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교회에게 주신 은사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도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고린도전서 13:1-2)


고린도전서 12장 4절부터 읽겠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 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 라" (고린도전서 12:4-11)


오늘은 이 성경 말씀을 근거로 해서, 은사에 대해서 공부를 할까 생각합니다. 이 성경 말씀 안에는 상당히 신비스러운 세계가 있고 우리가 잘 이해할 수가 없는 그러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즘 교회를 보면 가령 하나님의 성회나 오순절 교회 계통에서는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듯이 방언을 말하고 또 여러가지 신성한 은사, 병 고치는 은사를 강조하는데 또 한편으로는 그런 것을 강조하지 않는 조용한 교회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 여러분도 궁금히 여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옳은지 저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신비로운 사실이 있고 방언을 한다든지 병을 고친다든지 그런 것이 기록되어 있는데 또 한편에서는 그런 것이 잘못된 것이다라고 기록되었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성경적으로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은사는 무엇인가?

7절부터 보면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대강 아홉 가지의 이러한 은사가 성경에는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 왜 그런 것을 잘못됐다고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성경을 기초로 해서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 우리도 잘못 빠져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경에 방언, 병고침 등 여러 가지 은사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요즈음 일반 교회의 움직임에 휩쓸려서는 안됩니다. 요즈음 부흥 집회에서 신비주의적인 부흥사들이 방언을 강조하고 안수해서 병고치는 것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고 그리로 몰려다니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데 이런 문제를 우리가 잘 정리를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을 12절을 찾아보세요.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고린도전서 14:12-15)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자들을 위함이니" (고린도전서 14:20-22)


18절에 보면 사도 바울도 방언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본인 스스로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병을 고치는 일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이 문제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겠습니까? 

22절에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문제를 놓고 정확하게 성경대로 바로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방언이 진짜 방언이냐, 거짓 방언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진짜 방언은 어떤 것이고 거짓된 방언은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또 병고치는 역사도 있는데 병고치는 역사가 정말 성령으로 고친 것인가 아니면 최면술이라든지 정신통일을 하는 방법으로 병을 고친 것인가 하는 문제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분명히 성경 속에 방언이라는 것이 있고 또 병고치는 역사도 있고 신령한 은사라는 것이 있는데 오늘날 왜 그 문제를 가지고 옳다, 그르다 하고 문제삼는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성경 말씀을 알려면 조금 전에 14장에 있는 말씀대로 방언이라는 것이 왜 일어나느냐, 무엇 때문에 방언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두 가지 역사

사도행전 19장 1절을 읽겠습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사도행전 19:1-7)


여기 이 말씀은 에베소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의 이야기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가를 이 말씀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에베소에 왔습니다. 에베소에는 그때 아직 교회가 없었습니다. 바울이 가자 그때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주로 세례 요한의 침례만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침례를 받았다고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침례는 무슨 침례입니까? 세례 요한의 침례는 회개했다는 것을 표시하는 침례입니다. 세례 요한의 침례를 가지고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고, 세례 요한의 침례를 받은 다음에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와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모셔들이기 위한 준비를 시켰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잡이가 되어서 길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서 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가려고 하면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그런 마음의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의 침례를 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의 전도를 듣고 침례를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실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에베소에 갔을 때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열 두 사람쯤 모였다고 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라고 물으니까 모인 사람들이 우리는 성령이라는 것을 들어보지도 못했고 성령이 있다는 것도 모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성령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바울은 무슨 침례를 받았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의 침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에베소라고 하면 터키 서쪽 바다 에게해를 접해 있는 도시입니다. 지금 이름으로는 셀죽이라는 곳인데 저는 그곳에 두 번 정도 가봤어요. 거기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세례 요한의 침례를 받았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만, 유대인의 유월절이라든가 오순절이라든가 하는 명절 때에 온 세계에 흩어져 있던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래서 그때 세례 요한의 전도를 듣고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침례를 줄 때에 침례를 받고 간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예수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또 성령을 받는다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냥 흩어져 갔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열 두 사람을 모아놓고 전도를 했습니다. 4절에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렇게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아마 바울이 그 열두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 이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 5절에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라고 되어 있는데 세례 요한의 침례 받은 사람들이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다시 받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았으니 그것이 구원을 받은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6절을 보세요.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에베소 교회가 시작이 되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시작이 되려고 하면 제일 첫째 조건은 구원받은 사람이 모여야 됩니다. 이 에베소 교회는 처음에 열두 사람이 구원을 받아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일하시는 성령

그런데 구원받는다 하는 문제와 또 성령을 받는다는 문제는 다릅니다. 여러분들은 말씀을 깨닫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분명히 성령이 임했어요. 요한복음 6장 63절에 보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다. 여러분들이 구원받을 때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분명히 성령이 임했어요. 그런데 여기 에베소 교회 신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는데 바울이 안수하니까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그 성령은 뭡니까?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들은 이 문제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구원의 역사이고, 또 구원의 역사 이외에 방언을 한다든지 병을 고친다든지 하는 은사의 성령이 또 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구원받을 때, 말씀을 깨닫고 죄 문제가 풀리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생명의 성령 즉, 여러분을 거듭나게 만드는 성령이 역사하셨습니다. 거듭나게 하는 그 성령은 곧 생명입니다. 말씀이 성령으로 깨달아진 것입니다. 말씀이 성령으로 깨달아졌다는 말은 지금까지 모르던 말씀 혹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면서 소경이 그냥 이렇게 살아가면 나중에 천당 가겠지 하고 살다가 아! 내 죄가 완전히 용서됐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때에 마음에 양심의 해방이 오고 자유가 오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듭나게 하는 성령 즉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는 그 성령입니다. 그 성령은 바로 말씀을 깨닫는 것입니다. 

말씀을 깨달았을 때에 즉, 그 성령이 올 때에는 내가 방언을 하는 것도 아니고 또 몸에 무슨 이상한 증상이 일어나는 그런 것이 아니고 단순히 그 말씀이 깨달아지면서 마음에 자유가 왔고 마음에 해방이 온 것입니다. 그게 생명의 성령인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내게 구원을 주신 그 성령을 말하는 거예요. 구원은 물론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피흘려 내 죄를 사해주셨다는 자체가 구원이지만 그 말씀의 깨달음은 바로 성령이 와서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과 14절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회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여기에서 성령은 진리의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진리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인데 아무리 그것이 진리라 하더라도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우리가 그 진리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어도 구원을 못받는 이유는 진리의 성령이 그 마음에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14절에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라고 한 대로 성령은 사람의 영혼 속에 예수님의 것을 알려주는 일을 합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것은 다 알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예배당 종각 위에 십자가를 달아놓습니다. 십자가 하면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라는 것을 다 압니다. 

그렇지만 성령으로가 아니면 내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되어 버렸다는 그 사실을 알 수가 없어요. 그 사실을 알아야 구원을 받게 되는데 그것을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알리셔서 우리가 그걸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분명 예수님의 것을 성령이 알려주셨기 때문에 깨닫는 겁니다. 

성령의 역사 가운데 하나는 죄인들로 하여금 말씀을 깨닫고 구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일차적인 역사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9장 6절에서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심으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무릇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구원을 받을 때에 성령은 받았지만 방언을 하거나 예언을 하거나 하지는 못했습니다. 방언이나 예언은 성령의 또다른 역사입니다. 

사도행전 8장 14절부터 읽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사도행전 8:14-16)


이스라엘 땅을 살펴보면 영토가 길쭉한데 제일 북쪽은 갈릴리 지방이고 남쪽은 유대 지방이고 중간에 사마리아 지역이 끼어 있습니다. 

우리 한국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서울과 전라도, 경상도의 중간에 충청도가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땅도 제일 북쪽은 갈릴리 지방이고 제일 남쪽은 유대 지방이며 그 사이에 사마리아 지역이 끼어 있습니다. 이 사마리아 지역 사람들은 옛날부터 이방인들과 교류가 많아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고 이방의 피를 받은 혼 혈인이 많이 사는 그런 지역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 취급했습니다. 진정한 이스라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보통때는 유대인들은 그 지역에 잘 가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복음의 역사가 크게 일어나고 구원받는 역사가 크게 일어나자 굉장한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구원받은 사람이 예루살렘에만 수만 명 생겼는데 핍박을 피해 예루살렘 신자들 이 각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흩어지는 중에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빌립이라는 사람이 사마리아에 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8장 1절부터 읽겠습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도행전 8:1-3)


이 때는 바울이 회개하기 전입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많이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이리저리 흩어졌습니다. 

4절입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도행전 8:4-8)


빌립이라는 사람은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아니고 일곱 집사, 사도행전 6장에 나오는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빌립입니다. 이 사람이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전도를 했는데 이적이 나타나고 귀신도 나가고 병든 자가 낫는 그런 일이 생기면서 많은 사람이 빌립의 전도를 듣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던 겁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그 들이 구원을 받은 거잖아요. 그런데 그 다음 14절을 보세요.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수제자들입니다.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 하는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리로 보냈습니다. 계속해서 15절입니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성령은 내리신 일이 없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하고 여러분들하고 비교해 보세요. 여러 분들도 말씀을 믿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했다고 하는 뚜렷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말씀을 깨닫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구원을 받은 겁니다. 사마리아 신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하는 것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이 가보니까 말씀을 받고 침례를 받았는데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이 내리신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성령 내린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가보니까 '성령이 내리신 일이 없고' 라고 했습니다. 이제 17절을 보세요. 


 "이에 두 사도가 저회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참 이상합니다. 안수를 하니까 성령이 내렸다고 했습니다. 여기는 그것 뿐이고 방언을 했다든지 예언을 했다든지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또 사도행전 10장 41절부터 보세요.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성령이 계신 교회

욥바에 있는 고넬료라는 사람의 집에 베드로가 초청되어 갔습니다. 고넬료라는 사람은 이방 사람으로서 로마에서 파송한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지휘관이었습니다. 그 백부장의 집으로 베드로가 초청을 받고 거기에서 복음의 말씀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안수한 일이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복음의 말씀만 전했는데 이상하게도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 때는 말씀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말할 때에 그 말씀을 깨닫는 것이 구원이거든요. 구원을 받고 그 다음에 또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는 성령하고 은사를 주는 성령이 다른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면 첫째, 구원받은 사람이 모여야 교회가 됩니다. 구원 안받은 사람들이 모여가지고는 교회가 안됩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는 개척교회가 많습니다. 과거에 구원받지 못했을 때 저도 개척교회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개척교회 할 때에는 어디가서 천막을 치고 사람을 불러 모읍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그 사람들은 구원도 안받았는데 교회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사람만 모이면 교회라고 부릅니다. 그건 가짜 교회입니다. 성령이 계셔야 교회이지 성령이 없으면 교회가 아니에요. 오순절 날은 성령이 임한 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12제자들이 전도할 때는 아직 교회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셨고 제자도 있었고 신자도 많았지만 그 때는 아직도 교회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해야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첫째, 구원받을 때에 즉, 영혼 속에 말씀을 깨달을 때 성령이 오십니다. 그게 구원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실제로 모여야 됩니다. 모이고 그 다음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니까 성령이 내렸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바울이 안수하니까 성령이 내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안수라는 게 무엇입니까? 안수라는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해 하는 게 아니에요. 구원을 어떻게 안수해서 받습니까? 안수는 어떤 일을 맡긴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사도들에게는 안수를 해서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성령을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교회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교회가 형성되려면 우선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야 됩니다. 

그러나 일할 수 있는, 교회 구실을 할 수 있는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할 수 없어요. 성령이 임해야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은사를 주셔야 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은사를 주시지 않으시면 일하는 교회, 역사 하는 교회, 진정한 교회는 세워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이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주님이 보시기에 참으로 성령에 의해서 역사가 일어나는 참교회라고 볼 수 없는 겁니다. 

그러면 순복음 교회라든지 하나님의 성회에서 방언을 하고 병고치는 일을 한다든가 어떤 부흥사들이 나타나서 집회를 하면 사람들이 방언도 하고 병 고치기도 한다는데 그것은 도대체 어떤 것입니 까? 그런 걸 부인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솔직한 말로 전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몸에 여러가지 은사

고린도전서 12장 28절입니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교회에서 하나님이 몇 가지 종류의 일을 시키는데 첫째는 사도입니다. 사도가 어디 있습니까? 지금 이 시대에 사도가 어디 있습 니까? 그 사도는 이 성경 안에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바로 사도와 선지자를 통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지금은 사도가 따로 없고 선지자가 따로 없어요. 

여기를 잡고 에베소서 2장 23절을 읽어 봅시다. 에베소서 2장은 교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터를 닦아 놓았는데 그 터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시대의 교회에는 사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선지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성경 말씀 안에 있습니다. 

자, 그 다음에 고린도전서 12장 28절로 돌아갑시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사도와 선지자는 신구약 성경입니다. "세째는 교사요" 교사가 성경을 가르치는 역할을 합니다. 

교사라는 것은 아무나 하면 안됩니다. 목사와 교사는 같습니다. 목사와 교사는 성령으로 은사를 받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능력이요" 능력이라는 것은 귀신을 쫓아낸다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병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서로 돕는 것도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다스리는 것과" 다스리는 것, 치리하는 것 그것도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여러분들이 혹시 그런 집회에 가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신비주의 집회에 가보면 전부 다 방언을 해야 된다고 말을 합니다. 방언을 강조하면서 심지어는 연습까지 시킵니다. 방언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합니다. 그건 거짓말입니다. 여기 이 성경을 보세요.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아니라는 뜻입니다. 

연습 시키는 방언은 가짜입니다. 마귀가 주는 방언도 있습니다. 방언을 다 해야 한다고 가르치면 그것은 성경과 틀리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12장 12절을 보세요.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여기에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과 성령을 마시게 했다는 것은 다릅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이것은 무슨 말이냐면 교회는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우리 육신에 비유했습니다. 우리 몸에는 머리가 있고 몸이 있는데 그 중에서 손이 가진 은사가 무엇이겠습니까? 손은 물건을 만지고 거머 쥐고 하는 그런 은사가 있습니다. 발은 무슨 은사를 가졌느냐, 발은 땅을 밟고 걸어다니는 은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손의 역할이 다르고 발의 역할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입의 역할이 다르고 눈의 역할이 다르고 귀의 역할도 각각 다릅니다. 모두가 다 방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것은 귀신의 가르침입니다. 

교회에 성령이 임하면 그 중에 어떤 사람은 이 은사 또 어떤 사람은 저 은사를 받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9가지 은사가 나 옵니다. 어떤 사람은 지식의 말씀으로, 어떤 사람은 지혜의 말씀으로, 어떤 사람은 방언함을, 어떤 사람은 통역함을, 어떤 사람은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은 손 역할, 어떤 사람은 눈 역할, 어떤 사람은 귀 역할, 어떤 사람은 입 역할, 이렇게 다른 역할을 담당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은사가 서로 다른데 다 방언을 해야 한다고 하는 건 마귀의 장난입니다. 그건 틀리는 말입니다. "다 사도겠느냐, 다 병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아니라는 말입니다. 교회가 이루어지려면 성령이 임해야 하는 데 성령이 임하면 반드시 방언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병을 고치는 역사도 반드시 나타납니다. 성령이 임했으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일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렇지만 혼해 빠진 그 방언하고는 완전히 틀리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 뜻도 모르고 그냥 방언한다고 합니다.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더 큰 은사, 사랑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린도전서 12:31)


자, 여기 보세요. 

방언을 한다, 병을 고친다 하는 것도 은사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크고 온전한 은사가 있습니다. 그걸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1-3) 


제일 큰 은사는 사랑입니다. 여러분들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굉장히 중요한 문제니까 잘 들으세요.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세워집니다. 그리고 거기에 성령이 임하면 방언을 하는 것이 나타나고 병 고치는 것이 나타나요. 그런데 그런 일들은 교회가 성장하지 않고 아직 어릴 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교회가 어릴 때에 그런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를 볼 때, 맘마, 맘마라고 하는 것, 그것이 방언이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교회가 자 라면 그런 일은 그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뭐고 섬기는 것이 뭔지 알게 되는 것이 교회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렇게 성장하기 전, 아직 유치할 때에는 방언이 나타나고 병고치는 것이 나타나요. 교회가 성장해 버리면 그것이 없어집니다. 

고린도전서 13장 8절을 보세요.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오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 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린도전서 13:8-11)


예언하는 것, 방언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일입니다. 장성해 버리면 그게 끝나버려요. 그러니까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친다고 그랬습니다. 

우리 교회는 초기에 이런 역사가 다 지나갔습니다. 처음에 제가 구원을 받고 아직 교회가 크지 않았을 때에는 제가 살고 있던 집에서 모였는데 거기서 전도도 하고 성경공부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매 하나가 아파서 앓게 되었습니다. 집에서는 자기 혼자 

구원을 받았는데 열이 40도나 올라가고 그렇게 앓고 있으니까 부모님들이 무당을 데려다가 굿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자매가 도망을 쳐서 우리 집에 왔어요. 마침 우리는 그때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던 세 형제가 그 자매의 머리에다 손을 얹고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자 40도나 올라갔던 열이 갑자기 낮아지고 병이 완전히 낳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그런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자랑삼아 말한다든지 그걸 무기삼아서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그때마다 성령이 감동주시는 그것을 전했지 그 이상의 것은 자랑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줄곧 병든 사람을 안수하거나 고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그런 일이 없었어요. 그런 일들은 교회가 처음 시작해서 어릴 때에 있는 일입니다. 여기 있는 이 말씀대로 장성한 사람이 되면 어릴 때의 일을 버리는 것입니다.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방언하는 게 그렇게 자랑스럽고,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고, 방언을 하면 밤새도록 기도할 수 있고 방언하면 기분이 좋고 마음이 기쁘다고 합니다. 그것은 전부 마귀의 방언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4절을 보세요.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여기서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한다" 는 말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속으로 영이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이 기쁘다든지 좋다든지 그런 게 있을 수 없어요. 그런 게 없습니다. 그래야 진정한 방언입니다. 방언하니까 기쁘고 좋고 밤새도록 방언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전부 거짓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습니다. 

22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방언은 믿지 않는 사람, 구원을 못받은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들 때문에 방언이 일어나는 겁니다. 분명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초기에 되어진 일을 몇 가지 얘기하겠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은 그렇게 인간 집단이 아니고, 사람이 모이고 싶어서 모인 것도 아니고 분명히 어느날 성령이 임해서 시작이 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우리 교회에는 성령이 임하는 체험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을 받는 체험을 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성령받는 체험을 하기 전에 경상도 어느 시골, 교회도 없는 농촌에 가서 1년 동안 복음을 전했어요. 1년 동안 복음을 전했는데 한 50명이 구원을 받았어요. 그런데 한 1년쯤 지나고 나니까 그 복음 전하는 사람이 설교를 더이상 못하게 되었습니다. 

성경만 가지고 얘기를 하니까 쉬운 것 같지만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못받은 사람에게 복 음을 전하는 것은 언제든지 쉽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에게 성경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한 1년쯤 지나면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자기가 아는 이야기를 다 해버리고 나서, 했던 얘기 또 한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굉장히 힘이 듭니다. 성경을 읽으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도하던 사람이 한 1년 쯤 지나고 나니까 설교할 거리가 바닥이 났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형제의 본래 직업은 미술가예요. 그래서 이제 그만 전도하는 생활을 집어치우고 다시 그림 그리는 생활로 돌아갈까 하고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을 먹고 나서 방 안에서 혼자서 성경을 읽고 있었어요. 그 때 읽은 성경이 구약성경 에스겔 37장입니다. '인자야 저 뼈들에게 예언하라' 하는 그런 말씀을 쭉 읽었는데 이상하게도 밖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밖에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는 전혀 안 들리고 '인자야 너는 저 뼈들에게 예언하라'는 이스라엘 민족에 관한 성경 말씀이 그냥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에 깊은 교제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 몇 시간이 지났어요. 나중에 본래 상태로 돌아왔는데 그 성경 말씀이 처음부터 끝까지 확 풀려 버렸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때까지 우리 모임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에 대해서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 사람은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되는 것은 하나님의 예언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라고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우리 모임이 전도하는 메시지의 중심이 된 것입니다. 

그 전에 또 무슨 신비한 체험이 있었습니다만 그건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성경을 읽으면 읽는 즉시 다 풀어지는 거예요. 그 사람이 성경에 대해 한 번 얘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은사입니다. 

그 시골 마을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저녁마다 모여서 간증도 하고 찬송도 하면서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교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 구원받은 사람들은 지금 구원받은 사람들하고 달라요. 그때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모여서 찬송 부르고 매일 다같이 성경 읽고 그렇게 해도 그 기쁜 마음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1주일에 한 번 모이는 날도 안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을 처음 받았을 때에는 성경이 꿀맛 같습니다. 그 전도하던 형제가 다른 지방으로 며칠간 출장을 간 사이에도 저녁에 구원받은 사람이 다 모여서 평상시대로 교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동네의 불량한 청년들이 몰려왔어요. 모두들 둘러앉아 있는데 그 안에 뛰어들어와서 난장판치면서 욕지거리를 하고 방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18살쯤 먹은 처녀 하나가 느닷없이 일어나더니만 입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방언이었습니다. 그 방언 소리가 튀어나오지마자 청년들이 겁이 나서 일어나 도망을 치는데 지붕의 낮은 문지방에 머리를 깨기도 하면서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것이 방언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한 표적입니다. 그게 진짜 방언입니다. 진짜 방언은 구원 안받은 사람들이 들으면 그렇게 겁이 나는 것입니다. 못견디는 것입니다. 그 방언은 사람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여러 사람이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설교하던 그 형제는 가끔 시골에서 제가 있던 대구로 왔습니다. 그때는 우리 집에서 요즘처럼 금요일마다 성경공부를 했는데 그 사람이 공부를 인도했어요. 성경말씀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라는 구절을 읽고 그 날 설교를 했습니다. 거기에 한 10여 명이 둘러 앉아 있었습니다. 

한참 설교를 하고 있는데 우리 집사람이 내가 오늘 저녁에 해결된 문제가 하나 있는데 잠깐 얘기를 하겠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나도 구원을 받았는데 나는 왜 전도를 해도 구원받는 사람이 없는가 하고 굉장히 고민이 많았는데 오늘 저녁에 그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전도는 내가 하는 게 아니고 바로 제 안에 계시는 주님이 하신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형제가 계속 설교를 했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하는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앉아 있는 사람들을 죽 둘러보면서 "성령 받았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구원받은 것이 성령 받은 것인 줄 알고 10여 명이 다 "예" 하고 대답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저의 집사람도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또 계속 설교를 하는데 집사람이 이상했습니다. 창자 쪽에서부터 뭐가 자꾸 차서 올라온다라고 하더니만 목에까지 올라와서 왁 하면서 막 구역질하는 것이었어요. 그러자 설교하던 사람이 어깨를 탁 치면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안사람이 주여라고 불렀는데 혀가 구부러지면서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때에 거기에는 평소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우리가 볼 때에 구원을 안받은 청년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청년의 얼굴이 완전히 흑빛이 되었어요. 벌벌 떨면서 한참을 그러더니만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그 다음 주일날이었습니다. 주일 날 집회 장소에 나갔습니다. 집회 장소는 저희 집이 아닌 다른 곳이었는데 그날 제가 설교를 하고 기도를 마치자 저의 안사람이 큰 소리로 방언을 하는 겁니다. 방언 소리가 나자마자 대성통곡이 일어나는데 그날 태어나서 교회라고 하는 곳을 처음 와 본 60세 된 노인이 통곡을 시작했고 또 다른 몇몇 사람도 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다섯 사람이 구원을 받았어요.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방언입니다.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진정한 방언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때부터 계속 방언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아무리 상담을 해도 깨닫지 못하면 안사람이 옆에 앉았다가 방언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막 통곡을 하고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에 내가 방송국에 취직이 되어 방송 목사로 인천에 갔습니다. 그 방송국이 처음에는 인천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극동방송국이라 불리고 서울에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인천에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저희 안사람이 개인 전도를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하루도 쉬지 않고 개인 전도를 했습니다. 그때는 상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희 안사람이 상담을 하곤 했는데 내가 방송국으로 출근하고 나면 집에 전도받을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방송국이 서울로 옮겨지고 저는 서울로 출근을 했어요. 제가 출근하고 나면 집에는 아이들도 다 학교에 가고 아무도 없으니까 안사람이 혼자 설거지를 마치고 성경을 보는 겁니다. 하루는 소나기가 막 쏟아지는데 감당을 못할 정도로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안 사람이 방 안에서 성경을 읽고 있다가 혼자서 큰 소리로 방언을 했습니다. 

그때 제가 살던 집의 옆 방을 구원 안받은 사람에게 세를 주었습니다. 옆 방에 있는 아주머니는 나이가 좀 많은 분이었는데 그 방언 소리를 듣더니 너무 무서워서 못견디고 그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문을 열어젖히고 도망을 갔습니다. 골목길을 나가서 큰 길로 도망을 가는데 좁은 골목길까지 나갔을 때에 우산을 받쳐든 어떤 부인 두 사람과 마주쳤습니다. 그 부인들이 이 아주머니에게 권 목사님이라는 분이 어디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그 집이 바로 저기 저곳이라고 가르쳐주고는 도망을 가버렸어요. 그 두 부인은 우리집을 찾으려고 비를 맞으면서 한 시간을 헤맸던 겁니다. 찾다 못찾고 돌아가려고 할 때에 도망치던 이 아주머니와 마주친 거예요. 그래서 그 두 부인들은 우리집으로 왔고 그날 당장 구원을 받았습니다.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고

여러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것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방언은 분명히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입니다. 성경대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얼마 안가서 방언이 끝났습니다. 저의 안사람은 방언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는 게 아니고 방언이 일어날 때에는 참을 수 없고 안하려고 참으면 온 몸이 아프고 저렸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방언도 끝이 났습니다. 교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고 난 이후부터 차츰차츰 방언이 끝이 났습니다. 지금은 방언이 없습니다. 분명히 이 성경 속에 있는 말씀대로, 신비로운 것 같지만, 모임에 그런 역사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병 고치는 역사도 있었습니다. 성경에 있는 역사가 우리 교회 안에서는 이미 다 지나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역사들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방언이라든지 병고치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혼을 자극해서 정신통일을 하면 병을 고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건 성령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분명히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개인적으로도 병든 사람이 성경 읽다가 깨달아 버리기도 하고 병도 낫기도 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진정한 교회가 세워지려고 하면 순서가 있어야 합니다. 우선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야 되고 그 다음에 어느날 성령이 임해야 되고 성령이 임하면 방언이 일어나게 되고 그런 등등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 것이 없이 세워진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닙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을 찾아보세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예수님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아요. 예수님의 역사가 옛날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도 괜찮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옛날 역사나 지금 역사나 같은 겁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방언을 주장하고 모두 다 성령의 역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구원받았다고 해서 모두 다 성령의 역사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다 방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또 한편에서는 그것은 마귀의 장난이고 그것은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이 둘이 공방을 벌입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이런 역사들이 분명히 있음을 알고 성령의 참역사를 따릅니다. 그래서 성령의 참역사를 통해서 일어나는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를 발견합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지역적인 교회가 세워질 때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세워질 때 그 역사가 있었고, 사마리아 교회가 세워질 때 그 역사가 있었고 또 고린도 교회에도 그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멀리 떨어진 교회 교회마다 그 역사가 전부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것이 없이도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비밀이 완전히 숨겨져 있습니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큰 구원을 주셔서 이 큰 구원을 받고 양심의 자유를 얻었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성경 속에 있는 비밀이

 

나타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계시다는 이 사실을 깨달을 때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구원을 받는 역사가 계속되고 있으며 성도를 서로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는 은혜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주님의 거룩한 말씀에 근거해서 주님의 은혜 아래 살다가 주님을 맞이할 때에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머리 숙인 이 심령들이 아직은 구원받은 지 얼마 안되고 어리지만 말씀과 생활을 통해서 차츰차츰 믿음이 자라서 주님을 위해서 열심으로 일하고 자기 자신을 주님께 드려서 살 수 있는 알찬 신앙생활을 해서 주님 앞에 많은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말씀을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