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과] 예수님이 보시는 부자와 거지

영생을 얻으려는 부자 청년


“이 세상 사람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행복한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공산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2,000년 전에 가난한 자의 편에 서서 공산주의를 부르짖었습니다.”

한 무리의 청년들이 길가에 트럭을 세워놓고 외치고 있었다. 창수 아버지도 구경꾼들의 틈에 끼어 그 소리를 듣 고 있었다.

“난 이번에 일본에 출장을 갔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창수 아버지가 일본에서 돌아오시던 날 저녁 식사 때에 하신 말이었다.

“동경에는 한국과 달라서 공산당이 간판을 걸어놓고 정당 활동을 하고 길에서 트럭 위에 올라타고 선전하는데 예수도 가난한 자의 편이고 공산주의라고 하더구나.”

“아버지, 그건 거짓말이에요. 공산주의는 무신론을 주장한다고 하던데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무신론자이시겠어요?”

창수가 말했다.

“참, 그렇구나. 우리 창수가 나보다 나은 걸. 그런데 분명히 성경에는 예수님이 가난한 자 편에 섰다고 기록해 놓았다는구나.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언제 한번 주일학교 선생님께 여쭤볼게요.”

“공산주의를 이어 온 소련은 이제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해체되었다. 경제적으로 생활 필수품이나 식량이 없어서 어려운 형편이라고 벌써부터 소식이 전해지더니 드디어 견디지 못한 한계에서 그렇게 된 것 같다. 공산주의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줄 줄 알았지만 이론처럼 되지 않은 것이 입증된 셈이지.”

“아버지, 그럼 머지않아 북한에도 어떤 변화가 있겠네요?”

“역시 공산주의가 다 똑같이 잘 살려고 했다가 다 똑같이 못 사는 세상이 되고 말았군요.”

창수 어머니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럼요. 엄마,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상이 잘 될 수 있겠어요?”    

“그래도 이 자본주의 세계는 빈부의 차이가 너무 심하다. 잘 사는 사람은 몇 천억 재산을 가지고 집도 마치 대궐 같아 테니스장도 있고 엘리베이터도있고 없는 것이 없다는데 달동네 사람들은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야하니 차이가 너무 심한 것 같아.”

다음주 주일학교에서 창수는 일주일 동안 궁금해했던 문제를 물었다.

“선생님, 제 아버지께서 일본 동경에서 보셨다는 일인데요. 공산당이 길거리에 트럭을 세워놓고 선전을 하는데 공산주의는 골고루 잘 산다고 하면서 예수도 가난한 자 편인 공산주의자라고 말하더래요. 성경에 진짜로 그런 구절이 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그러면 예수님과 가난한 사람, 부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물었다. .

“저는 지위도 높은 관리이고 재산도 상당히 가치고 있습니다. 또 율법을 지키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디다. 현재 저는 부족한 것이 없으나 어떻게 영생을 얻어야 할지 그것이 큰 문제입니다. 선생님이여,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태복음 19:17-22)

청년은 자기는 계명을 다 지키고 있으니 영생 얻는 것은 문제 없겠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 청년은 그만 실망하여 근심하여 갔다. 그 말씀은 ‘ 네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공산주의자라고 할 수 있네요?”

나경이가 물었다.

나경은 평소에 ‘나는 왜 부모도 없이 이렇게 어렵게 살아야 되는가’를 생각하고 부잣집 아이들이 돈 잘 쓰고 옷도 잘 입고 좋은 학용품을 사는 것을 보면 부럽게 생각해왔다.

“겉으로 보면 그런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공산 주의는 강제로 부자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자와 평등하게 하자는 것이다. 거기에는 사랑이 없다. 예수님의 말씀은 강제로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계명을 완전히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몇 주 전에 계명의 두번째 의미를 배웠는데, 기억하는 사람?”

“예.” 하고 장은덕이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맞았어. 은덕이는 성경 공부할 때에 참 잘 알아들었구나. 계명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예수 님의 교훈은 인위적으로 공산주의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자 돈을 벌어서 가져도 상관 없지만 있는 자들이 참으로 이웃을 자기처럼 사랑해서 서로 돕고 같이 살아야 한다 는 것이니 공산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단다. 

그 부자 청년은 계명은 잘 지켰지만 자기의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없었다. 그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몹시 실망하여 돌아갔던 것이란다.”

“선생님, 그러면 현재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자기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있습니까?”

서동준이 물었다.

“별로 없을거야. 예수님이 그 청년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래야 영생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은 그렇게 온전하게 선을 행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단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 이니라” (로마서 3:20)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 율법의 역할이 있어야만 영생을 얻는 길이 발견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셨단다. 부자는 부족한 것이 없고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으므로 하나님을 찾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태복음 19:23—26)


“예수님의 말을 들은 제자들은 깜짝 놀라며 그렇다면 ‘천국에 갈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고 수근거렸지.”

“선생남,  그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만 천국에 가겠군요.”

“꼭 그렇다는 말이 아니야. 예수님도 그 문제에 대해 사람은 못하지만 하나님은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



부자와 나사로


어느 곳에 굉장한 부자가 있었다. 그는 대궐 같은 집에서 자색 옷과 고운 비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먹고 마시며 살았다. 그 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는 한 거지가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얻어 먹으려고 누워 있었다.

나사로는 문둥병은 아니었지만 어떤 피부병이 생겨서 온몸이 가려워 긁으면서 지냈는데 동네 개들도 친해져서 친구가 되었고 어떤 때는 개들이 그의 가려운 데를 핥아주기도 했다. 나사로와 개들은 부자가 먹다 남기고 버린 것을 얻어 먹고 사는 처지였다.

그러나 이 거지에게 한 가지 부자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부자가 가진 전재산보다 더 큰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나사로는 늘 행복했다.


“선생님, 그것이 무엇인데요?”

“무엇이었을까?”

선생님이 되물으셨다.

“그 사람 안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진리가 있었다. 나사로는 병자이고 거지였지만 마음은 항상 기쁘고 즐거웠다. ‘이솝 이야기’에 나오는 마치 큰 부잣집 대문간에 있는 구두 수선공 노인과도 같았지.”


그러던 어느날 거지 나사로가 죽었다. 슬퍼하는 사람도 없고 묻어줄 사람도 없어 그 부잣집 일꾼들이 헌 담요에 싸서 아무렇게나 묻어주었다. 그런데 얼마 후 부자도 죽었다.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졌다. 많은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장례 행렬을 따랐고 묘지도 근사하게 꾸며졌다. 나사로와 부자의 영혼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 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 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 라” (누가복음 16 : 22 — 31)



나사로는 육신은 거지였지만 그 영혼에 진리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데리고 갔다. 그것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이 세상의 부와 행복은 겨우 8,90년 간 지속되는 것이지만 영혼이 가진 진리는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사로는 죽은 후에 낙원에 갔고 부자는 음부에 갔던 것이다.

음부와 낙원은 건너다 보이나 서로 건너갈 수 없다. 음부는 불이 타는 곳이고 낙원은 평안하고 행복한 곳이다. 음부에 간 부자의 영혼이 낙원 쪽을 보니 나사로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의 품에 편안히 있는데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부자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울면서 호소했다.

“아이고, 아브라함이여! 나는 혓바닥이 바싹 마르고 이 불꽃 속에서 너무 괴로워 견딜 수 없습니다. 나사로를 보내서 이 혀 끝에 물 한 방울이라도 좋으니 떨어뜨려서 제 혀를 좀 서늘하게 해주세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거기로, 거기서 이리로 오고 가고 할 수 없다. 너는 세상에서 평안히 지냈고 이 나사로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었으나 고생했으니 이렇게 평안한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가난하든지 부자든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느냐 못 살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란다. 부자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재물을 쌓아둔 사람이 고, 가난한 자는 예수님의 계명대로 이웃을 위해 자기 것을 다 팔아 나누어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겠니?”



부자와 과부의 헌금


어느날 예수님이 유대인의 회당에 갔더니 사람들이 연보궤 안에 돈을 넣고 있었다.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넣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모두들 눈이 둥그래졌다. “도대체 얼마나 넣었길래 저렇게 말씀하실까?” 서로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누가복음 21:4 —5)

“부자는 자기 쓰고 남는 것을 넣었지만 과부는 자기가 쓸 것을 전부 드렸다. 그러니 각자의 마음과 형편에서는 이 과부가 제일 많이 드린 셈이지. 그러니까 예수님은 부자와 가난한 자가 다 똑같이 살아야 된다고 하는 공산주의가 아니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익힘문제】

  1. 공산주의와 예수님의 가르침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2. 부자 청년의 실망은 무엇 때문인가요?

  3. 부자와 과부 중에 누가 더 많이 드렸을까요?

  4. 진정으로 선한 분은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