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교란 무엇인가?


오늘날 비기독교인은 물론이지만 많은 기독교인들까지도 '종교' 와 '복음' 을 구별하지 못하고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안에는 종교와 복음이 구별되어 있습니다. 서로 반대가 되면서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많은 신자들은 기독교를 종교의 일종으로 생각하며, 심지어 많은 신학자들까지도 기독교를 높이 평가한다고 하면서 "기독교야말로 참된 종교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오해입니다. 이 오해로 인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며 참 생명에서 떠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과 종교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구별하는 것은 천국과 지옥을 구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사람을 구별하는 것과도 동일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종교는 인간에게 속한 것이며 복음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를 부르셨습니까? 

이 말씀은 단순히 죄인이나 마음에 근심이 있는 자에게만 해당한다고 생각해 버리는 경향이 많으나, 이 말씀을 하신 시대적 배경을 살펴볼 때, 죄인이나 근심있는 자들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종교에 시달림을 받는 자들을 부르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종교란 무엇인가' 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종교는 라틴어로 '릴리지오' (religio) 라고 하는데, '구속(拘束)한다' , '속박한다' 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종교는 사람을 얽어매는 것입니다. 속박하는 것입니다. 왜 종교가 인간을 얽어매고 속박합니까? 

우리는 인간 자체부터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인간은 본래 나면서부터 죄인이며, 선에 대하여는 무력할 뿐 아니라 무능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은 본래 선하며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 기준에서 본 것이고.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잠언 16 :2)


사람들 보기에 또는 자기 자신이 볼 때에는 자신의 모든 행위가 깨끗한 것 같고, 정직하고 의로운 것 같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 기준의 높은 선도 하나님의 선 앞에 갖다 놓으면 더럽고 악한 것뿐입니다. 이 사실을 안 선지자 이사야는,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이사야 64:6)


라고 말했습니다. 인간들 편에서 볼 때 제 아무리 고상한 선도 더러운 옷 같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의와 선에 인간들은 자기의 의와 선을 견주려 하나 그것은 절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왜 인간들은 이렇게 선할 수 없으며 선에 대하여 무력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인간은 날 때부터 죄악 중에 출생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며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편 51:5)


사과나무에는 사과, 수박 넝쿨에는 수박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기보다는 절대적입니다. 인간의 시조 아담이 범죄해서 죄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 죄인의 혈통에서는 죄인밖에 출생될 수 없습니다. 죄인에게서 의인이 출생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서를 통하여,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2)


고 말했습니다. 인간들의 조상이 죄인이었기에 거기에서 열리는 열매는 죄뿐인 것입니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선에 대하여 무력하고 무능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죽은 자와 같은데, 어떻게 하나님처럼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까? 

그러나 종교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자면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는 등, 완전한 의인의 의무를 가르쳐서 행하도록 명령을 하니, 이것은 심히 무거운 짐이며, 멍에이며, 속박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인간의 양심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며 명령으로서, "인간들아, 하나님처럼 되어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받은 의무의 기준은 하나님입니다 종교가 요구하는 인간의 표준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 없이 거룩한 자로 설 수 있는 인간을 말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자신있게 서야 합니다. 완전한 선으로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즉 호리만한 죄라도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는 하나님의 완전한 선만이 설 수 있는 것이지 인간들의 선행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강요합니다. 나면서부터 죄인으로 선을 행할 수 없는 병든 약자들에게 하나님 기준의 선을 행하도록 무거운 짐을 지워놓고 걸어가라고 하니, 이것은 너무도 큰 고통이며 속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굴에는 핏기가 없고, 몸은 여위어 뼈만 앙상하게 남고, 어깨는 늘어지고, 허리는 구부러지고, 다리는 절고 있는 노예 앞에 무거운 바위덩이를 놓고 짊어지고 가라는 폭군이 있다면, 그것도 그 폭군의 손에 채찍이 들려 있고 눈을 부릅뜨고 무서운 호령을 하고 있다면, 그 폭군 앞에 있는 이 노예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아마 그는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원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의 멍에인 것입니다

 '종교 (宗敎)' 라는 한자의 뜻은 무엇일까요? 일정한 기본적 의식에 의하여 제물을 바치며 비는 행위를 가르치는 것이며, 이상적 인간의 자세를 가르쳐서 거기에 부합된 행동을 하도록 교훈하는 것이니 마찬가지로 구속이며 속박입니다 라틴어에서의 종교의 뜻이나 한문에서의 종교의 뜻은 비슷합니다. 종교란 그 의의가 밝혀주는 것과 같이 구속이며 속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종교는 인간에게 있는 본능 중에 가장 적극적이며 강한 요소에서 출발합니다. 

인간에게는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보이는 육(肉)을 통하여 나타나는 본능은 식욕, 성욕, 명예욕 등이며, 영 (靈) 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니 곧 종교적인 것입니다. 육이나 영은 그 근본을 찾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은 시장하거나 병들면 흙에서 나는 식물로 음식을 지어 먹기도 하며 흙에서 나는 약초로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은 창세기에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창세기 1:27)


라 하셨으니,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또한 다른 말씀에, 하나님은 영이시니(요한복음 4:24)라고 하신 것은,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 자체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 영의 근본이란 뜻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근본으로 하는 영을 가진 존재이므로 만물 중에 으뜸이며, 만물의 영장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시조 아담의 범죄로 그 영이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생은 나면서부터 영이 죽었습니다. 

여기서 영이 죽었다는 것은 근본되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에베소서 2:1) 라고 하셨습니다. 영이 죽었다고 하는 것은, 속에 있는 영이 없어졌다는 것이 아니고. 근본되신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살아 있어야지 죽어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인간은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죽은 자는 산 자 앞에 동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하시고, 의로우시며, 거룩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인간은 산 동작, 곧 선이나 의로움이나 거룩한 행위로써 그를 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산 자는 죽은 자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으나, 죽은 자는 산 자를 향하여 아무런 동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전도서 9:5)

'김' 이라는 사람과 '이' 라는 두 친구가 있다고 합시다. 어느날 '김' 이라는 친구가 '이' 앞에서 죽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교제는 죽음으로 끊어졌습니다. '이' 는 울면서 친구 이름을 불러도 '김' 은 대답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이' 를 향하여 아무런 움직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죽었습니다 그러기에 선한 행위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만은 인간을 향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영은 하나님과는 관계가 끊어졌으나 없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근본을 찾는 활동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시장하면 먹을 것을 찾는 육의 본능과 같이 영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서 종교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에덴 낙원을 잃어버린 인생이 영의 근본이신 신을 찾아 헤매던 중, 눈에 보이는 것마다 혹 거기 신이 있는가 하여 섬기기 시작한 것이 종교의 기원입니다 별을 보면 '거기 신이 있을까' 하고 섬기니 별신이 만들어지고, 태양에서 태양신이, 나무에서 목신이, 물에서 물신이, 돌에서는 돌신이 만들어졌으니, 근본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린 가련한 인생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우리는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잃어진 인생에게는 당연한 일입니다. 

지성이 발달한 사람이 이론적으로 신의 존재를 설명했을 때 철학적 신관이 정립되고, 한편 어떤 신비적 요소와 도덕적 명령, 그리고 의식 (儀式)적 행동을 신의 명령이라 믿고 이를 준수함으로써 신에게 도달한다는 신앙 활동, 이것이 곧 종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입니다. 신을 찾고자 하는 영의 본능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이 만들어 낸 소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을 찾다가 찾다가 만날 길 없으니 신이 없다고도 하며 죽었다고도 하는 무신론이 제창되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없다고 해본 것뿐이지 없기 때문에 없다는 것을 증명할 만큼 가치가 있는 이론이 아니며, 캄캄한 어두움의 세계에서 혼자 지껄여 보는 어리석고 미련한 불평이며 '허탄한 군소리' 인 것입니다. 

당신은 어떠하십니까? 종교의 무거운 짐을 지고 양심의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속박을 당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무거운 멍에를 벗어 버리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