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지성소

이제 마지막으로 종교적 성전인 구약의 장막에 있어서 지성소는 어떤 곳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지성소는 성소와 구별되어 그 사이에 휘장이 있습니다. 이 휘장 역시 예수님의 육신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10장 19-20 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예수님의 육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에 그 정전 안에 있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누구든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생겼습니다. 이 역시 예수님의 육체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에 막혔던 죄의 담이 헐어지고, 하나님과 화목하게된 것 입니다. 이제 믿는 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직접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전 내용은, 신약의 복음적 성전의 그림자이며, 참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 휘장을 열고 한발자국 들여놓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성소는 등불로 밝혀져 있으나, 지성소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지성소는 예수님 안에 계신 하나님의 처소와 천국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천국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요한계시록 21:23)


지성소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곳을 또한 성전이라 하는 것입니다. 신약의 복음적 성전은 건물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라는 육체 안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지성소에는 두 번째 만들어진 율법, 곧 십계명이 들어있는 궤가 있었습니다. 그 궤는 순금으로 만들어졌고 궤 위에는 속죄소가 있고, 속죄소 위에는 그룹이 속죄소를 내려다보며 날개를 펼치고 있습니다. 만일 속죄소가 없다면 그룹은 깨어지는 율법을 내려다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오늘날 주님의 속죄가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범법함만을 보실 수밖에 없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한 사실은, 인생들의 범죄가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보이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속죄 없이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내려다 보신다면 거기에는 인생들의 죄로 인하여 깨어지는 율법의 돌판이 있을 뿐이며, 인생들은 범법자로 나타나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일년 일차씩 제단에서 잡은 양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며, 또한 성소에 있는 향로를 취하여 향을 채워가지고 지성소와 성소 사이 의 휘장을 열면, 즉시 지성소 안에는 향으로 가득하여 버립니다. 레위기 16장 11-15 절의 말씀에는 지성소 안에서의 제사장이 하는 일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소에서 취한 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심판은 지나가 버리고, 하나님은 중간에 있는 속죄소로 말미암아 우리 죄를 보시지 않으십니다. 또한 제사장은 제단에서 취한 양의 피를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 위와 앞과 주위에 뿌립니다. 

이로써 그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심이 되고 율법을 범한 인간의 죄는 용서가 됩니다. 아무 값없이 완전히 죄의 삯이 지불되고, 그 피로 말미암아 제사를 드린 자는 평안을 얻게 되며, 하나님은 속죄소 위의 피를 보심으로 만족하십니다. 

그런데, 지성소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곳으로 만일 제사장이 피 없이 그 곳에 들어가면 즉시 죽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 입는 옷 가장자리에는 금방울이 달려 있어서 피를 뿌릴 때에는 그 금방울 소리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성소 밖에서 제사의 결과를 기다리는 백성들은 그 금방울 소리를 듣고 자신들의 죄 가피뿌림 으로 용서됨을 알고, 또한 제사장도 죽지 않고 살아서 속죄하고 계심을 알게 되어 기뻐하며 마음의 평안을 가집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 피로써 지성소에 들어가신 예수님의 속죄 제사의 금방울 소리인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종교적 성전에서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속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심령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금방울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섬기고 있는 성전은 어디입니까? 여러분이 다니고 있는 건물 예배당입니까? 아니면 제단이라고 말하는 그 장소입니까? 언필칭 '3 만 제단' 이라고 하는 말을 듣거니와, 아직도 건물이 제단이며 하나님이 계신 곳이 인간들의 집단이나 화려하게 꾸민 건물이라 한다면 이는 참으로 비참한 것이며, 건물 안에서 떠나버린 하나님의 영광을 어디 가서 찾을 것입니까? 성전은 완전히 부서졌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지 벌써 1,900 여년이 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헐어버린 성전을 인간들이 다시 짓겠습니까? 그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건물 안에서 인간들에게 나타나십니까? 결코 아닙니다. 마태복음 1장 21-23 절을 읽어 보십시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임마누엘 하나님, 곧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실을 아실것입니다. 당신은 임마누엘 주님을 심령 안에 모셨습니까? 만일 당신이 참으로 주님을 심령에 모셨다면 당신 자신이 곧 성전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6:19)


성령은 임마누엘 주님의 영이시며,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주님을 심령에 모신 자는 거듭난 자이며, 그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어디서나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 주님을 심령에 모시지 못했으면 그는 평생 동안 예배당 안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입니다. 그것은 곧 종교입니다. 종교는 주님과 상관 없고 다만 복음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거듭되는 종교의 생활 속에서 천국에 가는 줄로 속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내부에 생명이 없으니 외부적으로 꾸미는 종교 생활이라도 하면 천국에 이를 줄로 아나 이는다 헛수고입니다. 

건물을 웅장하게 꾸미고, 예배의 순서를 거창하게 작성하고, 교파를 확장하는 것도 전부가 종교의 행사입니다. 내부에 생명을 갖지 못하였거나, 받은 생명을 잃은 것이 아니면, 내부의 불확실, 불분명, 불충실 또는 내부의 영광이 없는 데서 오는 위선인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복음의 그림자인 종교로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종교적인 본능에 호소해서 죄를 깨닫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모든 인간을 죄 아래 가두어 복음으로 이끄시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 종교적인 요소를 그대로 붙들고 종교 행사를 하고 있으며, 그 밖의 모든 지상의 종교는 인간의 종교적 본능에서 발생한 무화과잎의 치마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이라고 자칭하는 이들 가운데서도 기독교란 간판 밑에 여러가지 모양의 형식은 갖추었으나 내부의 생명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이들이 종교의 생활 속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허다함을 볼 때, 이는 참으로 슬픈 사실이며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사탄의 움직임에 따라 쉽게 넘어간다는 것은 역사에 거듭된 사실입니다. 사탄은 에덴의 아담을 꾀었고, 예수님을 시험하여 꾀려던 자입니다. 복음이 땅 위에 전파된 다음에도 초대 교회의 복음의 역사가 쉽사리 종교적 교회로 둔갑하여 우상의 교회로 전락했는가 하면, 하나님 없는 교회로 변해 버렸으며, 그 종교적 형식의 교회에서 개혁된 프로테스탄트 역시 새로운 형식의 종교적 교회로 변하여 우상을 숭배함이나 다름없게 되어 버려 형식은 다르다 할지라도 또 하나의 카톨릭이 되게 한 것은 이 역시 사탄의 상투 수단이며 속임수입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요즈음 제법 복음적이라고 자칭하는 단체마저 쉽사리 사탄의 꾀임에 빠져 사이비 복음 운동의 단체로 변모되어 가고 있는데, 이것은 역사나 현실이 분명히 입증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중생의 체험없이 되어지는 모든 신앙 행사와 운동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종교 활동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지금 종교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복음 안에서 심령의 평안을 누리십니까? 종교의 무거운 멍에 아래 얽매여 있지나 않으신지요? 

예수께서 그 속박의 쇠사슬에서 풀어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의 말씀을 한번 읽어 보십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보십시오! 당신은 이제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에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 :30) 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해야 할 종교적인 모든 의무는 주님께서 이미 다 하셨습니다. 당신은 그 분이 다 해 주신 것을 믿고 감사하면 됩니다. 그분이 다 이루신 것을 찬송하면 됩니다. 그 분 예수님 안에서만 당신은 편히 쉴 수 있습니다. 당신이 편히 쉬면 쉴수록 성령님은 당신의 심령 안에서 일을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