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종교적 성전과 복음적 성전

이제까지 살펴 본 대로 예배란 하나님께 대한 관념으로 자신이 꾸며서 외부의 형식을 갖추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거듭나서 예수님의 영을 모셨기 때문에 그 성령과 아버지와 아들의 삼위의 교제임을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은 날이 있어 감사해서 그 날을 기념하는 것이 예배라고 말했습니다. 옳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면 거듭난 사실이 없으며, 거듭난 경험이 사실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예배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종교적 성전과 복음적 성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예배당은 성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건물이 성전이라면 온 세상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조그만 집에만 갇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의 건물 성전은 참된 의미에서 성전이 아니라 성전의 예표이었던 것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7-22 절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들어 봅시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이 일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사고 팔고 하는 사람들을 꾸짖으시고, 장사꾼들의 상을 둘러 엎으시고, 내어 쫓으신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믿고 있었으며,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성전을 더럽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부패한 마음 상태를 꾸짖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장차 참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이 받을 징계를 예표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때 유대인들이 이런 일을 행하는 표적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헐라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셨는데 이것은 당신의 육체의 죽음, 곧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후에 부활하실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을 더럽힌 것은 참 성전된 예수의 육체를 더럽힌 것이며, 또 믿지도 않을 것이고, 장차 성전이신 예수님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파괴하고 헐어버릴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불신앙의 인간들은 헐어버릴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은 다시 그 성전을 일으켜 세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의 육체가 성전이 될 수 있습니까? 예수라는 육체는 사람의 형체이나 그 안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나타나실 수 있는 길, 오시는 길은 사람의 형체를 이룬 몸 안에 하나님이 계셔서 나타나실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전이라고 생각하는 건물 성전에 대해서 그 뜻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명령해서 짓도록 하신 구약 시대의 성전은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와서는 그 건물 성전은 완전히 없어졌고, 그 건물을 성전시하는 것은 우상이며, 종교적 성전은 될지언정 참 성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성전은 분명히 하나님이 명령해서 된 것인데, 어떻게 그것이 무효가 되며 성전으로서의 뜻이 없어 질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지시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고 했으며, 히브리서 9장 8-9절에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분명한 것은 곧 구약 시대의 성전은 신약 시대의 성전의 비유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첫 장막, 즉 비유의 성전 내부를 검토해 보기로 합시다. 

그 성전은 출애굽기 25장부터 시작해서 나타나는데, 그 뜻은 참으로 깊고 오묘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이 성전이 명령되었으며 허락된 것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주소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에게는 이 성전이 명령되지 않았고, 허락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아직 노예에서 해방되지 않았고 멍에 아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소를 그들 가운데 두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노예에서 해방된 자들, 다시 말하면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백성 가운데만 계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9장 45-46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여기 분명히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라고 하셨고,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고 말했습니다. 애굽 땅에 그대로 있어서는 그들 중에 거하실 수 없기 때문에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 중에 계시려는 뜻입니다. 그들 중에 계시는 장소가 곧 장막 성전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어떻게 계십니까? 그것은 애굽에서 해방된 백성, 곧 죄의 노예에서 구원받은 사람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확실히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면 일생 동안 예배당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구원받은 신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성전에 사는 사람은 성전의 예표요, 그림자인 건물을 웅장하게 하고 그 안에 있으면 바로 하나님 안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이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는 것인 줄로 알기 때문에, 점점 건물을 웅장하게, 아름답게 꾸미는 데 정성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성전을 발견한 사람들은 자신 안에 하나님을 모셨기 때문에 건물인 장소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고정되어 있는 장소인 건물에서 해방되어 완전히 자유롭게 온 천하에 다니면서 어디서나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마음이 어떤 건물에 구속되고 고착되어 건물인 성전 안에 있어야겠다는 미신에서 해방되어 참 평안 속에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성도가 부른 찬송에서도 그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애굽에서 해방 받아 주님을 심령에 모시고 성전 안에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성전이라고 하는 건물에 내왕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님 섬기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지나 않으시는지요?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