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장막의 내용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장막 성전을 짓도록 명하셨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여기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약 시대에 성전을 짓게 한 것은,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육체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는 예표이며, 신자들의 모임임을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인도하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계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것이, 오늘에는 분명히 중생한 자, 구원받은 자들 안에 주님께서 계셔서 주님의 일을 하실 것을 예표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그림자인 구약의 성막 내부의 뜻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출애굽기 25장 1-9절의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성전의 목적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거하실 장소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거하실 장소를 마련하시기 위해서 성전을 짓도록 명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실 참 것의 그림자인 것이 장막 성전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9절에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제 성막이 변천된 과정을 살펴보면, 성막에서 성전으로, 성전에서 예수님으로, 예수님에게서 신자로, 이렇게 이제는 구원받은, 곧 거듭난 신자 안에 성령이 계셔서 교회 (건물이 아닌), 곧 하나님의 집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충만하셨고, 현재는 신자 안에 충만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언제나 성전 안에 충만하셨습니다. 출애굽기 40장 34절에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라 하였고, 역대하 7장 1절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라고 한 바 이것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셨던 것을 말함이며, 또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셨는데, 이것은 곧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을 말함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성막과 성전에 계셔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나타나셨고, 신약에서는 예수님과 신자 안에 계셔서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출애굽기 25장 2절 이하의 말씀은,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것을 성막 짓는데 사용하도록 하셨는데, 이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쳐 구원을 완성시키신 것을 말하며, 또한 오늘날 신자들도 자기의 의무나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아 성령이 자기 안에 계시면 모두 즐겁고 기쁘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봉사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성막의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성막은 겉으로 돌아가면서 세마포(細麻布)장으로 드리워 둘러 막은 마당이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의 (義)를 의미합니다. 세마포는 희고 깨끗하니, 곧 예수님의 깨끗하심과 의로우심을 말하며, 예수님은 의로써 드리워 있습니다. 

출애굽기 27장 9-10절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지니 남을 향하여 뜰 남편에 광이 백 규빗의 세마포장을 쳐서 그 한 편을 당하게 할지니 그 기둥이 스물이며"


또 누가복음 23장 4절에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준 원수 빌라도도 예수님에 대해서 죄 없다고 증거했으며, 47절에는 예수님을 못박은 군인의 책임자 백부장도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완전히 의로우시기 때문에 전혀 의가 없는 인간들과는 사이가 있었습니다. 

이 포장은 외부와의 간격입니다. 그 포장을 넘어갈 수도 없고, 문을 통하지 않으면 넘겨다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 포장 안에는 지성소라는 성막이 있었는데, 안쪽에는 정금으로 꾸몄고, 바깥쪽은 보기에 형편없는 해달의 가죽으로 덮었습니다. 그 높이는 마당을 경계로 하여 울타리 포장의 2배나 되어 외부에서도 잘 보이는 막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의는 세마포로 꾸민 것과 같이 깨끗하고 아름다왔습니다 성막 안의 지성소의 겉 모양은 보잘것없는 해달의 가죽으로 지었다는 것은 예수님 자체는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이사야 53:2)보기에 형편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싫어했고 그를 멸시했습니다. 세상 사람들 보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의를 가졌으나 탐날 것이 없어 그를 싫어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예수는 의롭고 좋기는 하지만 찾지 않으며, 기독교도 좋기는 하지만 매력은 없습니다. 이는 의로써 세상과 경계가 되어 있고 구별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과는 타협할 수 없는 의를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금으로 싸여 있는 그리스도의 내부를 볼 수 없습니다. 

장막은 정금으로 꾸몄는데, 이는 참으로 아름답고 영광스러움을 뜻하며, 예수님 안에는 지극히 영광스러운 신의 성품으로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이 사실을 세상은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기독교 종교가들도 그리스도의 의를 인정하여 선한 것을 믿으나, 그리스도의 내부의 신성에 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관념적으로 믿는 종교 생활을 하는 일이 너무도 많은 것입니다. 생명의 충실함은 없고 외관만 꾸미는 경향이 있음을 볼 때, 지극히 염려됩니다. 진정한 기독교는 외부보다는 내부의 생명에 충실하는 것이며, 이것은 맛본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참된 것은 아름답게 꾸민 외부의 형식이나 건물이 아니며, 내부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사람은 아무도 그리스도의 의(義)에 미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로 이렇게 말하게 하셨습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이사야 64:6)


인간은 누구나 외부는 아름답고 선한 것 같으나, 내부는 썩었고 누더기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 성막의 마당 안에, 곧 울타리 안에 있으면 세상과 구별되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 세마포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 안에 있음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의 안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2 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다시 로마서 8 장 1 절에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에는 장막의 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울타리가 높아서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에 장막 뜰에 들어 가려면 반드시 문을 통해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7장 16절 말씀에,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 이십 규빗의 장이 있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


라고 했는데, 이는 그 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사람도 하나님께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의롭지는 못합니다. 다만 이 문을 통해야만 되는데, 이 문 역시 예수님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에 분명히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문(問)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이 문에는 청색, 자색, 홍색실로 꼬아 짠 장(帳)이 드리워졌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의와 하늘로써 나심과 만왕의 왕되심을 의미합니다. 

어떤 한 사람이 그 장막 밖에서 울타리 안을 넘겨다 보니 심히 아름다와 들어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 들어갈 곳을 찾아 헤매다가 한 곳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실로 수 놓아 짠 장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발견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의를 찾는 자는 문을 발견합니다. 그리스도를 참으로 마음에서 발견할 때에 즉시 그 내용이 알아지며, 그것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장막 안에 있게 해 줍니다. 이 장막 안에 있게 된 날부터 

마음에 참 평안과 무한한 생명을 얻게 되고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보이는 조직된 교회 안에 있는 것 이 바로 이 장막 안에 있는 것같이 오해하고 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이 장막의 문인 예수님을 정확히 통하지 않고 보이는 교회의 조직에 들어온 것으로써 이 장막 안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그릇 판단하는 이가 많이 있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절 말씀을 보십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라 하셨고, 에베소서 2 장 8-9 절에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고 한 바와 같이 누구든지 자기의 행위로 들어가려는 자 는 절도며 강도입니다. 

의식의 행위로 들어가려는 자도 역시 절도며 강도입니다. 당신은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신자입니까?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 신자입니까? 기도를 했으니 신자가 되었습니까? 안식일을 잘 지켰으니 구원받은 줄로 아십니까? 교회에 다니고 있으니 구원받았다고 믿고 계십니까? 만일 그러한 것뿐이라면 절도며 강도인 것입니다. 

절도며 강도란,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인간이 세운 의식 이나 단체의 조직, 인간의 힘 등 이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나지 않았으면 절도며 강도인 사탄에게 속아서 잡혀 있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를 통해서" 라는 말에 의해서 믿었다 하더라도 실지로그리스도와 접한 사실이 없으면 그리스도를 통한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