시는 다윗이 사울 왕과 다른 모든 원수들에게서 구원된 때에 지은 시입니다.





고난 속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구원


[시편 18:1-2]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하나님을 가리켜 여러 말로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다윗이 추상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 많은 고통 속에서 직접 체험한 사실입니다.



[시편 18: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구원을 얻으리로다"라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구원을 받았고 또 앞으로도 받을 것을 말합니다.



[시편 18:4-6]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이 들어주시고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도 바울이 그러한 경험을 한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에 첫째로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다'는 식으로,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떠났으면서도 어려움이 닥쳐오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을 갖기 쉽습니다.


 다윗이나 바울은 그런 마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하나님의 품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믿음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당하는 어려움이 손해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 시험을 참고 견디면 굉장한 유익이 오는 것을 알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의 생애는 그렇게 일관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8-10]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바울도 다윗과 같이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지경까지 갔을 때 하나님의 손길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는 말씀처럼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는 것이 실상은 자기 자신을 포기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수단과 방법 또는 어떤 물질적인 힘을 가지고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어려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을 때 그것이 고난이고 환난입니다. 그때는 내가 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18:7-9]

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인함이로다

그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저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 발 아래는 어둑캄캄하도다


 이 세상은 아담을 실패하게 만들었던 사탄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자연계에서 소낙비가 오고 천둥 번개 치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실제 이것은 큰 환난을 상징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베드로후서 3:6)라는 말씀은 노아의 홍수 시대를 말하는 것인데 노아의 홍수 때에 그렇게 많은 비가 쏟아질 정도면 얼마만큼 천둥 번개치고 폭풍이 일었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베드로후서 3:7)라는 말씀처럼 이 세상 마지막에 핵전쟁으로써 심판 받을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3:10-15]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또 구원을 얻되 자기 목숨 하나 살리기에 급급한 생활을 한 사람은 심판 날에 살아온 공력이 불타버립니다. 만일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었다면 심판 날에 불타버릴 것입니다. 우리가 심판의 불쏘시개는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一그리스도


[시편 18:15]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을 인하여 물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터가 나타났도다


[베드로후서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여기에 드러난다는 말은 어떤 사본에 '타지리라'고 되어 있는데 그 모든 정체가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여기 18편에도 물밑이 드러난다고 했는데 드러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귀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던 그 모든 것이 가치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이 비밀 하나를 알면 다른 비밀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비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면 다른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2: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이 세상 마지막 심판 때가 오지 않더라도 예수님을 참으로 알고 나면 세상에 숨겨져 있는 사탄의 비밀을 어느 정도 알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7:1-7]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 이 열 뿔 가진 짐승이 적그리스도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아내가 음녀인데, 이것은 타락한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아내인데 타락해서 적그리스도를 남편으로 맞이하는 것이 음녀입니다. 열 뿔 가진 짐숭이 적그리스도이므로 거기에 적그리스도의 비밀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두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비밀이고 하나는 사탄의 비밀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비밀을 일부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비밀 일부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많이 알면 알수록 사탄의 비밀도 많이 알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2:6-12]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세상이 창조될 때 감취었던 하나님의 지혜, 그것이 비밀이었습니다. 그 감취었던 지혜는 하나님의 계획이고 예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던 비밀을 깊이 알면 알수록 더 큰 축복이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것도 우리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성경 속에 있었던 것인데 어느날 말씀이 깨달아졌을 때 구원이 와 버렸습니다.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축복이 있는데 눈을 뜨게 되면 그 많은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눈이 그의 비밀을 보게 되면 내 것이 됩니다.





주의 그림자로서의 다윗


[시편 18:16-22]

저가 위에서 보내사 나를 취하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 내셨도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저희는 나보다 힘센 연고로다 

저희가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위에서 보내사 나를 취하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 내셨도다"라는 말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이 오실 때 우리는 건짐을 받습니다. 여기서 "많은 물"은 바로 환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생애에서 두 가지 면을 봐야 됩니다. 한 면은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이 그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는 면이고 또 다른 한 면은 그의 사생활입니다. 사생활에서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통해서 죄를 지었습니다. 그 다음에도 몇 번 실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로마서 7:24 —25)는 말씀대로 우리의 육신은 죄의 법을 섬기면서 생활을 합니다. 이 세상은 육신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육신의 습관이나, 세상 법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죄를 안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죄를 지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육신적인 부분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고 그분의 뜻을 위해서 살아간 것은 온전했습니다. 물론 우리아의 아내를 통해서 지은 죄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들이 죽었고, 자신의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다니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육신적으로 짓는 죄에 대해서도 징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징계라는 것을 반드시 벌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회개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 기름 부음을 받고 왕으로 가는 그 길에서 무서운 시련과 고난을 당했지만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에게 맡긴 일을 충실히 감당했습니다. 그 부분이 예수님의 의이고 그림자입니다. 우리 자신에게는 의로운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가운데서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의 의가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한 것입니다. 다윗의 전 생애를 살펴보면 파렴치하고 심각한 죄를 지었는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비록 우리가 때때로 실수하고 죄 짓고 하지만 우리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의를 따라 상 받을 것을 준비할 수 있고, 깨끗한 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주님의 피로 말미암아 씻어지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충실히 살면 상 받을 것을 준비하는 것이고 깨끗한 손을 갖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그 일에 있어서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에게는 그 양면이 있습니다.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고 한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우리들 개인의 죄 짓는 면만 보시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가 얼마만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마음을 쏟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씀을 깨닫고 안식을 얻었다는 것은 기름 부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육신의 것이 십자가에 처리되었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고 기름 부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일을 맡겼다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가 오순절처럼 기름 부어진 것이니까 이 안에서 우리들이 정말 주님을 섬기는가를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이 정직하고 완전하다고 해도 주님 보시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직하고 죄도 짓지 않고 인격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도 하나님 보시기에 의미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기름 부음 안에서 얼마나 충실하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하면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말씀은 많은 모순이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이 중요합니다.



[시편 18:23-24]

내가 또한 그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지켰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 목전에 내 손의 깨끗한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마치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만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진실한 마음과 믿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위대로 받는 주님의 상급


[시편 18:25-26]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이 말씀은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그 왼편에 두어 분별한 것처럼 모든 민족을 오른편, 왼편으로 갈라놓고 오른쪽 사람들에게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고 헐벗을 때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 언제 우리가 그렇게 했습니까?"라고 오른쪽의 의인들이 반문하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5:32-40). 그 말씀을 보면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같이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구원받은 후에 행위대로 받을 주님의 상급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영생에 들어가라'고 말씀했습니다. 구원받은 후 나타난 결과를 말합니다.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신다"(데살로니가후서 1:6 —7)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말씀대로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주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나타내는 자에게는 주님의 사랑의 상급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2:10-13]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우리는 십계명을 지키기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대신 우리에게는 자유의 율법이 있습니다. 이 말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행할 수 있는 법이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고 하셨습니다.



[요한일서 2:7-8]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사도 요한이 참 어려운 말을 했습니다. 이 계명의 원리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계명의 가장 큰 강령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상숭배나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게 되고, 또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게 되는데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있으면 새 계명이고 어두운 가운데 있으면 옛 계명입니다. 여기에서 참 빛이 벌써 비취었다는 말은 진리의 빛이 마음에 비친 것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왔을 때에 그 성령은 자유입니다. 그 자유로운 성령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생활은 자유의 계명입니다.



 그러나 죄를 함부로 못 짓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죄를 짓도록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자유의 율법이 속에 있기 때문에 성령이 죄를 짓도록 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고 했습니다.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율법은 아니지만 성령의 감동이 있으므로 불순종하면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자유의 율법은 고린도전서 13장에 있는 말씀대로 성령의 뜻을 따라 성도가 서로 사랑하고 성령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할 때에 양심이 명하는 대로 해야 하는데, 양심이 명한 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계속 그렇게 하면 양심이 마비되어 화인 맞습니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린도전서 11:1)고 했고, 또 한때는 "내가 내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판단하실 것이니 판단을 하나님께 맡긴다고 말씀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나타나는 주님의 빛


[시편 18:27-28]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계시록 1장에 보면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그 일곱 교회는 일곱 촛대입니다.


[요한계시록 1: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이 신약시대는 일곱 교회로 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에베소 교회부터 라오디게아 교회까지 일곱 시대입니다. 그래서 시편에 다윗이 '주께서 등불을 켜시고 흑암을 밝히시리이다'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빛을 이 세상에 나타내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빛이 교회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는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고, 그 기름 부음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됩니다.





주님의 완전한 승리


[시편 18: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이것은 다윗이 완전히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또 그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를 다 정복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가나안의 일곱 족속뿐만 아니라 북쪽의 시리아, 동쪽의 암몬이나 모압 그리고 에돔 같은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았습니다. 이것 역시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 결과 이 복음이 모든 이방 세계에 전파되고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담을 뛰어넘어 온 이방 세계의 빛이 되고 복음을 전파할 것을 말합니다. 그 결과로 우리도 주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시편 18:30-4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뇨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케 하시며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주께서 또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로 실족지 않게 하셨나이다

내가 내 원수를 따라 미치리니 저희가 망하기 전에는 돌이키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저희를 쳐서 능히 일어나지 못하게 하리니 저희가 내 발 아래 엎드러지리이다

대저 주께서 나로 전쟁케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로 내게 굴복케 하셨나이다

주께서 또 내 원수들로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나로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버리게 하셨나이다


 이런 말씀들은 그 당시 다윗에게 있었던 현실이고,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이 모든 사탄으로부터 완전히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 순종치 않던 모든 자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됩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들의 마지막


[잠언 1:24-31]

내가 부를찌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찌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을 보시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고 말씀하시며 유대인들에게 간곡히 눈물로 호소했지만,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완전히 승리하시고 이 세상을 정복하실 때에 예수님의 교훈을 받지 않던 그들의 결과를 다윗이 예언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 18:41—50] 

저희가 부르짖으나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대답지 아니하셨나이다

내가 저희를 바람 앞에 티끌 같이 부숴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쏟아 버렸나이다

주께서 나를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열방의 으뜸을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저희가 내 풍성을 들은 즉시로 내게 순복함이여 이방인들이 내게 복종하리로다

이방인들이 쇠미하여 그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찌로다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수하시고 민족들로 내게 복종케 하시도다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실로 나를 대적하는 자의 위에 나를 드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영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다윗 당시에는 이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주변 국가들을 정복했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이방 사람들도 다윗을 섬겼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는 본래 이방 사람이고 하나님이 없는 백성이었습니다. 다윗은 기름 부음 받은 후 많은 시련과 고난을 거치고 그 결과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예수님의 예표이고 다윗의 시는 예수님에 대한 예언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결국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한 것입니다. 주님은 그 많은 고통과 환난을 거쳐 구원자가 되시고 마지막에 왕으로 재림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