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브리서 4:9-11)
요한복음 5장 1절부터 읽겠습니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거기 삼십 팔년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한복음 5:1-18)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과 예수님 사이에 안식일 문제 때문에 충돌이 많았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한다고 언제나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안식일에 대해 공부할까 합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어떤 분이 안식교인들에게 안식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혼동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만나서 그 문제를 해결해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주일이 안식일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가진 분도 있을 것이고 또 안식일에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안식일과 주일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리저리 혼돈되는 일이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먼저 쉬는 자와 나중 쉬는 자
지금 읽은 이 말씀 속에서도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는데 그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금요일 해가 지면 안식일에 들어가고 다음날 해가 질 때까지 안식일이 계속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 주셨는데 안식일을 범했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일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여기 예수님의 이 말씀은 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안식일에 일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우리가 이 내용을 알게 되면 완전히 이해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그런 것을 공부하기 전에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소위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먼저 일을 하고 마지막에 쉰다는 뜻에서 안식일을 지키고 있지만 우리는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쉰다는 것입니다. 주일이 안식일은 아니지만 신약시대에 와서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써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먼저 쉰 사람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을 다하고 쉬는 것과 먼저 쉬는 사람은 일할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은 다릅니다.
먼저 쉬는 사람은 일할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마음이 쉬는 사람, 구원을 받아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마음의 안식을 얻는 사람은 그 안식을 얻은 감사함과 즐거움 때문에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에 대해 조금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엿새 동안 자기 힘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나면 나중에 쉴 수 있다고 믿는데 그런 문제는 율법적인 세계이고 복음적인 세계와는 완전히 뜻이 다른 겁니다. 종교라고 하는 것은 구약의 율법입니다. 사람이 노력을 해서 열심히 일한 결과로 쉰다는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전부 다 그것입니다.
복음의 가르침, 성경의 가르침은 그것이 아니고 마음이 평안하고 마음이 쉬고 마음이 죄에서 해방을 받고 먼저 안식을 얻은 사람은 자기 힘으로가 아닌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차이가 아주 중요한 것인데 안식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33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안식이라는 것은 율법입니다. 십계명 가운데 넷째 계명이 안식일 계명 아닙니까? 율법 속에 안식일이라는 것이 있어요. 그런데 여기 보면 죄를 깨닫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안식일 계명도 율법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계명도 죄를 깨닫게 하시려고 주셨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안식일을 지켜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라는 계명도 분명히 율법이니까,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주신 것이지 안식일을 지켜서 영생을 하거나 안식일을 지키면 복이 온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물론 구약에서는 복 주신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의 내용은 출애굽기 23장 3절부터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8절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8-11)
라고 되어 있습 니다. 안식일을 기억해서 거룩히 지키라고 했습니다.
9절에는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니" 라고 했는데도 사람들은 안식일에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만 생각해요.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할 것이라는 말씀은 생각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라고 했으니 모든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안식할 자격이 없어요. 엿새 동안 힘써 모든 일을 한다는 말이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일을 다 해 버리고 할 일이 없어야 쉴 수 있는 거예요. 일이 남아 있으면 못 쉬는 겁니다. 일이 남아 있는데 어떻게 쉽니까? 이 모든 일을 한다는 말은 일을 끝낸다는 뜻입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쉬어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10절을 봅시다.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완성하시고 쉬신 날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처럼 안식을 해보라는 말입니다.
창세기 2장 1절부터 보겠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세기 2:1-3)
없어진 하나님의 안식
이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왜 쉬셨습니까? 더 할 일이 없어서 쉬신 거잖아요. 일을 다 끝마치셔서 할 일이 없어진 겁니다. 그래서 쉬셨다는 겁니다. 여기에 그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라.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다하셨다. 마쳤다. 또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안식이라는 말의 뜻은 일이 끝났다는 뜻입니다. 일이 끝나서 할게 없다는 뜻이에요. 그게 안식입니다. 그런데 왜 이 계명을 명령하셨는가. 무엇 때문에 이 말씀을 십계명 속에 포함시켜서 안식일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는가. 여러분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안식일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안식일에 성경 찬송가 들고 예배당에 가면 그것을 안식일을 지키는 것인줄 알아요. 그것은 안식이 아니에요. 지금도 사람들이 주일을 안식일 개념으로 지켜요. 주일에 일하지 않고 예배당에 가는 것이 안식하는 것인 줄 알아요. 성경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공장에서 일을 합니다. 일이 태산같이 많아도 안식일이 되면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안식인 줄 알아요. 그건 안식이 아닙니다. 태산같이 많은 일을 놔두고는 안식을 못합니다. 그 일을 완전히 다 끝마쳤으면 할 일이 없으니까 쉴 수 있습니다. 그 뜻입니다. 할 일을 두고는 못 쉬는 거예요. 할 일이 많은데 어떻게 쉽니까?
그래서 출애굽기 23장에 '엿새 동안에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일을 다 끝냈거든, 더할 일이 없이 다 끝냈거든 한번 쉬어보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쉴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걸 해도 또 일이고 저걸 해도 또 일이고 계속 일이 생깁니다. 오늘 못다한 일 내일 하고 또 내일 못다 한 일 글피하고, 인간은 계속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20장의 계명 속에 있는 "네 모든 일" 이라는 말은 단순히 우리의 육체적인 노동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도 물론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뜻은 율법을 다 지키는 사람은 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모든 일입니다. 여러분 중에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면 모든 일이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율법 지키는 생활은 굉장히 수고하는 생활이고 무거운 짐을 지는 생활입니다.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까? 율법은 지킬 수가 없어요. 그래서 율법을 지키는 생활은 수고하는 생활이고 무거운 짐을 지는 생활인 것입니다. 율법을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완전히 지킬 수가 없어요. 안식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요한복음 5장 17절을 다시 한번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시고 일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요한복음 5:19-21)
창세기 2장에는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만드시는 것을 다 마치고 쉬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안식이 깨어졌기 때문에 십계명 속에 안식일 계명이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안식이 없어진 줄 알아요? 아담이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힘써서 하신 그 일은 아담을 위해서 창조하시는 것이었는데 그가 그만 죄를 짓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죽어버렸습니다. 영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육체도 나중에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이 죽어버렸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안식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안식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일을 시작하신 거예요.
21절에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하나님께서 이제는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일을 다시 시작하신 것입니다. 아담만 죽은 것이 아니고 아담의 후손들도 다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안식이 없어져 버렸어요.
안식일 계명이 십계명 속에 있는 이유는 이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안식일 계명이 뭘 깨닫게 합니까? 인간은 타락해버렸다, 인간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안식이 없어져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마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기 때문에 자신도 안식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안식도 없애 버렸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는 사람들, 주일을 안식일 개념으로 지킨다고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한 가지 모르는 점이 바로 이 점입니다. 즉 하나님의 안식이 없어졌다는 것,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일을 다시 시작하셨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쉬시지 못하고 지금까지 일을 하는데 내가 안식일이라고 해서 쉴 수가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 날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거예요.
안식일은 십계명
38년 된 병자가 베데스다 못 가에서 앓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찾아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시니까 그 사람이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그건 분명히 일입니다.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이 일이잖아요. 유대인들은 그런 걸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 날은 안식일인데 자기가 38년 동안이나 깔고 뭉개던 자리를 말아가지고 들고 걸어가는 거예요. 그게 안식일을 범하는 거잖아요.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어디를 걸어가느냐고 바리새인들이 책망을 하니까 그 사람은 "나를 낫게 한 그 분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던데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낫게 해준 분이 예수님인 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나중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은 네가 나았으니 다시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38년 된 병자가 유대인들에게 가서 나를 낫게 하신 그 분은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쳤으니까 일을 한 것이라고 해서 예수님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억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38년 동안 이 병자가 베데스다 못가에서 괴로워하며 끙끙 앓고 있는 동안 안식일 날짜는 계속 지나갔습니다. 안식일에 괴로운 마음이 있어도 아무 일도 안하니까 그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성경을 잘 모르는 종교인들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38년 동안이면 1년에 안식일이 52일 정도 되니 약 2,000번 가까이 되는 그런 안식일이 지나갔지만 38년 된 병자는 날짜만 보냈지 진정 안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38년 된 병자가 안식일을 보냈다고 해서 그것이 안식일을 지킨 것입니까? 38년 된 병자는 안식일에 끙끙 앓고 있었습니다. 그건 안식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안식일에 그를 치료하셨습니다. 갑자기 38년 동안이나 앓고 있던 사람이 힘이 생겨 벌떡 일어나 자리를 들고 기분이 좋아서 갔습니다. 그게 안식이잖아요. 안그렇습니까? 그게 안식이죠. 안식일에 안식을 그에게 주었잖아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걸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병자가 안식일을 범했다는 거예요.
지금 주일을 안식일 개념으로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고 또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날짜에 따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진정한 안식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식으로 안식을 주장하는 안식교는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안식교는 영혼도 믿지 않고 영원한 천국도 믿지 않아요. 안식교와 여호와의 증인이 비슷한데 그들은 육신이 편히 사는 것만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람의 영혼이 영생한다는 것을 안믿습니다. 완전히 이단입니다. 그리고서는 안식일만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거예요. 안식일의 진정한 뜻을 모르는 것입니다.
제가 구원받기 전에 대구신학교에 강사로 나간 적이 있습니다. 나가다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굴을 알던 학생 하나가 어느 날 없어졌습니다. 제가 채플 시간에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를 듣다가 구원을 받고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신학교에 다니는 신학생들이라도 채플 시간이나 예배 시간에 잘 모이지 않습니다. 들을 게 없으니까 잘 안 모입니다.
그런데 제가 구원받고 설교를 하니까 제 채플 시간에는 홀이 미어지도록 학생들이 들어욌습니다. 그 날은 제가 종교에서의 해방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어요. 그 설교를 듣던 학생 하나가 없어져 버린 겁니다. 강의 시간에 그 학생이 안 나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두달쯤 지난 후에 나타났어요. 나타나서 하는 말이 자기가 어느날 채플 시간에 목사님 설교를 듣고 구원을 받고 나니까 신학교 다닐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신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구원받은건 좋았는데 후에 이상한 곳으로 빠져버렸습니다.
그곳이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김포 근방에 최천성 목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안식일을 주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목사는 구원을 받았으면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했는데 이 학생이 그 이야기를 듣고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후 저는 방송국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방송국의 선교사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이었는데 제가 구원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일하자고 제의해서 방송국에 들어가서 방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송국에 근무를 하고 있는데 어느날 그 신학생이 방송국에 찾아왔어요. 그는 아주 강력히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았으면 율법을 지켜야 되고 그러니까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고 강력히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앉혀놓고 설명을 많이 했습니다만 안듣고 막무가내로 가버렸습니다. 한 1년쯤 뒤에 또 찾아왔습니다. 그때는 집에 데려다가 밥을 먹여가면서 안식일의 원리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대로 복음을 전하는 그런 일꾼이 되었지만 나중에는 우리 모임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안식일 때문에 마음이 경직되고 안식일을 지켜야된다고 주장하던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안식일이라는 것은 완전히 율법입니다. 계명 속에 안식일이 있는 이유는 그 계명을 통해서 인간은 안식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안식도 깨어버렸습니다. 그렇잖습니까? 하나님이 엿새 동안 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쉬시는데 인간이 마귀의 말을 들어 죄를 짓고 그 영이 죽어버려 이제 하나님은 그를 살리시는 일을 다시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안식도 없애버린 인간은 쉴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안식일 계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에 일차적으로 안식을 경험합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다 이루었다는 이 말씀을 읽고 구원받은 사람이 꽤 많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이 말이, 창세기 2장에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모든 일을 다 이루시고 마쳤으니까 하나님이 쉬셨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안지으려고 이런 노력을 하고 저런 노력을 하고 또 종교생활을 하며 굉장히 애쓰고 힘씁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안식
일반적으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 바로 종교생활입니다. 새벽기도 열심히 다니는 그것도 종교생활이에요. 새벽기도 다니는 사람 중에 즐겁고 편히 쉬는 마음으로 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벽기도는 옛날 평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옛날 평양에 삼정 현 교회가 있었는데 이 교회의 나이 많은 노인들이 새벽에 깨면 잠도 안오고 하니까 우리 그러지 말고 예배당에 모이자. 그래서 찬송도 하고 성경도 읽고 같이 하자 하며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기도회라기 보다는 노인들이 잠이 안오니까 그렇게라도 하자라고 해서 모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새벽기도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새벽기도회의 출발입니다. 그 전에는 새벽기도도 없었습니다. 전세계 의 어디를 돌아다녀도 한국처럼 새벽기도회를 하는 데는 없어요. 다른 나라에는 없습니다. 한국만 새벽기도회를 해요. 새벽기도에 열심히 나가면 믿음이 좋은 사람같이 생각되고 새벽기도에 안나가면 믿음이 없는 사람같이 생각됩니다. 새벽기도라는 것은 종교생활이예요. 젊은 사람에게는 새벽기도보다 더 고달프고 고민이 되는 일이 없어요.
저는 한 20세쯤부터 39살 구원받을 때까지 약 20년 동안 새벽기도회를 빠져본 일이 없어요. 젊은 사람들에게는 새벽기도라는게 굉장히 힘이 드는데 그걸 해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같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합니다. 그게 신앙생활인 줄 알아요. 그런 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도 아침 일찍 일어나면 혼자서 성경을 읽습니다. 여러분들도 조용히 혼자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보는 것은 주일날이라든지 공식 집회에서나 하고 그것 말고 여러분들이 주님과 일 대 일로 대화하는 것, 성경 읽고 마음에 감동받은 것이 있으면 기도하고 또 마음에 무언가 간절히 소원하는 게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참으로 필요합니다. 조용한 시간, 내가 주님 앞에서 조용히 묵상하고 조용히 말씀 읽고 하는 그 시간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새벽기도회 하지 말고 시간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그런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야 됩니다. 새벽기도회가 그리스도인들을 병들게 만듭니다. 조용히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생각하면서 반성도 할 수 있는 개인적인 시간을 가져야 되는데 이런 것을 다 없애버리는 겁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아요? 우리가 율법을 지켜야 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하는데 내가 해야 할 일을 예수님이 대신 다 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다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할 일이 없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깨닫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많아요.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걸 가지고 괜히 내가 애를 썼구나 하면서 마음이 쉼을 얻으면 그것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안식이잖아요. 내가 하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을 멈춘다는 말입니다. 저는 구원받기 전에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새벽기도 안나가는 날이 없었습니다. 목사가 새벽기도회에 다른 교인들보다 늦게 나가면 안되니까 다른 교인들보다 일찍 나가 강단 앞에 엎드려서 울고불고 기도하고 눈물을 안 흘린 날이 없어요. 매일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예수 믿는 생활이 얼마나 고달픈지 모릅니다. 목사 생활할 때 제일 힘들었던 게 새벽기도입니다. 그렇게 싫으면서도 목사니까 안 할 수 없는 거예요. 새벽기도 해야지, 심방해야지, 누구 어려운 일 당하면 일일이 찾아보고 도와주고 해야지, 옷 벗어 구제도 많이 하고 할 것 다 해보았습니다.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할수록 마음은 불안하고 항상 삯군이며 위선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노력이잖아요. 그것이 종교생활입니다. 피나는 노력을 해도 마음은 언제나 불안해요. 양심은 항상 괴로워요.
그러다가 어느날 제가 구원을 받았는데 율법에서 해방이라는 말씀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내 대신 다 이루어 버리셨으니까. 예수님이 내가 지켜야 할 율법, 내가 행해야 할 모든 걸 다 해 놔 버리신 거예요. 이미 다 되어 있는 건데 내가 왜 그렇게 노력하고 애썼던가. 거기에서 구원이 오고 일차적으로 양심의 안식이 옵니다.
그러고 난 다음 그 안식을 또 한 번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신앙생활이 아주 쉽게 됩니다. 구원을 받았으니까 주님 말씀대로 살고 남을 사랑하는 생활 속으로 들어가면 또 굉장히 힘이 들게 됩니다.
제 안사람은 제가 구원받은 후 열 달 뒤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 안사람은 열 달 뒤에 구원받고 그로부터 4년째 되던 해에 제가 방송국으로 발령을 받고 인천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방송국이 처음에는 인천에 있었는데 나중에 서울로 옮겼어요. 그래서 인천에서 서울로 통근을 하는데 그 당시 제 안사람은 굉장히 피곤해 하며 계단 하나도 못 내려가겠다며 힘겨워 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해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집으로 돌아가니까 완전히 달라져서 펄펄 뛰면서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혼자 집에 있으면서 성경을 읽다가 무엇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으니까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하는데 아무리 사랑을 하려고 해도 안돼 지쳐 있었는데 어느날 인간은 사랑할 수 없고 주님이 사랑하신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거지 인간이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성경 말씀에서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걸 깨닫고 나자 그 다음에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그것 이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안식을 얻는 문제입니다.
자기 일을 쉬는 것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히브리서 4:10)
창세기 2장에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처럼 자기 일을 쉰다는 겁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자기 일을 안하는 것이 신앙생활이에요. 자기 일을 쉬어버리는 것. 조금 어렵지요. 여러분에게는 아직 어렵습니다. 자기 일, 내가 할 일은 다 끝나버렸기 때문에 자기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쉬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전부가 자기 일을 합니다. 그건 진정한 신앙생활이 아니에요. 자기 일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전부 자기 일에 매어 달려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자기 일이라는 말은 집의 부엌 일이라든지 사업이라든지 그 일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해야지요. 주부는 살림하고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하고. 자기 일이라는 말은 도덕적인 생활, 영적인 생활, 내 행위를 앞세워서 내가 열심히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생활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1절부터 3절까지를 읽겠습니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갈라디아서 4:1-3)
종 노릇한다는 게 뭔지 알아요? 예수 믿는다고 신앙생활하는 것이 전부 종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새벽기도 열심히 다니다가 하루 빠지면 '내가 오늘 새벽기도 빠졌구나' 하고 불안해 합니다. 그게 종입니다. 안 하면 마음이 불안하고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그게 전부 다 종 노릇입니다. 기독교인의 90퍼센트 이상이 종노릇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면 안심이 되고 안하면 마음이 불안한 이 모든 것들은 종 노릇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습니까? 아들과 아버지의 사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걸어가야 할 진정한 신앙생활은 자기 일에서 해방받는 생활입니다. 그때 진정한 신앙생활이 있어요. 그러면 신앙생활이 참 편안해지는데 그것이 안식입니다.
안식은 두 가지인데 첫째, 구원받으면 영혼이 안식을 얻는 것, 둘째, 자기 일을 쉬어버리면 신앙생활이 쉬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고 성령의 힘으로 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쉽습니다. 그게 진정한 신앙생활이에요.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일반적으로 기독교가 이 사실을 - 물론 구원에 대해서도 모르지만 -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구원받은 사람 가운데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안식일이라는 것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안식이 없는 인간이다, 하나님의 안식도 없애 버린 죄 있는 인간이다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을 때에 내 죄를 영원히 도말하셨다 했을 때에 '아 그렇구나. 죄사함을 받았구나' 하면서 쉬는 것이 안식입니다.
안식일과 주일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사도행전 20:7)
안식후 첫날이면 일요일입니다. 요즈음은 일요일을 주말에 포함시키는데 그건 잘못된 거예요. 일, 월, 화, 수, 목, 금, 토 중에 토요일이 끝날이고 일요일이 일주일의 시작입니다. 토요일은 주말이라고 해도 되지만 일요일은 주초입니다. 주의 첫날입니다. 그래서 여기 나오는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입니다. 그 날은 예수님이 부활 하신 날입니다. 예수님이 일요일에 부활하셨잖아요. 여기서 떡을 뗀다는 말은 성찬식을 말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일요일의 예배 의식이 성찬식입니다. 주일마다 성찬식을 했습니다. 예배의식이 성찬식이니까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려고 모였습니다. 예배하려고 모인 것입니다. 주일이라는 말은 주의 날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우리의 생명이 사는 날이예요. 이제는 안식일이 주의 날로 변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절부터 읽어봅시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린도전서 16:1-2)
매 주일 첫날 즉, 일요일에 연보를 모으라. 초대교회들은 일요일에 모의니까 그때 연보를 모았습니다.
로마서 14장 5절과 6절입니다.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로마서 14:5-6)
여기 5절에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긴다는 이 말씀은 구약 시대에 안식일을 지키다가 신약 시대에 일요일, 주일을 지키는 날로 옮겨오면서 문제가 생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고 하고 또 어떤 복음적인 사람은 안식일은 지킬 필요가 없고 주일을 지켜야 된다고 해서 문제가 생긴 겁니다. 그 때에 바울이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율법적으로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가령 우리 나라가 토요일이 공휴일이면 우리는 토요일에 모여도 됩니다. 토요일에 쉴 수 있습니다. 언제 모이는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금요일이 공휴일이면 금요일에 모여도 상관 없어요. 거룩한 날이 특별히 없습니다. 모든 날을 같게 여겨도 상관이 없습니다. 일월화수목금토, 다 똑같은 날입니다. 어떤 날이 특별히 거룩하고 그런 게 없습니다. 다만 아까 말한 대로 안식일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계명 속에 있는 것이며 신약 시대에 와서는 율법을 지키는 생활이 아니니까 특별한 날을 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모든 날이 같고 모든 날이 전부 안식일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이 조금 느슨해질지 모릅니다만 주일날 부득이해서, 안하면 안될 일이 있어서 교회를 빠져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이런 게 있습니다. 주일이 왜 있느냐 하면 하루쯤은 우리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교제를 갖고 찬송 부르고 함께 말씀 듣는 것이 성도 교제의 일부분인데 그 일에 우리 자신들이 드려지는 것이 참 아름다운 일이고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급한 일도 없는데 마음이 게을러져서 교회가 가기 싫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마음이 게으르고 나태해지고 나 혼자 재미있는 곳에 놀러 나가고 싶다는 그것은 문제이지만 날짜를 범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영적인 문제인데 영적인 것이 날짜에 구애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다같이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갈림길이 많고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알기 어려운 이런 시대에 사는 저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게 하시고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아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확신 속에서 살게 하신 것을 생각할 때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어린애들입니다. 좀 더 많은 것을 알면서 젖을 먹어야 하고 우리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들어야 하고 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우리는 아직 모르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인도를 받아야 할 저희들입니다.
주님, 저희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주님의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이렇게 모여서 주님의 말씀을 상고함으로써 저희들 신앙생활에 용기를 얻고 힘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모든 말씀을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요한복음 5장 1절부터 읽겠습니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거기 삼십 팔년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한복음 5:1-18)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과 예수님 사이에 안식일 문제 때문에 충돌이 많았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한다고 언제나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안식일에 대해 공부할까 합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어떤 분이 안식교인들에게 안식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혼동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만나서 그 문제를 해결해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주일이 안식일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가진 분도 있을 것이고 또 안식일에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안식일과 주일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리저리 혼돈되는 일이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먼저 쉬는 자와 나중 쉬는 자
지금 읽은 이 말씀 속에서도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는데 그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금요일 해가 지면 안식일에 들어가고 다음날 해가 질 때까지 안식일이 계속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 주셨는데 안식일을 범했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일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여기 예수님의 이 말씀은 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안식일에 일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우리가 이 내용을 알게 되면 완전히 이해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그런 것을 공부하기 전에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소위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먼저 일을 하고 마지막에 쉰다는 뜻에서 안식일을 지키고 있지만 우리는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쉰다는 것입니다. 주일이 안식일은 아니지만 신약시대에 와서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써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먼저 쉰 사람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을 다하고 쉬는 것과 먼저 쉬는 사람은 일할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은 다릅니다.
먼저 쉬는 사람은 일할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마음이 쉬는 사람, 구원을 받아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마음의 안식을 얻는 사람은 그 안식을 얻은 감사함과 즐거움 때문에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에 대해 조금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엿새 동안 자기 힘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나면 나중에 쉴 수 있다고 믿는데 그런 문제는 율법적인 세계이고 복음적인 세계와는 완전히 뜻이 다른 겁니다. 종교라고 하는 것은 구약의 율법입니다. 사람이 노력을 해서 열심히 일한 결과로 쉰다는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전부 다 그것입니다.
복음의 가르침, 성경의 가르침은 그것이 아니고 마음이 평안하고 마음이 쉬고 마음이 죄에서 해방을 받고 먼저 안식을 얻은 사람은 자기 힘으로가 아닌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차이가 아주 중요한 것인데 안식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33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안식이라는 것은 율법입니다. 십계명 가운데 넷째 계명이 안식일 계명 아닙니까? 율법 속에 안식일이라는 것이 있어요. 그런데 여기 보면 죄를 깨닫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안식일 계명도 율법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계명도 죄를 깨닫게 하시려고 주셨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안식일을 지켜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라는 계명도 분명히 율법이니까,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주신 것이지 안식일을 지켜서 영생을 하거나 안식일을 지키면 복이 온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물론 구약에서는 복 주신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의 내용은 출애굽기 23장 3절부터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8절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8-11)
라고 되어 있습 니다. 안식일을 기억해서 거룩히 지키라고 했습니다.
9절에는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니" 라고 했는데도 사람들은 안식일에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만 생각해요.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할 것이라는 말씀은 생각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라고 했으니 모든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안식할 자격이 없어요. 엿새 동안 힘써 모든 일을 한다는 말이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일을 다 해 버리고 할 일이 없어야 쉴 수 있는 거예요. 일이 남아 있으면 못 쉬는 겁니다. 일이 남아 있는데 어떻게 쉽니까? 이 모든 일을 한다는 말은 일을 끝낸다는 뜻입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쉬어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10절을 봅시다.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완성하시고 쉬신 날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처럼 안식을 해보라는 말입니다.
창세기 2장 1절부터 보겠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세기 2:1-3)
없어진 하나님의 안식
이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왜 쉬셨습니까? 더 할 일이 없어서 쉬신 거잖아요. 일을 다 끝마치셔서 할 일이 없어진 겁니다. 그래서 쉬셨다는 겁니다. 여기에 그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라.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다하셨다. 마쳤다. 또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안식이라는 말의 뜻은 일이 끝났다는 뜻입니다. 일이 끝나서 할게 없다는 뜻이에요. 그게 안식입니다. 그런데 왜 이 계명을 명령하셨는가. 무엇 때문에 이 말씀을 십계명 속에 포함시켜서 안식일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는가. 여러분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안식일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안식일에 성경 찬송가 들고 예배당에 가면 그것을 안식일을 지키는 것인줄 알아요. 그것은 안식이 아니에요. 지금도 사람들이 주일을 안식일 개념으로 지켜요. 주일에 일하지 않고 예배당에 가는 것이 안식하는 것인 줄 알아요. 성경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공장에서 일을 합니다. 일이 태산같이 많아도 안식일이 되면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안식인 줄 알아요. 그건 안식이 아닙니다. 태산같이 많은 일을 놔두고는 안식을 못합니다. 그 일을 완전히 다 끝마쳤으면 할 일이 없으니까 쉴 수 있습니다. 그 뜻입니다. 할 일을 두고는 못 쉬는 거예요. 할 일이 많은데 어떻게 쉽니까?
그래서 출애굽기 23장에 '엿새 동안에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일을 다 끝냈거든, 더할 일이 없이 다 끝냈거든 한번 쉬어보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쉴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걸 해도 또 일이고 저걸 해도 또 일이고 계속 일이 생깁니다. 오늘 못다한 일 내일 하고 또 내일 못다 한 일 글피하고, 인간은 계속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20장의 계명 속에 있는 "네 모든 일" 이라는 말은 단순히 우리의 육체적인 노동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도 물론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뜻은 율법을 다 지키는 사람은 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모든 일입니다. 여러분 중에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면 모든 일이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율법 지키는 생활은 굉장히 수고하는 생활이고 무거운 짐을 지는 생활입니다.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까? 율법은 지킬 수가 없어요. 그래서 율법을 지키는 생활은 수고하는 생활이고 무거운 짐을 지는 생활인 것입니다. 율법을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완전히 지킬 수가 없어요. 안식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요한복음 5장 17절을 다시 한번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시고 일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요한복음 5:19-21)
창세기 2장에는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만드시는 것을 다 마치고 쉬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안식이 깨어졌기 때문에 십계명 속에 안식일 계명이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안식이 없어진 줄 알아요? 아담이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힘써서 하신 그 일은 아담을 위해서 창조하시는 것이었는데 그가 그만 죄를 짓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죽어버렸습니다. 영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육체도 나중에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이 죽어버렸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안식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안식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일을 시작하신 거예요.
21절에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하나님께서 이제는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일을 다시 시작하신 것입니다. 아담만 죽은 것이 아니고 아담의 후손들도 다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안식이 없어져 버렸어요.
안식일 계명이 십계명 속에 있는 이유는 이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안식일 계명이 뭘 깨닫게 합니까? 인간은 타락해버렸다, 인간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안식이 없어져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마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기 때문에 자신도 안식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안식도 없애 버렸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는 사람들, 주일을 안식일 개념으로 지킨다고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한 가지 모르는 점이 바로 이 점입니다. 즉 하나님의 안식이 없어졌다는 것,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일을 다시 시작하셨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쉬시지 못하고 지금까지 일을 하는데 내가 안식일이라고 해서 쉴 수가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 날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거예요.
안식일은 십계명
38년 된 병자가 베데스다 못 가에서 앓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찾아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시니까 그 사람이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그건 분명히 일입니다.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이 일이잖아요. 유대인들은 그런 걸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 날은 안식일인데 자기가 38년 동안이나 깔고 뭉개던 자리를 말아가지고 들고 걸어가는 거예요. 그게 안식일을 범하는 거잖아요.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어디를 걸어가느냐고 바리새인들이 책망을 하니까 그 사람은 "나를 낫게 한 그 분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던데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낫게 해준 분이 예수님인 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나중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은 네가 나았으니 다시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38년 된 병자가 유대인들에게 가서 나를 낫게 하신 그 분은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쳤으니까 일을 한 것이라고 해서 예수님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억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38년 동안 이 병자가 베데스다 못가에서 괴로워하며 끙끙 앓고 있는 동안 안식일 날짜는 계속 지나갔습니다. 안식일에 괴로운 마음이 있어도 아무 일도 안하니까 그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성경을 잘 모르는 종교인들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38년 동안이면 1년에 안식일이 52일 정도 되니 약 2,000번 가까이 되는 그런 안식일이 지나갔지만 38년 된 병자는 날짜만 보냈지 진정 안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38년 된 병자가 안식일을 보냈다고 해서 그것이 안식일을 지킨 것입니까? 38년 된 병자는 안식일에 끙끙 앓고 있었습니다. 그건 안식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안식일에 그를 치료하셨습니다. 갑자기 38년 동안이나 앓고 있던 사람이 힘이 생겨 벌떡 일어나 자리를 들고 기분이 좋아서 갔습니다. 그게 안식이잖아요. 안그렇습니까? 그게 안식이죠. 안식일에 안식을 그에게 주었잖아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걸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병자가 안식일을 범했다는 거예요.
지금 주일을 안식일 개념으로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고 또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날짜에 따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진정한 안식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식으로 안식을 주장하는 안식교는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안식교는 영혼도 믿지 않고 영원한 천국도 믿지 않아요. 안식교와 여호와의 증인이 비슷한데 그들은 육신이 편히 사는 것만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람의 영혼이 영생한다는 것을 안믿습니다. 완전히 이단입니다. 그리고서는 안식일만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거예요. 안식일의 진정한 뜻을 모르는 것입니다.
제가 구원받기 전에 대구신학교에 강사로 나간 적이 있습니다. 나가다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굴을 알던 학생 하나가 어느 날 없어졌습니다. 제가 채플 시간에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를 듣다가 구원을 받고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신학교에 다니는 신학생들이라도 채플 시간이나 예배 시간에 잘 모이지 않습니다. 들을 게 없으니까 잘 안 모입니다.
그런데 제가 구원받고 설교를 하니까 제 채플 시간에는 홀이 미어지도록 학생들이 들어욌습니다. 그 날은 제가 종교에서의 해방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어요. 그 설교를 듣던 학생 하나가 없어져 버린 겁니다. 강의 시간에 그 학생이 안 나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두달쯤 지난 후에 나타났어요. 나타나서 하는 말이 자기가 어느날 채플 시간에 목사님 설교를 듣고 구원을 받고 나니까 신학교 다닐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신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구원받은건 좋았는데 후에 이상한 곳으로 빠져버렸습니다.
그곳이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김포 근방에 최천성 목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안식일을 주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목사는 구원을 받았으면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했는데 이 학생이 그 이야기를 듣고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후 저는 방송국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방송국의 선교사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이었는데 제가 구원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일하자고 제의해서 방송국에 들어가서 방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송국에 근무를 하고 있는데 어느날 그 신학생이 방송국에 찾아왔어요. 그는 아주 강력히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았으면 율법을 지켜야 되고 그러니까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고 강력히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앉혀놓고 설명을 많이 했습니다만 안듣고 막무가내로 가버렸습니다. 한 1년쯤 뒤에 또 찾아왔습니다. 그때는 집에 데려다가 밥을 먹여가면서 안식일의 원리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대로 복음을 전하는 그런 일꾼이 되었지만 나중에는 우리 모임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안식일 때문에 마음이 경직되고 안식일을 지켜야된다고 주장하던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안식일이라는 것은 완전히 율법입니다. 계명 속에 안식일이 있는 이유는 그 계명을 통해서 인간은 안식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안식도 깨어버렸습니다. 그렇잖습니까? 하나님이 엿새 동안 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쉬시는데 인간이 마귀의 말을 들어 죄를 짓고 그 영이 죽어버려 이제 하나님은 그를 살리시는 일을 다시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안식도 없애버린 인간은 쉴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안식일 계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에 일차적으로 안식을 경험합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다 이루었다는 이 말씀을 읽고 구원받은 사람이 꽤 많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이 말이, 창세기 2장에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모든 일을 다 이루시고 마쳤으니까 하나님이 쉬셨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안지으려고 이런 노력을 하고 저런 노력을 하고 또 종교생활을 하며 굉장히 애쓰고 힘씁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안식
일반적으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 바로 종교생활입니다. 새벽기도 열심히 다니는 그것도 종교생활이에요. 새벽기도 다니는 사람 중에 즐겁고 편히 쉬는 마음으로 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벽기도는 옛날 평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옛날 평양에 삼정 현 교회가 있었는데 이 교회의 나이 많은 노인들이 새벽에 깨면 잠도 안오고 하니까 우리 그러지 말고 예배당에 모이자. 그래서 찬송도 하고 성경도 읽고 같이 하자 하며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기도회라기 보다는 노인들이 잠이 안오니까 그렇게라도 하자라고 해서 모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새벽기도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새벽기도회의 출발입니다. 그 전에는 새벽기도도 없었습니다. 전세계 의 어디를 돌아다녀도 한국처럼 새벽기도회를 하는 데는 없어요. 다른 나라에는 없습니다. 한국만 새벽기도회를 해요. 새벽기도에 열심히 나가면 믿음이 좋은 사람같이 생각되고 새벽기도에 안나가면 믿음이 없는 사람같이 생각됩니다. 새벽기도라는 것은 종교생활이예요. 젊은 사람에게는 새벽기도보다 더 고달프고 고민이 되는 일이 없어요.
저는 한 20세쯤부터 39살 구원받을 때까지 약 20년 동안 새벽기도회를 빠져본 일이 없어요. 젊은 사람들에게는 새벽기도라는게 굉장히 힘이 드는데 그걸 해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같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합니다. 그게 신앙생활인 줄 알아요. 그런 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도 아침 일찍 일어나면 혼자서 성경을 읽습니다. 여러분들도 조용히 혼자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보는 것은 주일날이라든지 공식 집회에서나 하고 그것 말고 여러분들이 주님과 일 대 일로 대화하는 것, 성경 읽고 마음에 감동받은 것이 있으면 기도하고 또 마음에 무언가 간절히 소원하는 게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참으로 필요합니다. 조용한 시간, 내가 주님 앞에서 조용히 묵상하고 조용히 말씀 읽고 하는 그 시간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새벽기도회 하지 말고 시간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그런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야 됩니다. 새벽기도회가 그리스도인들을 병들게 만듭니다. 조용히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생각하면서 반성도 할 수 있는 개인적인 시간을 가져야 되는데 이런 것을 다 없애버리는 겁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아요? 우리가 율법을 지켜야 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하는데 내가 해야 할 일을 예수님이 대신 다 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다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할 일이 없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깨닫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많아요.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걸 가지고 괜히 내가 애를 썼구나 하면서 마음이 쉼을 얻으면 그것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안식이잖아요. 내가 하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을 멈춘다는 말입니다. 저는 구원받기 전에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새벽기도 안나가는 날이 없었습니다. 목사가 새벽기도회에 다른 교인들보다 늦게 나가면 안되니까 다른 교인들보다 일찍 나가 강단 앞에 엎드려서 울고불고 기도하고 눈물을 안 흘린 날이 없어요. 매일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예수 믿는 생활이 얼마나 고달픈지 모릅니다. 목사 생활할 때 제일 힘들었던 게 새벽기도입니다. 그렇게 싫으면서도 목사니까 안 할 수 없는 거예요. 새벽기도 해야지, 심방해야지, 누구 어려운 일 당하면 일일이 찾아보고 도와주고 해야지, 옷 벗어 구제도 많이 하고 할 것 다 해보았습니다.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할수록 마음은 불안하고 항상 삯군이며 위선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노력이잖아요. 그것이 종교생활입니다. 피나는 노력을 해도 마음은 언제나 불안해요. 양심은 항상 괴로워요.
그러다가 어느날 제가 구원을 받았는데 율법에서 해방이라는 말씀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내 대신 다 이루어 버리셨으니까. 예수님이 내가 지켜야 할 율법, 내가 행해야 할 모든 걸 다 해 놔 버리신 거예요. 이미 다 되어 있는 건데 내가 왜 그렇게 노력하고 애썼던가. 거기에서 구원이 오고 일차적으로 양심의 안식이 옵니다.
그러고 난 다음 그 안식을 또 한 번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신앙생활이 아주 쉽게 됩니다. 구원을 받았으니까 주님 말씀대로 살고 남을 사랑하는 생활 속으로 들어가면 또 굉장히 힘이 들게 됩니다.
제 안사람은 제가 구원받은 후 열 달 뒤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 안사람은 열 달 뒤에 구원받고 그로부터 4년째 되던 해에 제가 방송국으로 발령을 받고 인천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방송국이 처음에는 인천에 있었는데 나중에 서울로 옮겼어요. 그래서 인천에서 서울로 통근을 하는데 그 당시 제 안사람은 굉장히 피곤해 하며 계단 하나도 못 내려가겠다며 힘겨워 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해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집으로 돌아가니까 완전히 달라져서 펄펄 뛰면서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혼자 집에 있으면서 성경을 읽다가 무엇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으니까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하는데 아무리 사랑을 하려고 해도 안돼 지쳐 있었는데 어느날 인간은 사랑할 수 없고 주님이 사랑하신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거지 인간이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성경 말씀에서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걸 깨닫고 나자 그 다음에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그것 이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안식을 얻는 문제입니다.
자기 일을 쉬는 것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히브리서 4:10)
창세기 2장에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처럼 자기 일을 쉰다는 겁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자기 일을 안하는 것이 신앙생활이에요. 자기 일을 쉬어버리는 것. 조금 어렵지요. 여러분에게는 아직 어렵습니다. 자기 일, 내가 할 일은 다 끝나버렸기 때문에 자기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쉬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전부가 자기 일을 합니다. 그건 진정한 신앙생활이 아니에요. 자기 일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전부 자기 일에 매어 달려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자기 일이라는 말은 집의 부엌 일이라든지 사업이라든지 그 일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해야지요. 주부는 살림하고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하고. 자기 일이라는 말은 도덕적인 생활, 영적인 생활, 내 행위를 앞세워서 내가 열심히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생활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1절부터 3절까지를 읽겠습니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갈라디아서 4:1-3)
종 노릇한다는 게 뭔지 알아요? 예수 믿는다고 신앙생활하는 것이 전부 종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새벽기도 열심히 다니다가 하루 빠지면 '내가 오늘 새벽기도 빠졌구나' 하고 불안해 합니다. 그게 종입니다. 안 하면 마음이 불안하고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그게 전부 다 종 노릇입니다. 기독교인의 90퍼센트 이상이 종노릇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면 안심이 되고 안하면 마음이 불안한 이 모든 것들은 종 노릇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습니까? 아들과 아버지의 사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걸어가야 할 진정한 신앙생활은 자기 일에서 해방받는 생활입니다. 그때 진정한 신앙생활이 있어요. 그러면 신앙생활이 참 편안해지는데 그것이 안식입니다.
안식은 두 가지인데 첫째, 구원받으면 영혼이 안식을 얻는 것, 둘째, 자기 일을 쉬어버리면 신앙생활이 쉬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고 성령의 힘으로 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쉽습니다. 그게 진정한 신앙생활이에요.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일반적으로 기독교가 이 사실을 - 물론 구원에 대해서도 모르지만 -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구원받은 사람 가운데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안식일이라는 것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안식이 없는 인간이다, 하나님의 안식도 없애 버린 죄 있는 인간이다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을 때에 내 죄를 영원히 도말하셨다 했을 때에 '아 그렇구나. 죄사함을 받았구나' 하면서 쉬는 것이 안식입니다.
안식일과 주일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사도행전 20:7)
안식후 첫날이면 일요일입니다. 요즈음은 일요일을 주말에 포함시키는데 그건 잘못된 거예요. 일, 월, 화, 수, 목, 금, 토 중에 토요일이 끝날이고 일요일이 일주일의 시작입니다. 토요일은 주말이라고 해도 되지만 일요일은 주초입니다. 주의 첫날입니다. 그래서 여기 나오는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입니다. 그 날은 예수님이 부활 하신 날입니다. 예수님이 일요일에 부활하셨잖아요. 여기서 떡을 뗀다는 말은 성찬식을 말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일요일의 예배 의식이 성찬식입니다. 주일마다 성찬식을 했습니다. 예배의식이 성찬식이니까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려고 모였습니다. 예배하려고 모인 것입니다. 주일이라는 말은 주의 날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우리의 생명이 사는 날이예요. 이제는 안식일이 주의 날로 변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절부터 읽어봅시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린도전서 16:1-2)
매 주일 첫날 즉, 일요일에 연보를 모으라. 초대교회들은 일요일에 모의니까 그때 연보를 모았습니다.
로마서 14장 5절과 6절입니다.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로마서 14:5-6)
여기 5절에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긴다는 이 말씀은 구약 시대에 안식일을 지키다가 신약 시대에 일요일, 주일을 지키는 날로 옮겨오면서 문제가 생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고 하고 또 어떤 복음적인 사람은 안식일은 지킬 필요가 없고 주일을 지켜야 된다고 해서 문제가 생긴 겁니다. 그 때에 바울이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율법적으로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가령 우리 나라가 토요일이 공휴일이면 우리는 토요일에 모여도 됩니다. 토요일에 쉴 수 있습니다. 언제 모이는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금요일이 공휴일이면 금요일에 모여도 상관 없어요. 거룩한 날이 특별히 없습니다. 모든 날을 같게 여겨도 상관이 없습니다. 일월화수목금토, 다 똑같은 날입니다. 어떤 날이 특별히 거룩하고 그런 게 없습니다. 다만 아까 말한 대로 안식일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계명 속에 있는 것이며 신약 시대에 와서는 율법을 지키는 생활이 아니니까 특별한 날을 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모든 날이 같고 모든 날이 전부 안식일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이 조금 느슨해질지 모릅니다만 주일날 부득이해서, 안하면 안될 일이 있어서 교회를 빠져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이런 게 있습니다. 주일이 왜 있느냐 하면 하루쯤은 우리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교제를 갖고 찬송 부르고 함께 말씀 듣는 것이 성도 교제의 일부분인데 그 일에 우리 자신들이 드려지는 것이 참 아름다운 일이고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급한 일도 없는데 마음이 게을러져서 교회가 가기 싫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마음이 게으르고 나태해지고 나 혼자 재미있는 곳에 놀러 나가고 싶다는 그것은 문제이지만 날짜를 범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영적인 문제인데 영적인 것이 날짜에 구애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다같이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갈림길이 많고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알기 어려운 이런 시대에 사는 저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게 하시고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아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확신 속에서 살게 하신 것을 생각할 때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어린애들입니다. 좀 더 많은 것을 알면서 젖을 먹어야 하고 우리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들어야 하고 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우리는 아직 모르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인도를 받아야 할 저희들입니다.
주님, 저희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주님의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이렇게 모여서 주님의 말씀을 상고함으로써 저희들 신앙생활에 용기를 얻고 힘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모든 말씀을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