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영훈아. 너 땅굴 얘기 들어봤니? 어제 우리 아버지께서 땅굴 구경 갔다 오신 얘기를 해주셨는데 아주 재미있더라.”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창수가 말을 걸었다.
“몇 분이나 가셨는데?”
“불교 신도회에서 단체로 갔는데 30명 가량 됐나봐. 민통선 휴게소에서 군인복으로 갈아입고 휴전선 가까이 가니까 이북에서 큰 소리로 방송하는데 글쎄, ‘ 땅굴은 남쪽 도당들이 파놓고 우리 이북에서 팠다고 악선전하는 것은 이북을 나쁘게 보이기 위한 남조선 도당들의 짓이다. 남조선 인민들은 속으면 안된다.’고 선전을 하더라지 뭐니? 그리고 땅굴에 갔는데 정말 무시무시하더래.”
“그러면 이북에서 이쪽의 구멍까지 다 팠을까?”
“그것은 아니래. 이쪽에서 탐지하고 있다가 이북에서 어디로 파고 들어온다는 걸 알게 되면 이쪽에서 발굴하기 시작한대.”
“파고 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될까?”
“그것을 탐지하는 기계가 있나봐.”
“에이, 빨리 통일이 되어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
“우리 외가도 이북에 있다는데 통일이 돼서 한번 가 봤으면 얼마나 좋아. 우리 엄마는 외삼촌하고 외할아버지하고 이북에서 38선을 넘어오다가 외할아버지는 그만 공산군의 총에 맞아 돌아가시고 외삼촌하고만 피난왔는데 너무 겁이 나서 염주를 자꾸 돌리면서 염불을 했더니 겨우 살아서 넘어왔대. 그래서 ‘부처님이 보호해주셨다.’고 그렇게 절에 열심이셔.”
“그러면 외할아버지는 왜 총에 맞아 돌아가셨지?”
창수가 말하는 동안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래도 창수와 영훈이는 소리를 낮춰 소근거 린다.
“그러게 말야.”
“38선은 언제 무너질까?”
“글쎄……”
그러는데 선생님이 두 사람을 눈여겨 보셨다.
“영훈이와 창수는 무슨 얘길 그렇게 재미있게 하니?
영훈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일어서서 말했다.
“창수네 아버지께서 38선 땅굴을 보고 오셨는데, 이북에서 땅굴은 남한에서 팠고 38선도 미제국주의자들이 만든 거라고 방송하더래요. 그게 맞는 말이에요?”
“그건 아니야. 이북에서 악선전하는거야. 심지어는 6-25 사변도 이남에서 먼저 시작했다고 거짓 선전하는 걸. 소련의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공개된 비밀문서에도 전쟁은 이북에서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단다. 온 세상이 다 아는데도 억지를 쓰는거지.
38선은 소련과 미국이 얄타비밀회담 때에 정한 것이야. 그때는 일본이 우리나라 전체를 지배할 때인데 2차대전에서 일본이 항복하면 38선 이북은 소련이 점령하고 그 이남은 미국이 점령하기로 비밀 약속이 돼서 해방될 때 38선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소련 군대가 점령해서 갈라진 것이란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38선으로 허리가 잘린 나라가 되었지.
그후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고 휴전선이 생겨 가족이나 친척이 살아 있으면서도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지. 이남은 잘 사는데 이북은 아직도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
“그런데 선생님,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면 통일을 시켜 주시고 불쌍한 이북 동포들을 구원해주시지 않아요?”
“글쎄다, 해방 후 지금까지 열심히 기도는 했는데 아직 통일이 안되고 있다.”
“선생님, 기독교에서 기도하고 불교에서 염불하고 천도교나 다른 종교에서도 각자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를 하는데 왜 통일이 되지 않을까요?”
은덕이는 주일학교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해서 그렇게 물었다.
“글쎄, 좀 난처한 질문이구나. 성경에 보면 38년 된 병자가 있었는데 예수님이 고쳐주신 일이 있단다. 38선이 고장난 병자라면 예수님이 고쳐주실 수 있을 텐데…. 그렇지만 은덕아, 아무나 기도를 한다고 해서 그 기도를 다 들어주신다면 세상은 뒤죽박죽이 되지 않겠니? 저마다 소원이 다르니까. 38년 된 병자의 얘기를 읽어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단다.”
베데스다 못가에서
“아야야! 아이고 내 팔자야. 나는 왜 이 몹쓸 병에 걸려서 저 사람들처럼 걸어다니지도 못하고 이렇게 고생하나.”
38년 된 병자는 늘 그렇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살았다. 어느날 먼 친척 되는 사람이 병자를 찾아왔다.
“형님, 이렇게 고생이 심하신데 먹고 살기 바빠서 자주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죄송해요. 오늘은 형님께 반가운 소식을 가지고 왔어요.”
“아이고 죽겠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어서 말해봐.”
“예루살렘 성전 근처에 베데스다란 못이 있는데 못물이 끓어오를 때에 제일 먼저 뛰어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다 낫는답니다. 형님도 그곳에 가기를 원하시면 모셔다 드리지요.”
“아이구 고맙구만. 그러면 날 좀 데려다 주게나.”
그리하여 이 병자는 베데스다 못가에 있는 행각에 누워 물이 끓어오르기를 기다렸다. 베네스다 못물은 일 년에 몇번 움직이는데, 어느 때 움직이는지를 알 수 없었다. 병을 앓은 지 38년 된 이 병자도 행각에 있는 다른 병자들처럼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 물이다. 물이 움직인다.”
누군가 소리치기가 무섭게 텀벙하면서 발 빠른 사람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렇게 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젊고 병이 가벼운 사람만 항상 병이 나았다. 다섯 개의 행각 속에는 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어 신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그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먼저 뛰어들어서 병이 나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38년 된 이 병자도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고 여러 번 물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지만 못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유, 이걸 어쩌죠? 물이 움직여도 들어가지 못하시는군요. 늦게 와서 이렇게 먼저 고쳐서 가게 되니 죄송합니다.”
병이 나은 사람들은 그를 위로하고는 떠나갔다. 그때마다 병자는 절망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사람이 나타났다. 힘없이 누워 있던 병자는 깜짝 놀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 인자한 눈길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병자 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는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는 공손히 대답했다.
“네, 선생님이여, 하지만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간답니다.”
그때 그 사람이 힘 있게 말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38년 간 일어나지 못하던 그 병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자리를 뚤뚤 말더니 어깨에 메고 걷기 시작했다.
은덕이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너무나 신기해서 작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선생님, 지금도 그런 못이 있나요?”
“그렇게 모든 병이 낫는 못은 없지만 그와 비슷한 못을 본 적은 있다. 선생님이 미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록키 산맥 가까이에 옐로스톤이라고 하는 큰 공원이 있는데 거기에는 곳곳에서 밑으로부터 수증기가 올라오고 어떤 물웅덩이에서는 물이 끓고 있는 것을 여러 곳 보았다.
물이 너무 뜨거워서 사람이 들어갈 수 없었단다. 그런데 한 곳에 가니 큰 호텔이 있고 호텔 한편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약 한 시간 간격으로 땅 속에서 갑자기 물과 수증기가 높이 솟아오르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기 위해 호텔로 찾아온다고 한다. ”
“선생님, 앓고 있던 사람이 어떻게 일어났을까요?”
나경이가물었다.
“그 병자가 예수님의 명령을 믿고 순종했기 때문이 아니겠니?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지만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명령에 따라 일어났고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란다.
요한복음 12장 50절에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고 한 말씀이 있다.
죽은 나사로에게도 ‘일어나라.’고 하시니 살아서 나왔고 파도나 바람을 보고 ‘조용하라.’고 하시니 조용해졌다. 예수님의 명령은 생명이 있는 명령이다.
병을 38년 동안이나 앓은 병자가 예수님이 명령을 내리자 생명이 돌아와서 병은 없어지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단다. 그때 그가 ‘선생님, 저는 병자입니다. 저는 일어날 수도, 걸을 수도 없습니다.’라고 핑계를 대고 그대로 누워 있었으면 나을 수가 없었을거야. 그 명령에 무조건 순종했기 때문에 병에서 해방된 것이다.”
안식일 문제
“아, 이제 나는 나았다. 이제는 살았다. 나도 이렇게 걸을 수 있다. ”
38년 동안이나 누워 있던 병자가 자리를 둘러메고 뛰기도 하면서 가고 있는데 어떤 점잖게 생긴 사람이 다가와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유대의 바리새인 종교 지도자였다.
“여보시오,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시오?”
“네? 오늘 말인가요? 오늘은 안식일이지요.”
“그런데 왜 자리를 들고 걸어가시오?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오.”
“저를 낫게 해주신 분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해서 걸었을 뿐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아파서 자리에 누워 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요? 지금 어디 있소? 그런 나쁜 사람이 있나. 안식일을 범하고 병을 고치다니.”
“저는 그분이 누구신지 어디에 계시는지 모릅니다.”
그후 시간이 지나서 그는 성전 안에서 예수님을 다시 만났다. 그가 꾸벅 절을 하자, 예수님이 말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그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저기, 예수 선생이 있다.” 고 소리치며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그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병이 나은 사람은 유대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보시오, 나를 낫게 해주신 분은 바로 저분이오. 예수님이란 말이오. ”
그는 기뻐 소리 쳤지만 유대인들은 이를 달리 받아들였다.
“예수가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잘못된 일이오. 안식일 말고도 다른 날이 있는데 하필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안식일을 범한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미워하고 박대했다.
한번은 어느 안식일 아침 일찍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길을 가다가 배가 고파서 길가에 있는 밀밭에 들어가 밀 이삭을 잘라 부벼 먹은 적이 있었는데 바리새인들은 그것도 문제를 삼았다.
“예수 선생, 보시오. 당신 제자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합니까?”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 하였느냐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마가복음 2:25 —28)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 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2:5—8)
“선생님, 남의 것을 허락 없이 먹으면 죄가 되잖아요?” 나경이가물었다.
“아니다. 유대나라에서는 배고플 때에 그렇게 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고 남의 것을 주머니에 넣어서 가지고 가면 죄가 된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한다고 시비를 걸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한다’는 말씀을 인용하셨다.
제자들이 그 전날 저녁을 먹지 못하고 잤는지 배가 고파서 못 견디겠는데 밀을 보고도 안식일이므로 잘라먹지 못하면 하나님이 불쌍하게 보신다는 뜻이다. 그런 때는 안식일이라도 밀을 잘라서 먹고 고통이 없는 것을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안식일에 사람이 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사람의 마음에 진정한 안식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 문제라고 말씀하신 거란다.”
그후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셔서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려고 하시자 또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님은 그러시면서 손 마른 사람의 손을 고쳐주셨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나가서 어떻게 예수를 죽일까 의논했다.
“선생님, 너무 어려워서 잘 모르겠어요.”
영훈이가 말했다.
“응, 사실 어려울거야.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외형적으로 일을 하지 않고 쉬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이 평안하고 기쁜 상태로 자기의 수고를 그친다는 의미이다.
38년 된 병자는 38년 간 안식일마다 일은 아니했으나 한번도 평안히 쉬지 못했다. 오랜 병고에 시달려 마음이 고통스러웠는데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셨기 때문에 참 된 평안을 누릴 수 있었지. 자리를 들고 가는 일을 했지만 마음에는 고통이 없고 기뻐서 춤을 추었던 것이다. 그 날이 그 병자에게는 참 안식을 하는 날이었단다."
"정말 그렇겠는데요."
【익힘문제】
1. 38년 된 병자는 어떻게 해서 병이 낫게 되었을까요?
2. 구약 시대에는 안식을 범하면 어떤 벌을 받았을까요?
다음 성경 구절을 읽고 연구해보자. (출애굽기 31:14, 에스겔 20:13)
3. 예수님은 안식일의 참된 주인이셨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참 안식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4.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기도를 기뻐하실까요?
“얘, 영훈아. 너 땅굴 얘기 들어봤니? 어제 우리 아버지께서 땅굴 구경 갔다 오신 얘기를 해주셨는데 아주 재미있더라.”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창수가 말을 걸었다.
“몇 분이나 가셨는데?”
“불교 신도회에서 단체로 갔는데 30명 가량 됐나봐. 민통선 휴게소에서 군인복으로 갈아입고 휴전선 가까이 가니까 이북에서 큰 소리로 방송하는데 글쎄, ‘ 땅굴은 남쪽 도당들이 파놓고 우리 이북에서 팠다고 악선전하는 것은 이북을 나쁘게 보이기 위한 남조선 도당들의 짓이다. 남조선 인민들은 속으면 안된다.’고 선전을 하더라지 뭐니? 그리고 땅굴에 갔는데 정말 무시무시하더래.”
“그러면 이북에서 이쪽의 구멍까지 다 팠을까?”
“그것은 아니래. 이쪽에서 탐지하고 있다가 이북에서 어디로 파고 들어온다는 걸 알게 되면 이쪽에서 발굴하기 시작한대.”
“파고 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될까?”
“그것을 탐지하는 기계가 있나봐.”
“에이, 빨리 통일이 되어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
“우리 외가도 이북에 있다는데 통일이 돼서 한번 가 봤으면 얼마나 좋아. 우리 엄마는 외삼촌하고 외할아버지하고 이북에서 38선을 넘어오다가 외할아버지는 그만 공산군의 총에 맞아 돌아가시고 외삼촌하고만 피난왔는데 너무 겁이 나서 염주를 자꾸 돌리면서 염불을 했더니 겨우 살아서 넘어왔대. 그래서 ‘부처님이 보호해주셨다.’고 그렇게 절에 열심이셔.”
“그러면 외할아버지는 왜 총에 맞아 돌아가셨지?”
창수가 말하는 동안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래도 창수와 영훈이는 소리를 낮춰 소근거 린다.
“그러게 말야.”
“38선은 언제 무너질까?”
“글쎄……”
그러는데 선생님이 두 사람을 눈여겨 보셨다.
“영훈이와 창수는 무슨 얘길 그렇게 재미있게 하니?
영훈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일어서서 말했다.
“창수네 아버지께서 38선 땅굴을 보고 오셨는데, 이북에서 땅굴은 남한에서 팠고 38선도 미제국주의자들이 만든 거라고 방송하더래요. 그게 맞는 말이에요?”
“그건 아니야. 이북에서 악선전하는거야. 심지어는 6-25 사변도 이남에서 먼저 시작했다고 거짓 선전하는 걸. 소련의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공개된 비밀문서에도 전쟁은 이북에서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단다. 온 세상이 다 아는데도 억지를 쓰는거지.
38선은 소련과 미국이 얄타비밀회담 때에 정한 것이야. 그때는 일본이 우리나라 전체를 지배할 때인데 2차대전에서 일본이 항복하면 38선 이북은 소련이 점령하고 그 이남은 미국이 점령하기로 비밀 약속이 돼서 해방될 때 38선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소련 군대가 점령해서 갈라진 것이란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38선으로 허리가 잘린 나라가 되었지.
그후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고 휴전선이 생겨 가족이나 친척이 살아 있으면서도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지. 이남은 잘 사는데 이북은 아직도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
“그런데 선생님,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면 통일을 시켜 주시고 불쌍한 이북 동포들을 구원해주시지 않아요?”
“글쎄다, 해방 후 지금까지 열심히 기도는 했는데 아직 통일이 안되고 있다.”
“선생님, 기독교에서 기도하고 불교에서 염불하고 천도교나 다른 종교에서도 각자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를 하는데 왜 통일이 되지 않을까요?”
은덕이는 주일학교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해서 그렇게 물었다.
“글쎄, 좀 난처한 질문이구나. 성경에 보면 38년 된 병자가 있었는데 예수님이 고쳐주신 일이 있단다. 38선이 고장난 병자라면 예수님이 고쳐주실 수 있을 텐데…. 그렇지만 은덕아, 아무나 기도를 한다고 해서 그 기도를 다 들어주신다면 세상은 뒤죽박죽이 되지 않겠니? 저마다 소원이 다르니까. 38년 된 병자의 얘기를 읽어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단다.”
베데스다 못가에서
“아야야! 아이고 내 팔자야. 나는 왜 이 몹쓸 병에 걸려서 저 사람들처럼 걸어다니지도 못하고 이렇게 고생하나.”
38년 된 병자는 늘 그렇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살았다. 어느날 먼 친척 되는 사람이 병자를 찾아왔다.
“형님, 이렇게 고생이 심하신데 먹고 살기 바빠서 자주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죄송해요. 오늘은 형님께 반가운 소식을 가지고 왔어요.”
“아이고 죽겠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어서 말해봐.”
“예루살렘 성전 근처에 베데스다란 못이 있는데 못물이 끓어오를 때에 제일 먼저 뛰어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다 낫는답니다. 형님도 그곳에 가기를 원하시면 모셔다 드리지요.”
“아이구 고맙구만. 그러면 날 좀 데려다 주게나.”
그리하여 이 병자는 베데스다 못가에 있는 행각에 누워 물이 끓어오르기를 기다렸다. 베네스다 못물은 일 년에 몇번 움직이는데, 어느 때 움직이는지를 알 수 없었다. 병을 앓은 지 38년 된 이 병자도 행각에 있는 다른 병자들처럼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 물이다. 물이 움직인다.”
누군가 소리치기가 무섭게 텀벙하면서 발 빠른 사람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렇게 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젊고 병이 가벼운 사람만 항상 병이 나았다. 다섯 개의 행각 속에는 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어 신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그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먼저 뛰어들어서 병이 나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38년 된 이 병자도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고 여러 번 물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지만 못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유, 이걸 어쩌죠? 물이 움직여도 들어가지 못하시는군요. 늦게 와서 이렇게 먼저 고쳐서 가게 되니 죄송합니다.”
병이 나은 사람들은 그를 위로하고는 떠나갔다. 그때마다 병자는 절망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사람이 나타났다. 힘없이 누워 있던 병자는 깜짝 놀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 인자한 눈길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병자 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는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는 공손히 대답했다.
“네, 선생님이여, 하지만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간답니다.”
그때 그 사람이 힘 있게 말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38년 간 일어나지 못하던 그 병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자리를 뚤뚤 말더니 어깨에 메고 걷기 시작했다.
은덕이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너무나 신기해서 작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선생님, 지금도 그런 못이 있나요?”
“그렇게 모든 병이 낫는 못은 없지만 그와 비슷한 못을 본 적은 있다. 선생님이 미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록키 산맥 가까이에 옐로스톤이라고 하는 큰 공원이 있는데 거기에는 곳곳에서 밑으로부터 수증기가 올라오고 어떤 물웅덩이에서는 물이 끓고 있는 것을 여러 곳 보았다.
물이 너무 뜨거워서 사람이 들어갈 수 없었단다. 그런데 한 곳에 가니 큰 호텔이 있고 호텔 한편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약 한 시간 간격으로 땅 속에서 갑자기 물과 수증기가 높이 솟아오르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기 위해 호텔로 찾아온다고 한다. ”
“선생님, 앓고 있던 사람이 어떻게 일어났을까요?”
나경이가물었다.
“그 병자가 예수님의 명령을 믿고 순종했기 때문이 아니겠니?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지만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명령에 따라 일어났고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란다.
요한복음 12장 50절에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고 한 말씀이 있다.
죽은 나사로에게도 ‘일어나라.’고 하시니 살아서 나왔고 파도나 바람을 보고 ‘조용하라.’고 하시니 조용해졌다. 예수님의 명령은 생명이 있는 명령이다.
병을 38년 동안이나 앓은 병자가 예수님이 명령을 내리자 생명이 돌아와서 병은 없어지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단다. 그때 그가 ‘선생님, 저는 병자입니다. 저는 일어날 수도, 걸을 수도 없습니다.’라고 핑계를 대고 그대로 누워 있었으면 나을 수가 없었을거야. 그 명령에 무조건 순종했기 때문에 병에서 해방된 것이다.”
안식일 문제
“아, 이제 나는 나았다. 이제는 살았다. 나도 이렇게 걸을 수 있다. ”
38년 동안이나 누워 있던 병자가 자리를 둘러메고 뛰기도 하면서 가고 있는데 어떤 점잖게 생긴 사람이 다가와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유대의 바리새인 종교 지도자였다.
“여보시오,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시오?”
“네? 오늘 말인가요? 오늘은 안식일이지요.”
“그런데 왜 자리를 들고 걸어가시오?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오.”
“저를 낫게 해주신 분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해서 걸었을 뿐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아파서 자리에 누워 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요? 지금 어디 있소? 그런 나쁜 사람이 있나. 안식일을 범하고 병을 고치다니.”
“저는 그분이 누구신지 어디에 계시는지 모릅니다.”
그후 시간이 지나서 그는 성전 안에서 예수님을 다시 만났다. 그가 꾸벅 절을 하자, 예수님이 말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그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저기, 예수 선생이 있다.” 고 소리치며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그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병이 나은 사람은 유대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보시오, 나를 낫게 해주신 분은 바로 저분이오. 예수님이란 말이오. ”
그는 기뻐 소리 쳤지만 유대인들은 이를 달리 받아들였다.
“예수가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잘못된 일이오. 안식일 말고도 다른 날이 있는데 하필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안식일을 범한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미워하고 박대했다.
한번은 어느 안식일 아침 일찍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길을 가다가 배가 고파서 길가에 있는 밀밭에 들어가 밀 이삭을 잘라 부벼 먹은 적이 있었는데 바리새인들은 그것도 문제를 삼았다.
“예수 선생, 보시오. 당신 제자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합니까?”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 하였느냐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마가복음 2:25 —28)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 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2:5—8)
“선생님, 남의 것을 허락 없이 먹으면 죄가 되잖아요?” 나경이가물었다.
“아니다. 유대나라에서는 배고플 때에 그렇게 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고 남의 것을 주머니에 넣어서 가지고 가면 죄가 된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한다고 시비를 걸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한다’는 말씀을 인용하셨다.
제자들이 그 전날 저녁을 먹지 못하고 잤는지 배가 고파서 못 견디겠는데 밀을 보고도 안식일이므로 잘라먹지 못하면 하나님이 불쌍하게 보신다는 뜻이다. 그런 때는 안식일이라도 밀을 잘라서 먹고 고통이 없는 것을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안식일에 사람이 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사람의 마음에 진정한 안식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 문제라고 말씀하신 거란다.”
그후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셔서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려고 하시자 또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님은 그러시면서 손 마른 사람의 손을 고쳐주셨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나가서 어떻게 예수를 죽일까 의논했다.
“선생님, 너무 어려워서 잘 모르겠어요.”
영훈이가 말했다.
“응, 사실 어려울거야.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외형적으로 일을 하지 않고 쉬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이 평안하고 기쁜 상태로 자기의 수고를 그친다는 의미이다.
38년 된 병자는 38년 간 안식일마다 일은 아니했으나 한번도 평안히 쉬지 못했다. 오랜 병고에 시달려 마음이 고통스러웠는데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셨기 때문에 참 된 평안을 누릴 수 있었지. 자리를 들고 가는 일을 했지만 마음에는 고통이 없고 기뻐서 춤을 추었던 것이다. 그 날이 그 병자에게는 참 안식을 하는 날이었단다."
"정말 그렇겠는데요."
【익힘문제】
1. 38년 된 병자는 어떻게 해서 병이 낫게 되었을까요?
2. 구약 시대에는 안식을 범하면 어떤 벌을 받았을까요?
다음 성경 구절을 읽고 연구해보자. (출애굽기 31:14, 에스겔 20:13)
3. 예수님은 안식일의 참된 주인이셨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참 안식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4.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기도를 기뻐하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