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베드로전서 3:21)
거듭나지 못한 목사생활
오늘은 침례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저의 과거 경험을 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구원받기 전에도 대구의 칠성교회라는 한 장로교회에서 목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날 칠성교회에서 일년에 한번씩 하는 부흥를 하게 됐습니다. 부흥회를 하려고 하니까 목사들은 다 위선자 같아 보였습니다. 강사를 청하면 사례금이나 탐내는 것 같고 진정으로 설교를 성경대로, 양심적으로 해줄 수 있는 목사들이 눈에 안보였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알던 유명한 장로 한 분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김인서 장로라고 이북에서 오신 나이가 좀 많은 분인데 성경을 굉장히 많이 알고 나중에 목사가 된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성경적으로 머리가 열려 있었습니다. 그분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우리가 부흥회를 하려고 하는데 강사로 오실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답장이 오긴 왔는데 사례금을 얼마를 주면 가겠습니다 하고 흥정하는 편지가 왔습니다. 그 편지를 받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게 그분의 솔직한 심정인데 나는 이거 완전히 삯군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고 당신 같은 사람은 영원히 강사로 초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장을 해 보냈습니다.
계속해서 강사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네덜란드에서 오신 케이스 크라스라는 선교사가 아주 설교를 잘 한다고 소개를 했습니다. 한 번 초청해서 설교를 들어보기로 하고 교섭을 해서 부흥회를 시작했습니다. 그 선교사의 한국 이름은 길기수였습니다.
그 선교사가 와서 설교를 하는데 첫날부터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 설교를 하는데 설교를 들어보니까 뭔지 모르지만 마음이 가벼워지고 굉장히 좋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당장에 깨달을 수는 없었습니다.
금요일 날 낮 성경공부 시간이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다가 길기수 선교사가 탁자를 '탁' 치면서 여러분 거듭났습니까 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데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목사라는 사람이 가슴이 철렁한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에 조직신학이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조직적으로 꾸며 놓은 학문입니다. 거기에 보면 사람은 거듭났기 때문에 믿는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적으로는 그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거듭났기 때문에 믿는다는 말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거듭난 날부터 진짜 믿음을 가지거든요. 진짜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니까 거듭났기 때문에 믿는다는 말이 맞는데 그때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조직신학을 배울 때 거듭났기 때문에 믿는다, 내가 그냥 머리로 믿고 있는 이 믿음이 진짜 믿음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조직신학에서는 거듭난 것은 자기가 모른다고 가르칩니다. 박영용 박사의 조직신학인데 거듭났기 때문에 믿고 거듭난 것은 자기가 모른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저도 거듭났다고 믿고 있었는데 거듭났느냐고 외치며 탁자를 때리는데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저는 거듭났다고 생각했는데 그 질문에 '예' 하고 자신 있게 답변이 안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집회 마치자마자 선교사를 좀 만나자고 해서 사택 방에서 단 둘이 대면을 했습니다. 거듭났느냐고 질문했는데 저는 자신있게 '예' 하고 답변이 안나옵니다. 그건 왜 그렇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 선교사가 "참 이상합니다. 내가 한국에 와서 이런 집회도 많이 해봤는데 내가 제일 무서운 사람들은 목사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목사하고 둘이 마주앉으면 통하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벽을 향해서 말하는 것처럼 통하지 않는다고 해요. 목사들이 거듭남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권 목사님은 잘 통하는데 왜 그럽니까" 라고 합니다.
저는 당시 교회의 부패성이라든지 교회가 잘못되어 가는 그런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누구를 만나면 교회의 잘못된 점을 얘기하고 돈밖에 모르는 목사들의 얘기를 했습니다. 거듭나지는 못했지만 비판력이 있어서 항상 만나는 사람한테 그런 얘기를 한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선교사가 저를 거듭났다고 인정한 모양이에요. "권 목사는 참 잘 통하고 좋은데 무슨 의심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니, 의심은 없습니다. 성경을 백퍼센트 믿습니다. 지금 죽어도 천당 갈 자신이 있습니다" 라고 했더니 그 선교사가 말하기를 "그럼 됐지요, 성경을 백퍼센트 믿고, 죽으면 천 당 갈자신 있으면 됐지요." 라고 했습니다.
참 이상했습니다. 됐다고 하기는 하는데 이 옆구리에 뭐가 하나 아직도 붙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되었다고 하니까 된 줄 알았습니다. 된 줄 알고 지나갔죠. 그렇지만 그때 마음 속에 결심한 게 한 가지 있었습니다. 나도 저 선교사와 같이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 설교를 하자고 결심을 한 겁니다. 그때부터 주일마다 비록 거듭나지는 못했지만 목사이니까 어느 정도 복음설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한 이유 중에는 일본의 우치무라 간조라는 분의 영향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 사람은 무교회주의자이면서 현실교회에 대해서 아주 신랄하고 날카롭게 비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책을 읽으면 사상이 살아나고 비판력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날카로운 비판조의 설교를 하니까 공부도 많이 못한 사람이었지만 제 설교는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쓴 책 가운데 구안록이라는 책이 있는데 구원받은 체험을 쓴 책입니다. 그걸 몇 번 읽었어도 제가 거듭나지 못했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길 선교사의 부흥회가 있은 뒤 삼주일 후 토요일날 설교준비를 하려고 앉았습니다. '복음 설교를 해야 되는데'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대학 노트에다 설교할 내용을 8페이지나 10페이지 정도 썼습니다. 그걸 기술적으로 잘 읽는 게 설교입니다. 원고를 보면서도 안 보는 것처럼 어떻게 잘 읽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렇게 설교 준비를 하다 보니까 설교 내용을 몽땅 다 기록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을 쓰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설교의 제목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였습니다.
전체 내용을 1장, 2장, 3장으로 나누는데 1장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쓰고 이것을 생각해 보니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항상 성경을 겉읽고 그냥 건너뛰어가는 습관이 있었는데, 1장하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쓰고 생각해 보니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것을 연구하는데 로마서 3장 21절에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라는 말씀과 죽 연결이 돼요. 우치무라 간조의 로마서 강해를 참고하면서 연구를 충분히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로마서 3장 21절이 마음 속에 확 풀려버렸어요. 풀린 것이 뭐냐 하면 율법에서 해방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그 '이제는' 은 곧, 지금 입니다. 20절에 보면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아, 그렇구나. 율법은 지키라고 준 것이 아니고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이제 이걸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마음에 열려버린 것이 있었습니다.
이제 율법에서 해방을 받았으면 율법이 없으니까 죄를 마음껏 지어도 괜찮단 말이냐. 우치무라 간조의 로마서 강해 속에 그런 질문이 나와요. 질문이 나오면서 이어서 대답이 나옵니다. 그렇지 않다. 지금은 율법이 없어도 성령이 오셔서 성령이 그 마음을 인도해 가시니까 죄를 함부로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게 구원이라는 것이에요. 그 말을 할 때 내 마음이 확 풀려버렸습니다.
저는 그전까지 그 무시무시한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며 살았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율법사가 와서 예수님께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하고 묻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 아버지는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 같이는 못하셔도 그 비슷한 생활을 하셨는데 저는 그걸 보며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살아가시는 삶을 보았기 때문에 목사가 된 이후로 나도 그런 식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거지를 방에 불러 들여 같이 주무시기도 하신 분입니다.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일이 많았습니다.
6. 25 동란 때 함경도 쪽에서 피난오는 사람들은 우리 집 근처를 지나다가 전부 우리 집에 들렸습니다. 어떤 피난민들은 사랑방에서 한 달 동안 그냥 먹고 지내고 또 어떤 피난민들은 남의 집 방을 빌려가지고 생활하는데 아버지는 남의 쌀독을 뒤져보고 쌀이 없으면 온 군데를 다니며 쌀을 거둬가지고 그 집에 몰래 갔다주기도 하던 분이었습니다. 저희 부친이 그런 식으로 사셨기 때문에 저는 어린 시절부터 예수 믿는 생활이란 것은 저런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구원은 못받았으면서도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는 그 말씀대로 철저하게 생활했는데 안되니까 내가 위선자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항상 괴롭고 이 위선자, 이 거짓 선지자 하면서 저 자신을 학대했습니다. 그것이 전부 율법 지키는 생활이었습니다. 저는 그 무시무시한 율법을 짊어지고 10년을 목사생활을 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율법에서 해방이 된 겁니다.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얼마나 마음 속에 감사한 마음이 복받쳐오르는지 그것을 설교 노트에 한 반쯤 썼습니다.
그리고 끝맺음을 해야 되는데 더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에 감격이 복받쳐 오르면서 도저히 앉아서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내 죄 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 뒤' 라는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는데 끝없이 불렀습니다. 불러도 불러도 또 부르고 싶었습니다. 오후 2시쯤에 시작해서 캄캄한 밤 7시쯤까지 불렀습니다. 혼자서 막 불렀습니다. 그때는 아래 위 두 채인 사택에 있을 때입니다. 그중 안채에 있던 식구들이 몰려와 문을 열고 들어 왔습니다. 우리 딸 아이가 "아버지 돌았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 내가 돌았든지 네가 돌았든지 둘 중에 하나는 돌았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모든 죄인들은 하나님을 등지고 돌았는데 하나님 앞으로 다시 돌아야 됩니다. "이제 너도 이걸 알아야 할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선교사들과의 교제
그래도 그것이 구원인지 , 거듭난 것인지 몰랐습니다. 나도 처음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나서 그 다음날 설교를 했습니다. 반 정도 준비된 설교 원고를 가지고 그냥 막 소리치고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여러분 이걸 알아야 된다고 설교를 했습니다. 교인들이 쳐다보고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대구에 가면 이상헌 박사가 시무하는 제일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에서 저에게 저녁 설교를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처음 이상헌 박사가 있는 교회에서 저녁 설교를 잠깐 했습니다. 큰소리치면서 열변을 토했는데 나중에 후문을 들으니까 피아노를 치던 피아니스트와 모두 세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한 달 후에 길기수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제가 경험한 얘기를 하니까
"그것이 바로 거듭나는 겁니다. 그게 바로 구원받은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게 구원인 줄 알았습니다. 제가 구원받은 날은 1961년 11월 18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구원받은 후에 집에 가만히 있으려니까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 한 권만 가지고 역전에 갔습니다. 그 때가 5. 16혁명 계엄령 당시였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있길래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십시오. 안 믿으면 지옥갑니다.' 마구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들은 별 사람 다 있다는 식으로 절 쳐다 보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열이 올라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큰 시장이나 사람들 많이 모인 데 가서 소리치고 제가 사는 집 주변을 돌아가며 집집마다 전도지를 돌렸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쓴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됐느냐' 라는 전도지를 접어가지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한 집도 빠뜨리지 않고 다 뿌렸고 그 다음에는 핸드 마이크를 빌려서 길거리를 다니면서 소리쳤습니다.
대구에 가면 달성공원이 있는데 그곳에 들어가니까 앞에다 큰 종이를 펴 놓고 앉아서 사람들 관상 봐주고 점쳐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걸 보니까 얼마나 속이 상하는지 그 옆에 서서 마이크를 대고 예수 믿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해도 한 사람도 구원을 못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마음에 복받쳐오르는 것을 억제할 길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걸 발산해야 될지,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랐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니까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한 겁니다. 그러다가 집에 손님이 오면 그땐 참 기분이 좋은 날입니다. 그 손님을 붙들고 얘기하는 겁니다. 누가 집에 찾아오면 안사람과 딸이 "오늘도 아버지 일거리 생겼다"라고 했습니다. 목사가 찾아오면 붙들고 얘기했습니다.
한번은 길거리를 지나다가 친구 목사 하나를 만났는데 길거리에 세워 놓고 3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이 사람은 제가 자꾸 얘기를 하니까 차마 떨쳐버릴 수 없어서 들었습니다. 친한 친구이고 목사인데 나중에는 그 사람이 나를 보면 도망쳤습니다. 그런 법석을 떨면서 지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한국인 목사로서 구원받은 사람은 나 하나였고 그 다음에 선교사 중에 구원받은 사람이 몇 사람 있었습니다. 딕 요크라는 미국 선교사가 있었고 길 선교사와 또 영국에서 온 선교사가 한 명, 미국 선교사가 또 한 명 있었는데 이 네 사람이 힘을 합쳐서 YMCA에서 토요일 저녁마다 집회를 했습니다. 강당을 빌려서 매주 토요일마다 집회를 했는데 저는 갓 구원받아서 설교할 자격도 없는데 하루 저녁은 저에게 설교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했습니다. 무슨 설교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무슨 설교를 했습니다.
저는 길 선교사의 선교단과 합쳐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교제를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구원받은 이후부터 교회의 일은 다 걷어치워 버렸습니다. 매일 다니던 심방도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그 사람들을 만나는 게 일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루라도 그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만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볼 일을 보고 나면 또 그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서 성경 얘기하고 이런 것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것이 교제인 겁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다
그러던 중에 신학교에서 강사를 좀 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신앙이나 삶에 대한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고 설교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모르는 판에 어떻게 신학교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미국에서 온 딕 요크라는 선교사에게 강의를 맡는 게 좋을지 어떨지 물었습니다. 그는 맡으라고 했습니다. 제가 가르칠 것도 없는데 뭘 가르치냐고 하니까 자기가 협력을 해 주겠으니 그냥 맡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강사로 가기 위해서 말하자면 개인 교습을 받았습니다. 제가 맡은 과목이 성경 과목인데 그 과목을 가르치기 전에 미리 딕 요크한테 가서 성경 얘기를 듣고 가르친 겁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귀가 쫑긋하고 제가 들어가면 눈이 반짝반짝하면서 얘기를 아주 잘 들었습니다 제가 아직 미숙하기는 했지만 제가 가르치는 방법이 다른 교수하고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저의 강의 시간에는 학생들이 잘 모였습니다.
채플 시간은 전체가 모이는 예배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신학생들이 잘 빠집니다. 목사들이 와서 하는 소리가 맨날 같으니 신학생들은 다른 데로 가버리고 잘 안모입니다. 그런데 제가 채플 시간을 맡았다고 하면 많이 모였습니다. 어느날 채플 시간에 들어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전교생이 모였는데 제가 평소에 잘 아는 2학년 학생 하나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 날 종교에서 해방이라는 설교를 끝냈는데 그 다음날 그 학생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어디를 가버리고 강의 시간에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학교 측에서 서서히 저에 대해서 문제를 삼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학기말 시험을 치게 됐는데 학기말 시험 전에 제가 교파에서 제명되었습니다. 제명된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도 그만 두게 되었고 강사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권 목사가 학기말 시험을 맡게 해 달라, 절대로 권 목사 과목은 다른 목사가 시험 문제를 못낸다. 교습 방법이 완전히 다르니까 권 목사가 시험 출제를 하게 해달라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허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 두 달인가 석 달인가 지난 다음 제가 따로 조그맣게 사람들을 모아가지고 설교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거기에 사라졌던 학생이 아주 이상한 모습으로 찾아왔어요. 청년 한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 그 청년의 등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크게 써붙여 입히고 또 무슨 깃대를 하나 든 그런 청년을 같이 데리고 왔어요. 길거리에서 전도를 하려고 한 겁니다. 그 깃대를 흔들면서 전도를 하는 거예요. 그 학생은 종교에서 해방이라는 설교를 하던 채플 시간에 구원을 받았어요. 구원을 받고 나니 뛸 듯이 기뻤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제는 신학교가 필요없다고 단정해버리고 그때부터 신학교는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식교 비슷한 교회로 빠져버렸습니다. 거기서 침례를 받고 방언도 배운 것이었습니다.
제가 시무하는 칠성교회에서 오후에 성경강좌를 열었습니다. 딕 요크 선교사가 중심이 되어 성경강연회를 열었는데 그때부터 구원받는 사람들의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 안 받은 사람 할 것 없이 오후가 되면 칠성교회에 상당한 사람이 모여서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성경 공부가 계속되고 그 모임이 계속됐으면 교회로서 상당히 건전하게 출발했을 텐데 교회에서 장로들이 반대하고 그들의 추종자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딴 데로 옮겨 성경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때 구원받은 사람이 생겨나고 건전한 교제가 형성되고 또 건전하게 하나님 말씀이 전해지는 이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침례에 담긴 구원의 의미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복음 3:22-23)
여기 씻을 세(洗) 자, 예절 례(禮) 자를 써서 세례를 씻는 예식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번역이 잘못 되었습니다. 성경이 영어나 독일어로 번역되기 전에 천주교회가 라틴어로 된 성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반인이 읽을 수 있는 영어, 독일어로 번역이 되었는데 번역할 그때는 벌써 약식 세례가 습관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로 번역했습니다.
요한이 이 복음을 쓸 때에는 헬라어 , 그리스 말이 통용되었는데 침례라는, 물에 첨벙 잠긴 다는 뜻의 '뱁티스마' 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장례식 때 시체를 물 속에다가 빠트려버리는 것을 뱁티스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침례가 맞는 말입니다. 영어로 번역할 때에는 이미 약식 세례가 습관이 되어 있는 상태여서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물을 뿌리는 세례를 주장하는 쪽과 물 속에 잠그는 침례를 주장하는 편에서 서로 팽팽하게 맞서다가 그럼 헬라어 그대로 쓰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뱁티즘' 이라고 기록했습니다.
23절에 보면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침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라고 했습니다. 물들이 많은 곳에 가서 침례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만일 약식 세례도 괜찮다고 하면 물 한 그릇만 있으면 세례를 줄 수 있습니다. 장로교나 감리교에서는 물에 손가락을 찍어가지고 머리에다 뿌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면 물 한 그릇도 필요 없고 조금만 있으면 되는데 왜 살렘 가까운 에논에서 침례를 주었고 거기에 물들이 많음이라고 했습니까? 본래 성경적으로 보면 침례가 침례이지 약식 세례는 틀린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마태복음 3:16)
예수님이 물에서 올라오셨다는 말은 물 속에 들어가셨다가 올라 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침례를 받으셨지 약식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침례를 받으신 겁니다. 예수님도 육신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침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물 속에 들어가시는 것은 예수님이 장차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장례한다는 뜻입니다. 물에서 올라오셨다는 것은 부활하실 것을 말합니다. 죽어 장례 지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는데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물에서 올라오셨다고 한 겁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태복음 3:16)
그 다음 성령이 내렸다 하는 것은 예수님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 성경 한 곳 읽어보겠습니다.
"길 가다 물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사도행전 8: 6)
"빌립이 가로되 네가 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으면 가하니라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들인줄 믿노라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사도행전 8:37-39)
여기도 보면 사람들이 침례를 받았습니다. 분명히 침례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도 침례를 받으셨고 이디오피아의 내시도 예루살렘에 왔다가 빌립의 전도를 듣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침례를 없애버리고 물방울을 튀기는 약식 세례를 심어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진짜 내용이 완전히 감추어져 버렸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고 또 루터 당시에 장로교의 설립자 요한 칼빈도 한 시대에 움직였습니다. 그 외에 여러 사람들이 종교개혁에 참여했는데 그들은 구원을 받았지만 침례는 받지 않고 약식 세례를 그대로 행했기 때문에 구원받는 역사가 빨리 사라지고 시들어지게 되었고 성경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적당하게 편리한 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상이 만연되었습니다.
약식 세례는 인간의 방법대로 편리하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분명히 침례는 예수님도 받으셨고 또 거기에는 굉장히 중요한 뜻이 있는데 그런 뜻을 다 제해버리고 인간의 편리한 방법 대로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오순절에 성령이 임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한꺼번에 3,000명이 생겼는데 그 3,000명을 어떻게 다 침례를 했느냐,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건 어리석은 소리입니다. 우리 모임은 항상 수양회 때 한꺼번에 침례식을 하는데 제일 많이 했을 때가 4,300명이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침례 때문에 핍박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천주교 계통에서는 약식 세례를 받고 루터 계통의 교회는 프로테스탄트인데 약식 세례를 하고 장로교도 약식 세례를 했는데 침례를 고집하는 계통이 있었어요. 그 계통이 재침례파인데 그 사람들은 약식 세례를 다 받았지만 복음을 깨닫고 구원을 받으면 반드시 침례를 다시 받습니다. 그들을 재침례파라고 하는데 지금 현재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천주교를 믿던 사람이든 장로교를 믿던 사람이든 다른 교회에 다니던 사람이든 약식 세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구원받으면 새로 침례를 받습니다.
저는 약식 세례를 두 번 받았고 그 다음에 침례를 한 번 받았습니다. 제 부친이 장로여서 저는 유아 때 유아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기를 낳으면 얼마 후에 예배당에 나가서 목사로부터 아기 머리에 물을 끼얹는 것을 유아 세례라고 합니다. 제가 유아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자라서 공부한다고 부산에 가서 일본 사람들의 교회에 다녔습니다. 일본의 고베신학교에 가볼까 생각하고 일본 교회를 다녔는데 성결교회였습니다.
목사가 그때 저를 보고 세례를 받았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유아 세례를 받았다' 고 했습니다. 보편적으로 유아 세례를 받은 것을 굉장히 자랑으로 생각할 때였습니다.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유아 세례를 받는 것은 상당한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본 목사가 어린 아이 때, 아무것도 모를 때 받았던 것은 소용이 없다고 하면서 다시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또 시험을 보아서 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아직 구원도 모를 때였습니다. 그후 구원을 받고 나서 침례를 다시 받았는데 사실 우리 교회가 출발하는 그 시점에서 침례가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받은 침례
제가 침례를 안 받고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침례를 받지 않았으면 우리 교회는 시작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침례 때문에 출발이 된 겁니다. 제가 구원을 받고 나니까 마음 속에 제일 첫 번째로 걸리는 것이 유아 세례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성경에 비추어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아기가 내게 오는 것을 금치 말라고 축복은 하셨지만 어린아이에게 침례를 주라든지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신 곳도 없고 또 준 곳도 없습니다. 성경에 아무리 찾아봐도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기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무의식적인 상태에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 물을 가지고 머리에 얹으면서 세례를 주는 그 의식이 마치 무슨 거룩한 뜻이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완전히 형식일 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의식을 너무 중요시하다보니까 지금까지도 그것이 아주 중요한 것처럼 전해내려온 것입니다.
제가 구원을 받고 나니 유아 세례를 준다는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유아 세례는 성경과 맞지 않는데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했지만 명색이 장로교 목사니까 계속해서 유아 세례도 주고 유아 세례 주는 날 어른에게도 약식 세례를 주곤 했습니다. 구원 받은 후 두번째로 세례식을 치르는 날이 되었습니다.
첫 세례식은 그렇게 치루었는데 두번째 약식 세례와 유아 세례를 주려고 하니 양심에 굉장히 거리꼈습니다. 교파의 법으로는 맞지만 성경적으로는 안맞는데, 성경에는 이런 것이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드니까 양심이 굉장히 거리꼈습니다. 하지만 내가 장로교 안에 있고 장로교 법대로 사는 사람이니까 할 수 없이 물을 찍어 손이 잘 안나가지만 억지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 일이 세 번까지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양심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긴 했는데 그때부터 마음 속에 싸움이 생기는 겁니다.
성경하고 안맞는데 성경과 맞지 않는 일을 내가 왜 하느냐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결국은 이 문제가 제가 먹고 사는 문제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장로교 목사로서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었습니다. 약식 세례도 안주고 유아 세례도 안주면 장로교 목사 노릇을 할 수 없는 겁니다. 장로교에서 쫓겨나든지 사표를 내고 나오든지 해야 하는데 그러면 저는 굶어죽는 것입니다. 재산이 하나도 없고 또 저축해 놓은 것도 없는데 가족은 딸 하나에 아들 다섯 모두 여덟이나 되었습니다. 여덟 식구나 되는데 먹고 살 길이 없는 거예요. 교파에서 나가면 다른 데 발붙일 곳이 없는 거예요. 먹고 사는 것도 어렵고 설교할 데도 없고 집도 없고 땅도 없고 돈도 없는 빈털터리였습니다. 아이들은 막 자라나고 공부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할 수 없이 약식 세례를 주고 유아 세례를 주는 일을 세 번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구원받은 미국 선교사 몇 사람과 대구 수성못 근처의 조그마한 산 속 기도원을 빌려서 일주일 동안 집회를 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우리 안사람과 딸은 구원을 못받았었는데 그 집 회에 가서 안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가 구원을 받은 이후 저의 안사람을 굉장히 괴롭혔습니다. 밥상에 같이 앉으면 구원도 못받은 사람이 밥을 먹어서 뭐하느냐고 자꾸 공격을 했고 그러면 안사람은 화를 내면서 내 구원은 내가 할테니까 당신이 관계하지 말라고 하고 나도 하나님 믿고 당신도 믿는데 당신만 천당가냐고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하여튼 앉기만 하면 저는 안사람을 공격하고 구원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목사로 구원을 받아도 구원을 갓받은 상태여서 어떻게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주일이 되면 설교 했지만 괴로워 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게 하는지 전혀 모르는 때였습니다. 그때가 제가 구원받은 지 한 열 달쯤 됐을 때인데 그때는 구원받은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 열 달 동안 저의 안사람이 많은 고생을 하다가 바로 그 해 대구의 주암산 수양회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하루에 세 번씩 모였는데 새벽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집회를 했습니다. 어느날 새벽에 선교사 한 사람이 설교를 했습니다. 창세기 22장, 아브라함이 이삭 바치는 설교였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창세기 22:1-13)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바치는 이 사건은 상당히 차원 높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딕 요크라는 미국 선교사가 이 성경을 읽고 설교를 했습니다. 옛날에는 이방 사람들이 아들을 잡아 신에게 바치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일이 더러 있었습니다. 처녀를 신에게 바친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주로 짐승을 잡아 불살라 바치는 번제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얼마나 믿음이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서 아들을 잡아 바치라고 했던 겁니다. 설교자가 이 말씀을 아주 상세히 설명을 하는데 그 설명을 가만히 들으면서 저의 마음 속에는 굉장한 괴로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치라고 했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아들도 바쳤는데 나는 어떤가 생각했습니다.
예수님도 침례를 받으셨고 침례를 받는 것이 주님의 명령인데 내가 왜 그 침례를 하나님 말씀대로 못하는가. 결국은 내가 다시 위선자가 되었구나, 구원 받기 전에도 위선자라는 것 때문에 마음의 고통이 심했는데 다시 내가 위선자가 되었구나. 먹고 살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송스럽고 부끄러운지 그 설교를 마치고 나서 책상 한 구석에서 굉장히 많이 울었습니다. 울면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만일 침례를 받고 또 침례를 주게 되면 이 장로교에서 쫓겨날 것이고 장로교에서 쫓겨나면 돈도 없고 직장도 없고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굶어죽을 터인데 그래도 하나님, 하나님이 저를 굶어 죽이신다면 굶어 죽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맹세를 했습니다. 굶어 죽을 작정하고 침례를 받고 '앞으로 침례를 줄 것입니다' 하고 하나님 앞게 맹세를 했습니다.
그때 그 맹세는 물론 성령의 어떤 감동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성령의 맹세라고는 할 수가 없었어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런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네덜란드에서 온 길기수 선교사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 선교사 때문에 구원을 알게 되었고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까 우리 부부에게 침례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대구 동촌강에서 어느날 침례를 받았습니다. 침례를 받고 이것을 비밀히 숨기는 것은 비겁한 일이니 이것을 교회에 전부 알려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장로교회는 당회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장로들과 목사로 구성되었고 그 교회의 모든 문제를 결정짓는 최고의 기관입니다. 제가 있던 대구 칠성교회는 장로가 일곱이 있었습니다. 장로 일곱을 전부 다 불러 모았습니다. 모아놓고서 저는 침례를 받았고 앞으로 침례를 줄 것이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장로들의 얼굴빛이 변했습니다. 이것은 장로교 법을 어긴 것이었습니다. 교인들 가운데는 저를 따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큰일이 난 것입니다.
종교재판
그런 일이 생긴 뒤 어느날 노회에서 저를 불렀습니다. 장로교 내에서 제일 위에 총회가 있고 그 다음 지방에 노회라는 게 있는데 경상북도 내에도 여러 군데 노회가 있습니다. 노회에서 노회장 이름으로 제게 통지가 왔습니다. 어느날 재판을 할 테니까 참여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를 재판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재판 통지서를 받고 나니 이상하게 무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굶어 죽겠다고 맹세를 했는데도 재판 날짜가 다가오니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성경을 펴놓으면 성경에 눈물이 줄줄 흐르면서 성경을 다 망치고 도저히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있기 한 반 년 전쯤에 어떤 사건이 있었습니다. 관계되는 이야기이니까 하겠습니다. 어느날 점심을 먹고 있는데 어떤 처녀가 찾아왔습니다. 얼굴이 헬쓱한 게 보기에도 병자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얘기좀 하고 싶어서 왔다고 해서 예배당 안 성가대석에 앉아서 얘기를 하는데 대뜸 그 처녀가 질문을 했습니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습니까? 왜 그걸 묻느냐고 하니까 자기는 벌써 폐병 3기가 되어서 사실은 오늘 마지막으로 점심을 먹고 지금 죽으러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폐병이 들어서 도저히 살 가망이 없고 자기 집은 가난하니 하루라도 오래 살면 부모님 고생만 시키는 것이니 이왕 죽을 바에는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것이 부모님들에게 폐를 덜 끼치고 형제들에게도 폐를 덜 끼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에 빠져 죽으려고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까 굉장히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경북대학교 국문과 3학년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이 사람에게 영혼이 있고 천국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는 철저하게 무신론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도 없고 영혼도 없다고 생각하며 지내왔다고 했습니다.
그 학생은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그중「좁은문」이라는 소설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소설에서 주인공 처녀는 사촌과 연애를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 사랑을 버리느냐, 하나님을 버리느냐 하는 두 문제로 고통하다가 어떤 신부를 만나고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 학생은「좁은 문 」에서 주인공이 신부를 만나 문제를 푼 것이 생각나서 지나가다가 예배당 종각이 보이고 교회가 보이니까 행여나 영혼이 있으면 지금 죽는 것이 문제이니까 그것을 알아보려고 왔던 겄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제 마음에 '아차' 싶었습니다. 내가 만일 말을 잘못 해서 그 처녀가 그대로 죽어버리면 어떻게 되나. 그래서 한 시간 반쯤 앉아서 설명을 죽 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짐승과는 다른데 사람 속에는 양심이 있다. 양심이 사람의 영혼이다. 짐승들에게는 영혼이 없다. 짐승은 양심이 없다. 사람 안에 양심이 있다는 것이 영혼이 있다는 증거다. 그것을 한 시간 반쯤 설명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학생이 내게 사람에게 영혼이 없다는 것을 입증을 해 달라. 만일 사람에게 영혼이 없다는 것을 내가 믿게 되면 학생이 내가 보는 앞에서 죽을지라도 나는 말리지 않겠다. 그리고 나도 학생과 같이 죽겠다, 같이 죽을 자신이 있다. 영혼이 없는 인간이 무엇 때문에 사느냐. 하루 살면 하루 고생이고 이틀 살면 이틀 고생인데 살아서 무엇하느냐.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학생은 "선생님 말씀 들으니까 일리가 있습니다. 아직은 확실히 믿어지지 않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죽는 것을 보류하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됐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는 학생이 제게 부탁을 해요. 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만 한 달에 약값이 그때 돈으로 300원으로 상당히 큰 돈인데 한 달 약값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그 약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보냈습니다. 우선 한 달치 약값 300원과 성경 한 권을 사서 인편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그 학생은 가끔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6개월쯤 후 노회에서 재판에 피고로 참여하라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고민하던 때인데 또 한 번 누가 찾아왔습니다. 그 학생의 동생이었습니다. "선생님, 우리 집에 빨리 좀 와 주십시오. 언니가 다 죽어 갑니다. 우리 언니가 피를 많이 쏟고 죽어가면서 선생님을 자꾸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갔지요. 집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가니까 그 학생이 축 늘어져서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가정이 너무 가난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피곤해서 각혈을 많이 한 것입니다. 피를 많이 쏟아 그 지경이 되었어요.
그래도 앉아서 얘기를 했습니다. 마지막이구나 싶어서 구원에 대해서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6개월 전에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는 영혼이 있는 것도 안믿었고 하나님도 안 믿었는데 그 후에 성경을 읽고 선생님 설교도 듣고 지금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습니다. 지금 선생님 말씀하시는 그 구원도 제가 다 압니다. 그런데 천당 갈 자신이 없어요." 저는 더 설명해 줄 말이 없어졌습니다. 제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그래도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믿음이라는 것은 맡기는 것이니까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고 기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틀 뒤에 또 동생이 왔습니다. 그 날은 제가 노회에서 재판 받기 이틀 전이었습니다. 우리 언니가 방금 숨이 끊어지려고 하는데 말을 전혀 못하면서 무언가 손짓을 하면서 목사님을 찾고 있다고 해서 좇아갔습니다. 그 처녀는 죽은 시체처럼 누워 있고 가족이 죽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가족은 전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가서 가볍게 몸을 흔들면서 왜 이럽니까 하고 물으니까 손가락을 내어서 가슴으로 가져가요. 가슴을 자꾸 찌르더니 거기에 글씨를 씁니다. '내가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듣기는 합니다' 라고 썼습니다. 제가 "구원을 받았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가슴에다가 '오늘' 이라고 썼습니다. 그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이전에 소설 한 편을 쓴 적이 있는데「가슴에 쓰여진 글씨, 오늘」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나중에「갈림길의 대화」로 제목이 바뀌었지만, 그 학생의 그 일이 스토리의 한 부분이 된 겁니다. '오늘' 이라는 말은 그날 바로 믿어졌다는 뜻이에요.
오늘이라고 쓰면서 찬송을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식구들은 찬송을 모르니까 저 혼자 찬송 몇 장을 불렀고 또 불러 달라고 해서 자꾸 불렀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저녁때 또 가보았습니다. 그때는 목이 조금 트였습니다. 그리고 말을 시작하는데 제일 첫번째 하는 말이 "엄마, 엄마. 예수를 믿으세요" 라고 전도를 하는 겁니다. "엄마, 이제 나는 울지 않습니다. 온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하면서 자기 엄마한테 전도를 했습니다. "내가 병이 든 것이 참 다행입니다. 이 병이 들지 않았으면 나는 구원을 절대로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병이 들었기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병든 것을 오히려 굉장히 감사하는 거예요. 그 자매는 그로부터 한 1년 반 후에 멀리 산골에 가서 지내다가 죽었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그 자매가 구원을 받는 것을 보고 제 마음 속에 '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구나 하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물론 구원을 받았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만 이전에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구체적인 믿음이 없었는데 그 일을 보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재판받는 것에 대한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습니다.
재판받는 날 아침 , 성경을 읽다가 저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그 내용을 얘기하지는 않겠지만 그 성경을 깨달았을 때에 완전히 평안을 얻었습니다. 성경을 깨닫자마자 마음이 아주 조용해지고 평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두렵다든지 부끄럽다든지 하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대구 영락교회에서 재판이 벌어졌는데 저 하나가 재판을 받는 것인데 장로, 목사, 정회원, 방청객이 그 넓은 예배당에 꽉 찼습니다. 그래도 대구에서는 제가 조금 이름이 있던 목사였기 때문에 제가 재판을 받는다고 하니까 장소가 미어지도록 사람들이 와서 구경을 했습니다.
그때 고소자는 제가 있던 한 교회의 장로였습니다. 노회에다 글을 보내어 고발을 한 것입니다. 이상백 장로인데 그 장로가 제게 감정을 품은 일이 있었습니다. 구원받은 후인데 어느 주일날 집회를 마치고 장로, 집사들, 권사들 다 모여서 회의를 했는데 그 회의 때에 이상백 장로가 "목사님, 이제 우리집에 신방을 자주 와 주십시오" 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자기가 살던 집을 자금이 모자라 팔고 어떤 부유한 과부의 집으로 세를 들어서 이사를 갔는데 그 과부를 우리 교회로 데리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 과부와 또 한 사람을 우리 교회로 데리고 오다가 고려파 교인을 만나서 길바닥에서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고려파로 가고 그 과부는 우리 교회로 오고 이렇게 나눠졌으니 그 과부를 확실히 우리 교회 교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목사님이 자주 신방을 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과부는 돈이 많으니 우리 교회 교인이 되면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할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일언지하 에 거절해 버렸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교인 쟁탈전입니다. "장로님이 요령껏 해서 완전히 우리 교회 교인이 되면 제가 그 후에 가겠습니다. 장로님이 요령껏 하십시오. 그 과부를 우리 교회 교인으로 뺏어오기 위해서 신방같은 것을 저는 못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재판이 열리자 그 장로가 나와서 있는 말, 없는 말, 온갖 거짓말을 하면서 장시간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 장로는 재직회를 하다가 어떤 집사가 말을 잘못하면 폭력을 쓸 정도로 난폭한 사람인데 이상하게 그렇게 저를 욕하고 거짓말도 하면서 공격을 해대도 저의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저 장로가 불쌍하다는 생각만 드는 겁니다.
한참 있다가 저의 친한 친구들이 피고의 말도 들어보자고 제안하면서 제게 얘기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앞에 나가서 얘 기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구원받은 간증을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 자신이 구원받은 간증을 아그립바 왕 앞에 가서도 하고 언제든지 사건이 있을 때마다 했듯이 저도 간증을 처음부터 한참을 했습니다.
그러자 제가 있던 교회의 장로가 아닌, 대구의 제일 큰 제일교회 장로가 벌떡 일어나더니 시퍼런 얼굴을 해서 그런 소리를 듣자고 여기에 모였느냐. 침례를 취소하겠느냐 안하겠느냐 그것만 얘기하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받은 거니까 취소할 수 없다고 얘기를 했지요. 그러자 누가 주기도문을 부인한다고 하는데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는 그 기도를 자신있게 할 수 있으면 하라, 나는 주기도문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조용해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또 내게 질문할 것이 있느냐고 하니까 아무 소리가 없었습니다. 그럼 이제 나는 나갈 테니까 여러분 마음대로 하라고 하고 저는 나와 버렸습니다. 그때 구의령 선교사가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 따라 나오면서 목사님, 왜 이러십니까. 목사님 같은 분이 이 노회 안에 있어야지 왜 이 노회를 버립니까 하면서 막 나를 말리고 붙들었습니다.
나중에 투표로 목사 파면을 결정 했는데 몇백 명이 모인중에 26명이 찬성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기권을 해서 목사 파면이 결정되고 이렇게 해서 장로교에서 끊겼습니다.
모임의 시작
후에 안 것이지만 침례로 말미암아 노회에서 짤려나간 것은 우리 교회가 시작된다는 신호였습니다. 현실적인 교회에서는 짤렸지만 바로 주님의 교회가 시작이 된다는 신호였던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 침례 문제 때문에 시작이 된 겁니다.
그 후에 제가 있던 교회에서 싸움이 생겼습니다. 한 10퍼센트 정도의 사람은 나를 반대하고 그 다음에 교인들 절대 다수의 사람은 목사님하고 노회를 떠나 목사님과 교회를 같이 하겠다고 싸움이 생긴 겁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침례를 받은 것이며 그 싸움은 나와 관계 없다 싶어서 그냥 떠났습니다. 교회가 갈라졌을 때에는 이중 예배를 봤습니다. 제가 설교하는 시간이 따로 있었고 노회에서 파송된 사람이 설교하는 시간이 따로 있었습니다. 제가 육신적으로 싸웠으면 그 사람들을 완전히 쫓아내 버릴 수 있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표를 내고 완전히 그 교회를 떠나버렸습니다. 그때 일부의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저를 따라 나온 사람들이 있어 50-60 명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과 식당 2층을 빌려서 집회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이제부터 여러분이 주는 월급을 안받겠다. 나는 이제 월급장이는 되기 싫고 내가 벌어 먹으면서 설교를 하겠다고 사업을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했는데 저를 따라 나온 사람들 가운데 한 믿지 않는 소경과 같이 사업을 했습니다. 그는 화학자인데 화학 실험을 하다가 약품이 폭발해서 두눈을 다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주 비상한 아이디어를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아이디어를 제공해서 사람들과 같이 사업을 하면 처음에는 자기를 대우해주다가 사업이 잘 되고 그 기술을 익히면 그를 배척하고 속인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는데 목사님 같으면 믿을 테니까 사업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때 저를 따라 나온 교인들 가운데 돈이 좀 있는 사람과 그 과학자와 저, 셋이서 어울려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고생을 많이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찌는 듯한 여름 더위에 슬라브로 이은 나즈막한 지붕 아래 공장에서 일을 하는데 참 고생 많이 했습니다. 등 전체에 땀띠가 날 정도로 일 년 동안 했는데 완전히 적자를 봤습니다. 돈은 한푼도 못벌고 완전히 실패를 했습니다.
그때에는 생활이 아주 어려웠습니다. 육남매가 있었는데 모두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쌀통에 쌀이 하나도 없고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종이 조각, 신문 같은 것을 모아서 고물상에 가져가 팔아 몇 푼 생기면 그것을 가지고 두부 두 모를 사서 아이들에게 먹이고 학교에 보내고 우리 내외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먹는 일도 몇 번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납금 가져오라고 해도 아이들은 급박해질 때까지 공납금 말을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럭저럭 이상하게 굶어죽지 않고 아이들이 고등학교까지 다 마쳤습니다. 맏아들이 대학교에 합격을 해 입학을 했는데 공부를 못 시켰습니다. 사업을 해도 한 푼도 벌지 못했고 월급을 안 받았습니다. 생기면 먹고 없으면 굶었지만 굶어 죽지 않았습니다.
시편에 보면 의인의 자식이 걸식함을 보지 못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도 어디 가서 돈을 꾸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시골 형님이 농사를 지어 가을에 쌀가마니라도 보내주곤 했는데 그 외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우리 형님이 아직 구원을 못받았을 때였습니다. 아무에게나 가서 먹을 것을 위해서 돈을 빌린다든지 그렇게 해 본 일이 없습니다. 가끔 먹을 것이 없어서 굶기는 했어도 여러 번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경험입니다. 그것이 훈련 이고 그것이 시련입니다.
나중에 안 것은 역시 그것이 하나의 훈련이기는 했지만 제가 갈 길은 아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길로 가서는 안 되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그러한 훈련이 있습니다. 그런 무서운 시련, 무서운 훈련을 거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신앙 생활에서 그러한 훈련이 있으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침례 얘기를 했는데 침례 때문에 우리 교회가 세워진 겁니다. 침례를 성경대로 지키지 않았더라면 우리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참복음의 역사 안에는 침례 때문에 수없이 많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침례라는 것이 교회를 형성해 가는 데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찬송 한 장 부릅시다.
189장입니다.
1.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지극히 화평한 맘으로 찬송을 부름은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2.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보배로 속죄함 받은 것 아니요 거룩한 하나님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3.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얻음은 확실히 믿기는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4. 거룩한 천국에 올라간 후에도 죄 속한 은혜의 찬송을 기쁘게 부름은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후렴.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 죄를 속했네 할렐루야
소리를 합하여 함께 찬송하세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다같이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들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얼마나 다른지요. 저희들의 생각에 깜깜해 보이는 것이. 하나님께는 환하고 저희들은 앞을 보지 못하나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좌절된 것 같고 망가지는 것 같은 것이 큰 성공의 시작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러한 과거를 돌아다보면서 이 한 시간 저희들이 교제하였습니다. 우리들이 나날이 당하는 일들에서 우리의 상식으로 판단하고 미리 겁을 집어먹는 일이 없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우리와 같이 하시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고 든든히 서서 똑바로 따라가게 인도해 주십시오.
다시 모이는 순간까지 각 사람 주님을 항상 생각하고 바라보면 서 지내도록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거듭나지 못한 목사생활
오늘은 침례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저의 과거 경험을 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구원받기 전에도 대구의 칠성교회라는 한 장로교회에서 목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날 칠성교회에서 일년에 한번씩 하는 부흥를 하게 됐습니다. 부흥회를 하려고 하니까 목사들은 다 위선자 같아 보였습니다. 강사를 청하면 사례금이나 탐내는 것 같고 진정으로 설교를 성경대로, 양심적으로 해줄 수 있는 목사들이 눈에 안보였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알던 유명한 장로 한 분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김인서 장로라고 이북에서 오신 나이가 좀 많은 분인데 성경을 굉장히 많이 알고 나중에 목사가 된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성경적으로 머리가 열려 있었습니다. 그분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우리가 부흥회를 하려고 하는데 강사로 오실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답장이 오긴 왔는데 사례금을 얼마를 주면 가겠습니다 하고 흥정하는 편지가 왔습니다. 그 편지를 받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게 그분의 솔직한 심정인데 나는 이거 완전히 삯군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고 당신 같은 사람은 영원히 강사로 초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장을 해 보냈습니다.
계속해서 강사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네덜란드에서 오신 케이스 크라스라는 선교사가 아주 설교를 잘 한다고 소개를 했습니다. 한 번 초청해서 설교를 들어보기로 하고 교섭을 해서 부흥회를 시작했습니다. 그 선교사의 한국 이름은 길기수였습니다.
그 선교사가 와서 설교를 하는데 첫날부터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 설교를 하는데 설교를 들어보니까 뭔지 모르지만 마음이 가벼워지고 굉장히 좋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당장에 깨달을 수는 없었습니다.
금요일 날 낮 성경공부 시간이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다가 길기수 선교사가 탁자를 '탁' 치면서 여러분 거듭났습니까 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데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목사라는 사람이 가슴이 철렁한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에 조직신학이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조직적으로 꾸며 놓은 학문입니다. 거기에 보면 사람은 거듭났기 때문에 믿는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적으로는 그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거듭났기 때문에 믿는다는 말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거듭난 날부터 진짜 믿음을 가지거든요. 진짜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니까 거듭났기 때문에 믿는다는 말이 맞는데 그때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조직신학을 배울 때 거듭났기 때문에 믿는다, 내가 그냥 머리로 믿고 있는 이 믿음이 진짜 믿음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조직신학에서는 거듭난 것은 자기가 모른다고 가르칩니다. 박영용 박사의 조직신학인데 거듭났기 때문에 믿고 거듭난 것은 자기가 모른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저도 거듭났다고 믿고 있었는데 거듭났느냐고 외치며 탁자를 때리는데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저는 거듭났다고 생각했는데 그 질문에 '예' 하고 자신 있게 답변이 안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집회 마치자마자 선교사를 좀 만나자고 해서 사택 방에서 단 둘이 대면을 했습니다. 거듭났느냐고 질문했는데 저는 자신있게 '예' 하고 답변이 안나옵니다. 그건 왜 그렇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 선교사가 "참 이상합니다. 내가 한국에 와서 이런 집회도 많이 해봤는데 내가 제일 무서운 사람들은 목사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목사하고 둘이 마주앉으면 통하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벽을 향해서 말하는 것처럼 통하지 않는다고 해요. 목사들이 거듭남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권 목사님은 잘 통하는데 왜 그럽니까" 라고 합니다.
저는 당시 교회의 부패성이라든지 교회가 잘못되어 가는 그런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누구를 만나면 교회의 잘못된 점을 얘기하고 돈밖에 모르는 목사들의 얘기를 했습니다. 거듭나지는 못했지만 비판력이 있어서 항상 만나는 사람한테 그런 얘기를 한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선교사가 저를 거듭났다고 인정한 모양이에요. "권 목사는 참 잘 통하고 좋은데 무슨 의심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니, 의심은 없습니다. 성경을 백퍼센트 믿습니다. 지금 죽어도 천당 갈 자신이 있습니다" 라고 했더니 그 선교사가 말하기를 "그럼 됐지요, 성경을 백퍼센트 믿고, 죽으면 천 당 갈자신 있으면 됐지요." 라고 했습니다.
참 이상했습니다. 됐다고 하기는 하는데 이 옆구리에 뭐가 하나 아직도 붙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되었다고 하니까 된 줄 알았습니다. 된 줄 알고 지나갔죠. 그렇지만 그때 마음 속에 결심한 게 한 가지 있었습니다. 나도 저 선교사와 같이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 설교를 하자고 결심을 한 겁니다. 그때부터 주일마다 비록 거듭나지는 못했지만 목사이니까 어느 정도 복음설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한 이유 중에는 일본의 우치무라 간조라는 분의 영향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 사람은 무교회주의자이면서 현실교회에 대해서 아주 신랄하고 날카롭게 비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책을 읽으면 사상이 살아나고 비판력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날카로운 비판조의 설교를 하니까 공부도 많이 못한 사람이었지만 제 설교는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쓴 책 가운데 구안록이라는 책이 있는데 구원받은 체험을 쓴 책입니다. 그걸 몇 번 읽었어도 제가 거듭나지 못했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길 선교사의 부흥회가 있은 뒤 삼주일 후 토요일날 설교준비를 하려고 앉았습니다. '복음 설교를 해야 되는데'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대학 노트에다 설교할 내용을 8페이지나 10페이지 정도 썼습니다. 그걸 기술적으로 잘 읽는 게 설교입니다. 원고를 보면서도 안 보는 것처럼 어떻게 잘 읽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렇게 설교 준비를 하다 보니까 설교 내용을 몽땅 다 기록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을 쓰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설교의 제목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였습니다.
전체 내용을 1장, 2장, 3장으로 나누는데 1장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쓰고 이것을 생각해 보니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항상 성경을 겉읽고 그냥 건너뛰어가는 습관이 있었는데, 1장하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쓰고 생각해 보니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것을 연구하는데 로마서 3장 21절에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라는 말씀과 죽 연결이 돼요. 우치무라 간조의 로마서 강해를 참고하면서 연구를 충분히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로마서 3장 21절이 마음 속에 확 풀려버렸어요. 풀린 것이 뭐냐 하면 율법에서 해방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그 '이제는' 은 곧, 지금 입니다. 20절에 보면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아, 그렇구나. 율법은 지키라고 준 것이 아니고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이제 이걸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마음에 열려버린 것이 있었습니다.
이제 율법에서 해방을 받았으면 율법이 없으니까 죄를 마음껏 지어도 괜찮단 말이냐. 우치무라 간조의 로마서 강해 속에 그런 질문이 나와요. 질문이 나오면서 이어서 대답이 나옵니다. 그렇지 않다. 지금은 율법이 없어도 성령이 오셔서 성령이 그 마음을 인도해 가시니까 죄를 함부로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게 구원이라는 것이에요. 그 말을 할 때 내 마음이 확 풀려버렸습니다.
저는 그전까지 그 무시무시한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며 살았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율법사가 와서 예수님께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하고 묻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 아버지는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 같이는 못하셔도 그 비슷한 생활을 하셨는데 저는 그걸 보며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살아가시는 삶을 보았기 때문에 목사가 된 이후로 나도 그런 식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거지를 방에 불러 들여 같이 주무시기도 하신 분입니다.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일이 많았습니다.
6. 25 동란 때 함경도 쪽에서 피난오는 사람들은 우리 집 근처를 지나다가 전부 우리 집에 들렸습니다. 어떤 피난민들은 사랑방에서 한 달 동안 그냥 먹고 지내고 또 어떤 피난민들은 남의 집 방을 빌려가지고 생활하는데 아버지는 남의 쌀독을 뒤져보고 쌀이 없으면 온 군데를 다니며 쌀을 거둬가지고 그 집에 몰래 갔다주기도 하던 분이었습니다. 저희 부친이 그런 식으로 사셨기 때문에 저는 어린 시절부터 예수 믿는 생활이란 것은 저런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구원은 못받았으면서도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는 그 말씀대로 철저하게 생활했는데 안되니까 내가 위선자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항상 괴롭고 이 위선자, 이 거짓 선지자 하면서 저 자신을 학대했습니다. 그것이 전부 율법 지키는 생활이었습니다. 저는 그 무시무시한 율법을 짊어지고 10년을 목사생활을 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율법에서 해방이 된 겁니다.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얼마나 마음 속에 감사한 마음이 복받쳐오르는지 그것을 설교 노트에 한 반쯤 썼습니다.
그리고 끝맺음을 해야 되는데 더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에 감격이 복받쳐 오르면서 도저히 앉아서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내 죄 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 뒤' 라는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는데 끝없이 불렀습니다. 불러도 불러도 또 부르고 싶었습니다. 오후 2시쯤에 시작해서 캄캄한 밤 7시쯤까지 불렀습니다. 혼자서 막 불렀습니다. 그때는 아래 위 두 채인 사택에 있을 때입니다. 그중 안채에 있던 식구들이 몰려와 문을 열고 들어 왔습니다. 우리 딸 아이가 "아버지 돌았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 내가 돌았든지 네가 돌았든지 둘 중에 하나는 돌았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모든 죄인들은 하나님을 등지고 돌았는데 하나님 앞으로 다시 돌아야 됩니다. "이제 너도 이걸 알아야 할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선교사들과의 교제
그래도 그것이 구원인지 , 거듭난 것인지 몰랐습니다. 나도 처음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나서 그 다음날 설교를 했습니다. 반 정도 준비된 설교 원고를 가지고 그냥 막 소리치고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여러분 이걸 알아야 된다고 설교를 했습니다. 교인들이 쳐다보고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대구에 가면 이상헌 박사가 시무하는 제일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에서 저에게 저녁 설교를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처음 이상헌 박사가 있는 교회에서 저녁 설교를 잠깐 했습니다. 큰소리치면서 열변을 토했는데 나중에 후문을 들으니까 피아노를 치던 피아니스트와 모두 세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한 달 후에 길기수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제가 경험한 얘기를 하니까
"그것이 바로 거듭나는 겁니다. 그게 바로 구원받은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게 구원인 줄 알았습니다. 제가 구원받은 날은 1961년 11월 18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구원받은 후에 집에 가만히 있으려니까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 한 권만 가지고 역전에 갔습니다. 그 때가 5. 16혁명 계엄령 당시였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있길래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십시오. 안 믿으면 지옥갑니다.' 마구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들은 별 사람 다 있다는 식으로 절 쳐다 보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열이 올라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큰 시장이나 사람들 많이 모인 데 가서 소리치고 제가 사는 집 주변을 돌아가며 집집마다 전도지를 돌렸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쓴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됐느냐' 라는 전도지를 접어가지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한 집도 빠뜨리지 않고 다 뿌렸고 그 다음에는 핸드 마이크를 빌려서 길거리를 다니면서 소리쳤습니다.
대구에 가면 달성공원이 있는데 그곳에 들어가니까 앞에다 큰 종이를 펴 놓고 앉아서 사람들 관상 봐주고 점쳐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걸 보니까 얼마나 속이 상하는지 그 옆에 서서 마이크를 대고 예수 믿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해도 한 사람도 구원을 못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마음에 복받쳐오르는 것을 억제할 길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걸 발산해야 될지,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랐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니까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한 겁니다. 그러다가 집에 손님이 오면 그땐 참 기분이 좋은 날입니다. 그 손님을 붙들고 얘기하는 겁니다. 누가 집에 찾아오면 안사람과 딸이 "오늘도 아버지 일거리 생겼다"라고 했습니다. 목사가 찾아오면 붙들고 얘기했습니다.
한번은 길거리를 지나다가 친구 목사 하나를 만났는데 길거리에 세워 놓고 3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이 사람은 제가 자꾸 얘기를 하니까 차마 떨쳐버릴 수 없어서 들었습니다. 친한 친구이고 목사인데 나중에는 그 사람이 나를 보면 도망쳤습니다. 그런 법석을 떨면서 지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한국인 목사로서 구원받은 사람은 나 하나였고 그 다음에 선교사 중에 구원받은 사람이 몇 사람 있었습니다. 딕 요크라는 미국 선교사가 있었고 길 선교사와 또 영국에서 온 선교사가 한 명, 미국 선교사가 또 한 명 있었는데 이 네 사람이 힘을 합쳐서 YMCA에서 토요일 저녁마다 집회를 했습니다. 강당을 빌려서 매주 토요일마다 집회를 했는데 저는 갓 구원받아서 설교할 자격도 없는데 하루 저녁은 저에게 설교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했습니다. 무슨 설교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무슨 설교를 했습니다.
저는 길 선교사의 선교단과 합쳐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교제를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구원받은 이후부터 교회의 일은 다 걷어치워 버렸습니다. 매일 다니던 심방도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그 사람들을 만나는 게 일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루라도 그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만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볼 일을 보고 나면 또 그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서 성경 얘기하고 이런 것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것이 교제인 겁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다
그러던 중에 신학교에서 강사를 좀 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신앙이나 삶에 대한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고 설교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모르는 판에 어떻게 신학교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미국에서 온 딕 요크라는 선교사에게 강의를 맡는 게 좋을지 어떨지 물었습니다. 그는 맡으라고 했습니다. 제가 가르칠 것도 없는데 뭘 가르치냐고 하니까 자기가 협력을 해 주겠으니 그냥 맡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강사로 가기 위해서 말하자면 개인 교습을 받았습니다. 제가 맡은 과목이 성경 과목인데 그 과목을 가르치기 전에 미리 딕 요크한테 가서 성경 얘기를 듣고 가르친 겁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귀가 쫑긋하고 제가 들어가면 눈이 반짝반짝하면서 얘기를 아주 잘 들었습니다 제가 아직 미숙하기는 했지만 제가 가르치는 방법이 다른 교수하고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저의 강의 시간에는 학생들이 잘 모였습니다.
채플 시간은 전체가 모이는 예배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신학생들이 잘 빠집니다. 목사들이 와서 하는 소리가 맨날 같으니 신학생들은 다른 데로 가버리고 잘 안모입니다. 그런데 제가 채플 시간을 맡았다고 하면 많이 모였습니다. 어느날 채플 시간에 들어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전교생이 모였는데 제가 평소에 잘 아는 2학년 학생 하나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 날 종교에서 해방이라는 설교를 끝냈는데 그 다음날 그 학생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어디를 가버리고 강의 시간에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학교 측에서 서서히 저에 대해서 문제를 삼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학기말 시험을 치게 됐는데 학기말 시험 전에 제가 교파에서 제명되었습니다. 제명된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도 그만 두게 되었고 강사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권 목사가 학기말 시험을 맡게 해 달라, 절대로 권 목사 과목은 다른 목사가 시험 문제를 못낸다. 교습 방법이 완전히 다르니까 권 목사가 시험 출제를 하게 해달라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허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 두 달인가 석 달인가 지난 다음 제가 따로 조그맣게 사람들을 모아가지고 설교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거기에 사라졌던 학생이 아주 이상한 모습으로 찾아왔어요. 청년 한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 그 청년의 등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크게 써붙여 입히고 또 무슨 깃대를 하나 든 그런 청년을 같이 데리고 왔어요. 길거리에서 전도를 하려고 한 겁니다. 그 깃대를 흔들면서 전도를 하는 거예요. 그 학생은 종교에서 해방이라는 설교를 하던 채플 시간에 구원을 받았어요. 구원을 받고 나니 뛸 듯이 기뻤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제는 신학교가 필요없다고 단정해버리고 그때부터 신학교는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식교 비슷한 교회로 빠져버렸습니다. 거기서 침례를 받고 방언도 배운 것이었습니다.
제가 시무하는 칠성교회에서 오후에 성경강좌를 열었습니다. 딕 요크 선교사가 중심이 되어 성경강연회를 열었는데 그때부터 구원받는 사람들의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 안 받은 사람 할 것 없이 오후가 되면 칠성교회에 상당한 사람이 모여서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성경 공부가 계속되고 그 모임이 계속됐으면 교회로서 상당히 건전하게 출발했을 텐데 교회에서 장로들이 반대하고 그들의 추종자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딴 데로 옮겨 성경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때 구원받은 사람이 생겨나고 건전한 교제가 형성되고 또 건전하게 하나님 말씀이 전해지는 이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침례에 담긴 구원의 의미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복음 3:22-23)
여기 씻을 세(洗) 자, 예절 례(禮) 자를 써서 세례를 씻는 예식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번역이 잘못 되었습니다. 성경이 영어나 독일어로 번역되기 전에 천주교회가 라틴어로 된 성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반인이 읽을 수 있는 영어, 독일어로 번역이 되었는데 번역할 그때는 벌써 약식 세례가 습관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로 번역했습니다.
요한이 이 복음을 쓸 때에는 헬라어 , 그리스 말이 통용되었는데 침례라는, 물에 첨벙 잠긴 다는 뜻의 '뱁티스마' 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장례식 때 시체를 물 속에다가 빠트려버리는 것을 뱁티스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침례가 맞는 말입니다. 영어로 번역할 때에는 이미 약식 세례가 습관이 되어 있는 상태여서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물을 뿌리는 세례를 주장하는 쪽과 물 속에 잠그는 침례를 주장하는 편에서 서로 팽팽하게 맞서다가 그럼 헬라어 그대로 쓰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뱁티즘' 이라고 기록했습니다.
23절에 보면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침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라고 했습니다. 물들이 많은 곳에 가서 침례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만일 약식 세례도 괜찮다고 하면 물 한 그릇만 있으면 세례를 줄 수 있습니다. 장로교나 감리교에서는 물에 손가락을 찍어가지고 머리에다 뿌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면 물 한 그릇도 필요 없고 조금만 있으면 되는데 왜 살렘 가까운 에논에서 침례를 주었고 거기에 물들이 많음이라고 했습니까? 본래 성경적으로 보면 침례가 침례이지 약식 세례는 틀린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마태복음 3:16)
예수님이 물에서 올라오셨다는 말은 물 속에 들어가셨다가 올라 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침례를 받으셨지 약식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침례를 받으신 겁니다. 예수님도 육신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침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물 속에 들어가시는 것은 예수님이 장차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장례한다는 뜻입니다. 물에서 올라오셨다는 것은 부활하실 것을 말합니다. 죽어 장례 지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는데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물에서 올라오셨다고 한 겁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태복음 3:16)
그 다음 성령이 내렸다 하는 것은 예수님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 성경 한 곳 읽어보겠습니다.
"길 가다 물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사도행전 8: 6)
"빌립이 가로되 네가 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으면 가하니라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들인줄 믿노라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사도행전 8:37-39)
여기도 보면 사람들이 침례를 받았습니다. 분명히 침례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도 침례를 받으셨고 이디오피아의 내시도 예루살렘에 왔다가 빌립의 전도를 듣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침례를 없애버리고 물방울을 튀기는 약식 세례를 심어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진짜 내용이 완전히 감추어져 버렸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고 또 루터 당시에 장로교의 설립자 요한 칼빈도 한 시대에 움직였습니다. 그 외에 여러 사람들이 종교개혁에 참여했는데 그들은 구원을 받았지만 침례는 받지 않고 약식 세례를 그대로 행했기 때문에 구원받는 역사가 빨리 사라지고 시들어지게 되었고 성경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적당하게 편리한 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상이 만연되었습니다.
약식 세례는 인간의 방법대로 편리하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분명히 침례는 예수님도 받으셨고 또 거기에는 굉장히 중요한 뜻이 있는데 그런 뜻을 다 제해버리고 인간의 편리한 방법 대로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오순절에 성령이 임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한꺼번에 3,000명이 생겼는데 그 3,000명을 어떻게 다 침례를 했느냐,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건 어리석은 소리입니다. 우리 모임은 항상 수양회 때 한꺼번에 침례식을 하는데 제일 많이 했을 때가 4,300명이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침례 때문에 핍박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천주교 계통에서는 약식 세례를 받고 루터 계통의 교회는 프로테스탄트인데 약식 세례를 하고 장로교도 약식 세례를 했는데 침례를 고집하는 계통이 있었어요. 그 계통이 재침례파인데 그 사람들은 약식 세례를 다 받았지만 복음을 깨닫고 구원을 받으면 반드시 침례를 다시 받습니다. 그들을 재침례파라고 하는데 지금 현재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천주교를 믿던 사람이든 장로교를 믿던 사람이든 다른 교회에 다니던 사람이든 약식 세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구원받으면 새로 침례를 받습니다.
저는 약식 세례를 두 번 받았고 그 다음에 침례를 한 번 받았습니다. 제 부친이 장로여서 저는 유아 때 유아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기를 낳으면 얼마 후에 예배당에 나가서 목사로부터 아기 머리에 물을 끼얹는 것을 유아 세례라고 합니다. 제가 유아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자라서 공부한다고 부산에 가서 일본 사람들의 교회에 다녔습니다. 일본의 고베신학교에 가볼까 생각하고 일본 교회를 다녔는데 성결교회였습니다.
목사가 그때 저를 보고 세례를 받았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유아 세례를 받았다' 고 했습니다. 보편적으로 유아 세례를 받은 것을 굉장히 자랑으로 생각할 때였습니다.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유아 세례를 받는 것은 상당한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본 목사가 어린 아이 때, 아무것도 모를 때 받았던 것은 소용이 없다고 하면서 다시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또 시험을 보아서 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아직 구원도 모를 때였습니다. 그후 구원을 받고 나서 침례를 다시 받았는데 사실 우리 교회가 출발하는 그 시점에서 침례가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받은 침례
제가 침례를 안 받고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침례를 받지 않았으면 우리 교회는 시작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침례 때문에 출발이 된 겁니다. 제가 구원을 받고 나니까 마음 속에 제일 첫 번째로 걸리는 것이 유아 세례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성경에 비추어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아기가 내게 오는 것을 금치 말라고 축복은 하셨지만 어린아이에게 침례를 주라든지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신 곳도 없고 또 준 곳도 없습니다. 성경에 아무리 찾아봐도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기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무의식적인 상태에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 물을 가지고 머리에 얹으면서 세례를 주는 그 의식이 마치 무슨 거룩한 뜻이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완전히 형식일 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의식을 너무 중요시하다보니까 지금까지도 그것이 아주 중요한 것처럼 전해내려온 것입니다.
제가 구원을 받고 나니 유아 세례를 준다는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유아 세례는 성경과 맞지 않는데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했지만 명색이 장로교 목사니까 계속해서 유아 세례도 주고 유아 세례 주는 날 어른에게도 약식 세례를 주곤 했습니다. 구원 받은 후 두번째로 세례식을 치르는 날이 되었습니다.
첫 세례식은 그렇게 치루었는데 두번째 약식 세례와 유아 세례를 주려고 하니 양심에 굉장히 거리꼈습니다. 교파의 법으로는 맞지만 성경적으로는 안맞는데, 성경에는 이런 것이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드니까 양심이 굉장히 거리꼈습니다. 하지만 내가 장로교 안에 있고 장로교 법대로 사는 사람이니까 할 수 없이 물을 찍어 손이 잘 안나가지만 억지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 일이 세 번까지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양심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긴 했는데 그때부터 마음 속에 싸움이 생기는 겁니다.
성경하고 안맞는데 성경과 맞지 않는 일을 내가 왜 하느냐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결국은 이 문제가 제가 먹고 사는 문제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장로교 목사로서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었습니다. 약식 세례도 안주고 유아 세례도 안주면 장로교 목사 노릇을 할 수 없는 겁니다. 장로교에서 쫓겨나든지 사표를 내고 나오든지 해야 하는데 그러면 저는 굶어죽는 것입니다. 재산이 하나도 없고 또 저축해 놓은 것도 없는데 가족은 딸 하나에 아들 다섯 모두 여덟이나 되었습니다. 여덟 식구나 되는데 먹고 살 길이 없는 거예요. 교파에서 나가면 다른 데 발붙일 곳이 없는 거예요. 먹고 사는 것도 어렵고 설교할 데도 없고 집도 없고 땅도 없고 돈도 없는 빈털터리였습니다. 아이들은 막 자라나고 공부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할 수 없이 약식 세례를 주고 유아 세례를 주는 일을 세 번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구원받은 미국 선교사 몇 사람과 대구 수성못 근처의 조그마한 산 속 기도원을 빌려서 일주일 동안 집회를 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우리 안사람과 딸은 구원을 못받았었는데 그 집 회에 가서 안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가 구원을 받은 이후 저의 안사람을 굉장히 괴롭혔습니다. 밥상에 같이 앉으면 구원도 못받은 사람이 밥을 먹어서 뭐하느냐고 자꾸 공격을 했고 그러면 안사람은 화를 내면서 내 구원은 내가 할테니까 당신이 관계하지 말라고 하고 나도 하나님 믿고 당신도 믿는데 당신만 천당가냐고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하여튼 앉기만 하면 저는 안사람을 공격하고 구원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목사로 구원을 받아도 구원을 갓받은 상태여서 어떻게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주일이 되면 설교 했지만 괴로워 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게 하는지 전혀 모르는 때였습니다. 그때가 제가 구원받은 지 한 열 달쯤 됐을 때인데 그때는 구원받은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 열 달 동안 저의 안사람이 많은 고생을 하다가 바로 그 해 대구의 주암산 수양회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하루에 세 번씩 모였는데 새벽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집회를 했습니다. 어느날 새벽에 선교사 한 사람이 설교를 했습니다. 창세기 22장, 아브라함이 이삭 바치는 설교였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창세기 22:1-13)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바치는 이 사건은 상당히 차원 높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딕 요크라는 미국 선교사가 이 성경을 읽고 설교를 했습니다. 옛날에는 이방 사람들이 아들을 잡아 신에게 바치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일이 더러 있었습니다. 처녀를 신에게 바친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주로 짐승을 잡아 불살라 바치는 번제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얼마나 믿음이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서 아들을 잡아 바치라고 했던 겁니다. 설교자가 이 말씀을 아주 상세히 설명을 하는데 그 설명을 가만히 들으면서 저의 마음 속에는 굉장한 괴로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치라고 했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아들도 바쳤는데 나는 어떤가 생각했습니다.
예수님도 침례를 받으셨고 침례를 받는 것이 주님의 명령인데 내가 왜 그 침례를 하나님 말씀대로 못하는가. 결국은 내가 다시 위선자가 되었구나, 구원 받기 전에도 위선자라는 것 때문에 마음의 고통이 심했는데 다시 내가 위선자가 되었구나. 먹고 살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송스럽고 부끄러운지 그 설교를 마치고 나서 책상 한 구석에서 굉장히 많이 울었습니다. 울면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만일 침례를 받고 또 침례를 주게 되면 이 장로교에서 쫓겨날 것이고 장로교에서 쫓겨나면 돈도 없고 직장도 없고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굶어죽을 터인데 그래도 하나님, 하나님이 저를 굶어 죽이신다면 굶어 죽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맹세를 했습니다. 굶어 죽을 작정하고 침례를 받고 '앞으로 침례를 줄 것입니다' 하고 하나님 앞게 맹세를 했습니다.
그때 그 맹세는 물론 성령의 어떤 감동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성령의 맹세라고는 할 수가 없었어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런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네덜란드에서 온 길기수 선교사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 선교사 때문에 구원을 알게 되었고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까 우리 부부에게 침례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대구 동촌강에서 어느날 침례를 받았습니다. 침례를 받고 이것을 비밀히 숨기는 것은 비겁한 일이니 이것을 교회에 전부 알려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장로교회는 당회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장로들과 목사로 구성되었고 그 교회의 모든 문제를 결정짓는 최고의 기관입니다. 제가 있던 대구 칠성교회는 장로가 일곱이 있었습니다. 장로 일곱을 전부 다 불러 모았습니다. 모아놓고서 저는 침례를 받았고 앞으로 침례를 줄 것이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장로들의 얼굴빛이 변했습니다. 이것은 장로교 법을 어긴 것이었습니다. 교인들 가운데는 저를 따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큰일이 난 것입니다.
종교재판
그런 일이 생긴 뒤 어느날 노회에서 저를 불렀습니다. 장로교 내에서 제일 위에 총회가 있고 그 다음 지방에 노회라는 게 있는데 경상북도 내에도 여러 군데 노회가 있습니다. 노회에서 노회장 이름으로 제게 통지가 왔습니다. 어느날 재판을 할 테니까 참여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를 재판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재판 통지서를 받고 나니 이상하게 무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굶어 죽겠다고 맹세를 했는데도 재판 날짜가 다가오니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성경을 펴놓으면 성경에 눈물이 줄줄 흐르면서 성경을 다 망치고 도저히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있기 한 반 년 전쯤에 어떤 사건이 있었습니다. 관계되는 이야기이니까 하겠습니다. 어느날 점심을 먹고 있는데 어떤 처녀가 찾아왔습니다. 얼굴이 헬쓱한 게 보기에도 병자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얘기좀 하고 싶어서 왔다고 해서 예배당 안 성가대석에 앉아서 얘기를 하는데 대뜸 그 처녀가 질문을 했습니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습니까? 왜 그걸 묻느냐고 하니까 자기는 벌써 폐병 3기가 되어서 사실은 오늘 마지막으로 점심을 먹고 지금 죽으러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폐병이 들어서 도저히 살 가망이 없고 자기 집은 가난하니 하루라도 오래 살면 부모님 고생만 시키는 것이니 이왕 죽을 바에는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것이 부모님들에게 폐를 덜 끼치고 형제들에게도 폐를 덜 끼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에 빠져 죽으려고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까 굉장히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경북대학교 국문과 3학년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이 사람에게 영혼이 있고 천국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는 철저하게 무신론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도 없고 영혼도 없다고 생각하며 지내왔다고 했습니다.
그 학생은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그중「좁은문」이라는 소설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소설에서 주인공 처녀는 사촌과 연애를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 사랑을 버리느냐, 하나님을 버리느냐 하는 두 문제로 고통하다가 어떤 신부를 만나고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 학생은「좁은 문 」에서 주인공이 신부를 만나 문제를 푼 것이 생각나서 지나가다가 예배당 종각이 보이고 교회가 보이니까 행여나 영혼이 있으면 지금 죽는 것이 문제이니까 그것을 알아보려고 왔던 겄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제 마음에 '아차' 싶었습니다. 내가 만일 말을 잘못 해서 그 처녀가 그대로 죽어버리면 어떻게 되나. 그래서 한 시간 반쯤 앉아서 설명을 죽 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짐승과는 다른데 사람 속에는 양심이 있다. 양심이 사람의 영혼이다. 짐승들에게는 영혼이 없다. 짐승은 양심이 없다. 사람 안에 양심이 있다는 것이 영혼이 있다는 증거다. 그것을 한 시간 반쯤 설명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학생이 내게 사람에게 영혼이 없다는 것을 입증을 해 달라. 만일 사람에게 영혼이 없다는 것을 내가 믿게 되면 학생이 내가 보는 앞에서 죽을지라도 나는 말리지 않겠다. 그리고 나도 학생과 같이 죽겠다, 같이 죽을 자신이 있다. 영혼이 없는 인간이 무엇 때문에 사느냐. 하루 살면 하루 고생이고 이틀 살면 이틀 고생인데 살아서 무엇하느냐.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학생은 "선생님 말씀 들으니까 일리가 있습니다. 아직은 확실히 믿어지지 않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죽는 것을 보류하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됐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는 학생이 제게 부탁을 해요. 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만 한 달에 약값이 그때 돈으로 300원으로 상당히 큰 돈인데 한 달 약값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그 약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보냈습니다. 우선 한 달치 약값 300원과 성경 한 권을 사서 인편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그 학생은 가끔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6개월쯤 후 노회에서 재판에 피고로 참여하라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고민하던 때인데 또 한 번 누가 찾아왔습니다. 그 학생의 동생이었습니다. "선생님, 우리 집에 빨리 좀 와 주십시오. 언니가 다 죽어 갑니다. 우리 언니가 피를 많이 쏟고 죽어가면서 선생님을 자꾸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갔지요. 집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가니까 그 학생이 축 늘어져서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가정이 너무 가난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피곤해서 각혈을 많이 한 것입니다. 피를 많이 쏟아 그 지경이 되었어요.
그래도 앉아서 얘기를 했습니다. 마지막이구나 싶어서 구원에 대해서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6개월 전에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는 영혼이 있는 것도 안믿었고 하나님도 안 믿었는데 그 후에 성경을 읽고 선생님 설교도 듣고 지금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습니다. 지금 선생님 말씀하시는 그 구원도 제가 다 압니다. 그런데 천당 갈 자신이 없어요." 저는 더 설명해 줄 말이 없어졌습니다. 제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그래도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믿음이라는 것은 맡기는 것이니까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고 기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틀 뒤에 또 동생이 왔습니다. 그 날은 제가 노회에서 재판 받기 이틀 전이었습니다. 우리 언니가 방금 숨이 끊어지려고 하는데 말을 전혀 못하면서 무언가 손짓을 하면서 목사님을 찾고 있다고 해서 좇아갔습니다. 그 처녀는 죽은 시체처럼 누워 있고 가족이 죽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가족은 전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가서 가볍게 몸을 흔들면서 왜 이럽니까 하고 물으니까 손가락을 내어서 가슴으로 가져가요. 가슴을 자꾸 찌르더니 거기에 글씨를 씁니다. '내가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듣기는 합니다' 라고 썼습니다. 제가 "구원을 받았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가슴에다가 '오늘' 이라고 썼습니다. 그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이전에 소설 한 편을 쓴 적이 있는데「가슴에 쓰여진 글씨, 오늘」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나중에「갈림길의 대화」로 제목이 바뀌었지만, 그 학생의 그 일이 스토리의 한 부분이 된 겁니다. '오늘' 이라는 말은 그날 바로 믿어졌다는 뜻이에요.
오늘이라고 쓰면서 찬송을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식구들은 찬송을 모르니까 저 혼자 찬송 몇 장을 불렀고 또 불러 달라고 해서 자꾸 불렀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저녁때 또 가보았습니다. 그때는 목이 조금 트였습니다. 그리고 말을 시작하는데 제일 첫번째 하는 말이 "엄마, 엄마. 예수를 믿으세요" 라고 전도를 하는 겁니다. "엄마, 이제 나는 울지 않습니다. 온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하면서 자기 엄마한테 전도를 했습니다. "내가 병이 든 것이 참 다행입니다. 이 병이 들지 않았으면 나는 구원을 절대로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병이 들었기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병든 것을 오히려 굉장히 감사하는 거예요. 그 자매는 그로부터 한 1년 반 후에 멀리 산골에 가서 지내다가 죽었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그 자매가 구원을 받는 것을 보고 제 마음 속에 '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구나 하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물론 구원을 받았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만 이전에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구체적인 믿음이 없었는데 그 일을 보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재판받는 것에 대한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습니다.
재판받는 날 아침 , 성경을 읽다가 저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그 내용을 얘기하지는 않겠지만 그 성경을 깨달았을 때에 완전히 평안을 얻었습니다. 성경을 깨닫자마자 마음이 아주 조용해지고 평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두렵다든지 부끄럽다든지 하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대구 영락교회에서 재판이 벌어졌는데 저 하나가 재판을 받는 것인데 장로, 목사, 정회원, 방청객이 그 넓은 예배당에 꽉 찼습니다. 그래도 대구에서는 제가 조금 이름이 있던 목사였기 때문에 제가 재판을 받는다고 하니까 장소가 미어지도록 사람들이 와서 구경을 했습니다.
그때 고소자는 제가 있던 한 교회의 장로였습니다. 노회에다 글을 보내어 고발을 한 것입니다. 이상백 장로인데 그 장로가 제게 감정을 품은 일이 있었습니다. 구원받은 후인데 어느 주일날 집회를 마치고 장로, 집사들, 권사들 다 모여서 회의를 했는데 그 회의 때에 이상백 장로가 "목사님, 이제 우리집에 신방을 자주 와 주십시오" 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자기가 살던 집을 자금이 모자라 팔고 어떤 부유한 과부의 집으로 세를 들어서 이사를 갔는데 그 과부를 우리 교회로 데리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 과부와 또 한 사람을 우리 교회로 데리고 오다가 고려파 교인을 만나서 길바닥에서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고려파로 가고 그 과부는 우리 교회로 오고 이렇게 나눠졌으니 그 과부를 확실히 우리 교회 교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목사님이 자주 신방을 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과부는 돈이 많으니 우리 교회 교인이 되면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할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일언지하 에 거절해 버렸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교인 쟁탈전입니다. "장로님이 요령껏 해서 완전히 우리 교회 교인이 되면 제가 그 후에 가겠습니다. 장로님이 요령껏 하십시오. 그 과부를 우리 교회 교인으로 뺏어오기 위해서 신방같은 것을 저는 못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재판이 열리자 그 장로가 나와서 있는 말, 없는 말, 온갖 거짓말을 하면서 장시간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 장로는 재직회를 하다가 어떤 집사가 말을 잘못하면 폭력을 쓸 정도로 난폭한 사람인데 이상하게 그렇게 저를 욕하고 거짓말도 하면서 공격을 해대도 저의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저 장로가 불쌍하다는 생각만 드는 겁니다.
한참 있다가 저의 친한 친구들이 피고의 말도 들어보자고 제안하면서 제게 얘기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앞에 나가서 얘 기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구원받은 간증을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 자신이 구원받은 간증을 아그립바 왕 앞에 가서도 하고 언제든지 사건이 있을 때마다 했듯이 저도 간증을 처음부터 한참을 했습니다.
그러자 제가 있던 교회의 장로가 아닌, 대구의 제일 큰 제일교회 장로가 벌떡 일어나더니 시퍼런 얼굴을 해서 그런 소리를 듣자고 여기에 모였느냐. 침례를 취소하겠느냐 안하겠느냐 그것만 얘기하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받은 거니까 취소할 수 없다고 얘기를 했지요. 그러자 누가 주기도문을 부인한다고 하는데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는 그 기도를 자신있게 할 수 있으면 하라, 나는 주기도문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조용해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또 내게 질문할 것이 있느냐고 하니까 아무 소리가 없었습니다. 그럼 이제 나는 나갈 테니까 여러분 마음대로 하라고 하고 저는 나와 버렸습니다. 그때 구의령 선교사가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 따라 나오면서 목사님, 왜 이러십니까. 목사님 같은 분이 이 노회 안에 있어야지 왜 이 노회를 버립니까 하면서 막 나를 말리고 붙들었습니다.
나중에 투표로 목사 파면을 결정 했는데 몇백 명이 모인중에 26명이 찬성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기권을 해서 목사 파면이 결정되고 이렇게 해서 장로교에서 끊겼습니다.
모임의 시작
후에 안 것이지만 침례로 말미암아 노회에서 짤려나간 것은 우리 교회가 시작된다는 신호였습니다. 현실적인 교회에서는 짤렸지만 바로 주님의 교회가 시작이 된다는 신호였던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 침례 문제 때문에 시작이 된 겁니다.
그 후에 제가 있던 교회에서 싸움이 생겼습니다. 한 10퍼센트 정도의 사람은 나를 반대하고 그 다음에 교인들 절대 다수의 사람은 목사님하고 노회를 떠나 목사님과 교회를 같이 하겠다고 싸움이 생긴 겁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침례를 받은 것이며 그 싸움은 나와 관계 없다 싶어서 그냥 떠났습니다. 교회가 갈라졌을 때에는 이중 예배를 봤습니다. 제가 설교하는 시간이 따로 있었고 노회에서 파송된 사람이 설교하는 시간이 따로 있었습니다. 제가 육신적으로 싸웠으면 그 사람들을 완전히 쫓아내 버릴 수 있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표를 내고 완전히 그 교회를 떠나버렸습니다. 그때 일부의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저를 따라 나온 사람들이 있어 50-60 명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과 식당 2층을 빌려서 집회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이제부터 여러분이 주는 월급을 안받겠다. 나는 이제 월급장이는 되기 싫고 내가 벌어 먹으면서 설교를 하겠다고 사업을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했는데 저를 따라 나온 사람들 가운데 한 믿지 않는 소경과 같이 사업을 했습니다. 그는 화학자인데 화학 실험을 하다가 약품이 폭발해서 두눈을 다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주 비상한 아이디어를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아이디어를 제공해서 사람들과 같이 사업을 하면 처음에는 자기를 대우해주다가 사업이 잘 되고 그 기술을 익히면 그를 배척하고 속인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는데 목사님 같으면 믿을 테니까 사업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때 저를 따라 나온 교인들 가운데 돈이 좀 있는 사람과 그 과학자와 저, 셋이서 어울려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고생을 많이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찌는 듯한 여름 더위에 슬라브로 이은 나즈막한 지붕 아래 공장에서 일을 하는데 참 고생 많이 했습니다. 등 전체에 땀띠가 날 정도로 일 년 동안 했는데 완전히 적자를 봤습니다. 돈은 한푼도 못벌고 완전히 실패를 했습니다.
그때에는 생활이 아주 어려웠습니다. 육남매가 있었는데 모두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쌀통에 쌀이 하나도 없고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종이 조각, 신문 같은 것을 모아서 고물상에 가져가 팔아 몇 푼 생기면 그것을 가지고 두부 두 모를 사서 아이들에게 먹이고 학교에 보내고 우리 내외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먹는 일도 몇 번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납금 가져오라고 해도 아이들은 급박해질 때까지 공납금 말을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럭저럭 이상하게 굶어죽지 않고 아이들이 고등학교까지 다 마쳤습니다. 맏아들이 대학교에 합격을 해 입학을 했는데 공부를 못 시켰습니다. 사업을 해도 한 푼도 벌지 못했고 월급을 안 받았습니다. 생기면 먹고 없으면 굶었지만 굶어 죽지 않았습니다.
시편에 보면 의인의 자식이 걸식함을 보지 못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도 어디 가서 돈을 꾸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시골 형님이 농사를 지어 가을에 쌀가마니라도 보내주곤 했는데 그 외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우리 형님이 아직 구원을 못받았을 때였습니다. 아무에게나 가서 먹을 것을 위해서 돈을 빌린다든지 그렇게 해 본 일이 없습니다. 가끔 먹을 것이 없어서 굶기는 했어도 여러 번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경험입니다. 그것이 훈련 이고 그것이 시련입니다.
나중에 안 것은 역시 그것이 하나의 훈련이기는 했지만 제가 갈 길은 아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길로 가서는 안 되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그러한 훈련이 있습니다. 그런 무서운 시련, 무서운 훈련을 거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신앙 생활에서 그러한 훈련이 있으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침례 얘기를 했는데 침례 때문에 우리 교회가 세워진 겁니다. 침례를 성경대로 지키지 않았더라면 우리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참복음의 역사 안에는 침례 때문에 수없이 많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침례라는 것이 교회를 형성해 가는 데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찬송 한 장 부릅시다.
189장입니다.
1.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지극히 화평한 맘으로 찬송을 부름은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2.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보배로 속죄함 받은 것 아니요 거룩한 하나님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3.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얻음은 확실히 믿기는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4. 거룩한 천국에 올라간 후에도 죄 속한 은혜의 찬송을 기쁘게 부름은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후렴.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 죄를 속했네 할렐루야
소리를 합하여 함께 찬송하세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다같이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들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얼마나 다른지요. 저희들의 생각에 깜깜해 보이는 것이. 하나님께는 환하고 저희들은 앞을 보지 못하나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좌절된 것 같고 망가지는 것 같은 것이 큰 성공의 시작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러한 과거를 돌아다보면서 이 한 시간 저희들이 교제하였습니다. 우리들이 나날이 당하는 일들에서 우리의 상식으로 판단하고 미리 겁을 집어먹는 일이 없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우리와 같이 하시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고 든든히 서서 똑바로 따라가게 인도해 주십시오.
다시 모이는 순간까지 각 사람 주님을 항상 생각하고 바라보면 서 지내도록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