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구원받은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답변
저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많이 읽었던 내용인데도 또 새롭게 보이는구나. 성경을 알려면 아직 멀었구나. 이 성경 속에 하나님의 비밀이 이렇게 많은데 나는 세상일에 바빠 성경 알기를 뒤로 미룰 때가 많았구나. 성경을 많이도 보았는데,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생각이 세상을 향하는 만큼 눈이 가리워져 성경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읽기는 읽어도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만일 오늘 갑자기 내 영혼이 떠나서 하나님 앞에 섰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때 중요한 문제는 첫째, 내 가 이 모든 저주와 심판에서 벗어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내가 살아온 흔적 뒤에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변했느냐 하는 책임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첫 번째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주어지는 문제입니다.
복음을 확실히 깨달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책임이 하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율법을 가까이하고 율법을 자랑하고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려고 노력하듯이, 성경에는 복음을 확실히 깨달은 사람들에게 부탁한 말씀이 있습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에베소서 3:18]
우리는 복음을 안 이후에 혼자서만 성경을 알고 싶어 하는 욕심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는 “모든 성도와 함께"라고 되어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입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교제가 어디 있습니까? 이 말씀 속에는 예수께서 원하셨던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는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입니다.
어느 밀밭에 씨앗을 심어 놓았는데 나중에 주인이 와 보니,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아 들쑥날쑥하면 어떻겠습니까? 공기 좋은 들에서 비를 맞으며 정상적으로 자란 코스모스들은 그 키가 서로 비슷합니다. 그러나 고속도로 주변에서 자라는 코스모스들을 보면 키가 나지막하고 제대로 꽃을 피우지도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 성도들의 움직임이 이와 같아서는 안 됩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라고 했습니다. 혼자서가 아닙니다. 개개인도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알면서도 복음을 아는 이들과 가까이하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미움을 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가까워진 사람들이라면 서로 일가친척이 아닐지라도, 육신적으로는 형제가 아닐지라도 함께 교제를 가지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영혼에 대한 간절한 기대도 없고 희생도 하지 않습니다. 자기만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것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원입니다.
복음을 모르는 내 주변 사람들이 훗날 당할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무관심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개개인의 욕심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비밀로 하며 은밀히 하는 것들, 말하기도 부끄러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질문
구원받은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답변
저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많이 읽었던 내용인데도 또 새롭게 보이는구나. 성경을 알려면 아직 멀었구나. 이 성경 속에 하나님의 비밀이 이렇게 많은데 나는 세상일에 바빠 성경 알기를 뒤로 미룰 때가 많았구나. 성경을 많이도 보았는데,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생각이 세상을 향하는 만큼 눈이 가리워져 성경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읽기는 읽어도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만일 오늘 갑자기 내 영혼이 떠나서 하나님 앞에 섰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때 중요한 문제는 첫째, 내 가 이 모든 저주와 심판에서 벗어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내가 살아온 흔적 뒤에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변했느냐 하는 책임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첫 번째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주어지는 문제입니다.
복음을 확실히 깨달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책임이 하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율법을 가까이하고 율법을 자랑하고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려고 노력하듯이, 성경에는 복음을 확실히 깨달은 사람들에게 부탁한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안 이후에 혼자서만 성경을 알고 싶어 하는 욕심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는 “모든 성도와 함께"라고 되어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입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교제가 어디 있습니까? 이 말씀 속에는 예수께서 원하셨던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는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입니다.
어느 밀밭에 씨앗을 심어 놓았는데 나중에 주인이 와 보니,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아 들쑥날쑥하면 어떻겠습니까? 공기 좋은 들에서 비를 맞으며 정상적으로 자란 코스모스들은 그 키가 서로 비슷합니다. 그러나 고속도로 주변에서 자라는 코스모스들을 보면 키가 나지막하고 제대로 꽃을 피우지도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 성도들의 움직임이 이와 같아서는 안 됩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라고 했습니다. 혼자서가 아닙니다. 개개인도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알면서도 복음을 아는 이들과 가까이하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미움을 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가까워진 사람들이라면 서로 일가친척이 아닐지라도, 육신적으로는 형제가 아닐지라도 함께 교제를 가지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영혼에 대한 간절한 기대도 없고 희생도 하지 않습니다. 자기만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것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원입니다.
복음을 모르는 내 주변 사람들이 훗날 당할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무관심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개개인의 욕심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비밀로 하며 은밀히 하는 것들, 말하기도 부끄러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